전출처 : 바람구두 > Dum vita est, spes est!

삶은 아무리 더럽고, 치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죽음보다 낫다.

2005년 나의 독서 테마에 대해 올초에 이야기한 바 있는데, "문화"를 읽기로 한 것은 문화비평(문화연구)에 대한 이론서들을 읽을 결심을 했다는 거다. 생각외로 이 방면에 많은 읽을 거리들이 산적해 있음을 최근에야 마음에 새길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읽을 것은 지천인데, 그간 이 방면에 대해 무식했음을 절감하는 거다.
그렇다고 문화이론을 공부하기 위해 읽어야 할 대상들이 전혀 낯선 인물들은 아니라는 사실에 다소의 안도를 품을 수 있게 된다.

미하일 바흐친
발터 벤야민
마샬 맥루한
칼 마르크스
프랑크푸르트 학파
테오도르 아도르노
루이 알튀세르
움베르토 에코
아르놀트 하우저
자끄 라깡
페르디낭드 소쉬르
롤랑 바르트
게오르그 루카치
피에르 부르디외
레이먼드 윌리엄스
안토니오 그람시
레비 스트로스
김현 ... 등

하지만 그 이름을 이렇게 나열해 기술해놓고 보니 마치 눈앞에 히말라야 산맥의 8,000m급 고봉들을 옮겨 놓은 듯 숨이 턱 막힌다. 사람들은 어째서 산에 오를까? 글쎄, 나도 모르겠다. 나는 왜 저들의 저술을 읽고 싶은 걸까? 글쎄, 그 대답을 위해 나는 그들의 책을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 스스로 자문자답한 적이 있다.


왜 글을 쓰는가?

- 바람구두

어줍잖게 글을 쓴다는 힘든 일에 매달리기 전에 나는 심한 자기혐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시절에 나는 스스로가 막장(漠場)이라고 이름 붙인 연립 주택 지하 골방에 60촉 백열등을 하나 매달아 놓고는, 낮에는 내내 자다가 밤에만 깨어 일어나 소주 마시고, 커피 마시고, 책 읽고, 갓 배운 담배 연기에 취해 글쓰고, 찾아온 모든 손님들을 즐겁게 맞으며 객쩍게 시간을 때우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무렵 나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가담했던 운동 단체가 산산조각이 나서 지하 생활자로 변해 있을 무렵이었다. 나에게 세상은 온통 사기였으며 불가능한 이상으로 가득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것을 증오하며 한인간을 사랑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자기기만에 질려 그 생활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후 나는 공장 생활자로 변했고 손에 못이 박힌 노동자들과 그들의 선량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사물이나 인생, 세상이 무엇이냐고 알려고 대들기보다 우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관심을 두어야 했다. 그만큼 나는 살아가는 것, 생존 자체의 문제가 급박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어떻게든 살아남으면 세상이 무엇인가도 알게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제약들 장남, 종손, 부모가 없는 아이, 삼촌 셋에 고모 셋, 그리고 가엾은 누이가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사랑을 애써 가장했지만 처치 곤란한 사고무친의 남매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모두 제 코가 석자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안락한 삶의 방식은 모범생으로서의 삶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모범생으로서의 삶을 일탈함으로 비로소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안락하고 편안한 삶은 아니더라도 나 자신이 선택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른들의 세계를 기웃거리며 영악한 아이로 기억되던 내가 영악한 것이 아니라 열악한 아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적 TV에서 해주었던 "엄마 찾아 삼만리"란 만화영화를 보며 울먹였던 기억이 난다. 소년 마르코가 어머니를 찾아 먼길을 여행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결국 어머니를 만난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는데, 나는 그 만화를 보며 우리 어머니도 먼 곳에서 날 그리며 돈을 벌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덧없는 희망이 정말 덧없는 사실이라는 것이 판명되었을 때, 나는 세상엔 슬픈 일이 기쁜 일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로부터 나는 진심으로 세상을 깨닫게 되었다.

   바흐친의 말처럼 지식과 논리는 권력의 도구가 되어 잔인한 희생을 부른다.

  이에 반해 사랑은 논리가 설 수 없는 모순의 장이다. 그러기에 사물의 이치는 지식보다 사랑을 통해 파악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나의 글쓰기의 출발이 결코 사랑이 아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매우 절실한 욕구에 의해 시작한 일은 후회가 없는 법이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일에서 그토록 절실했었을까.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살았다는 묵계가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존재하고 있다. TV의 CF에나 나올 듯한 가정은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잘난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열등의식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고 감추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글을 쓰지 않고 사는 일이 쓰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세계라는 거대한 변기 속에서 줄만 당기면 사라져야 하는 분뇨 같은 존재가 되기 싫어서,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무력하게 침몰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싶다. 글쓰고 있지 않는 시간은 나에게 굶주린 공복 상태처럼 스스로를 괴롭히고, 계속해서 자학의 상태에 빠뜨린다. 글쓰기는 나의 유일한 자기 구제의 방도이며, 나의 구원 사업이다. 이 진구렁보다 질척하고 암울한 습기가 자본주의라는 가습기로부터 뿜어 나오는 세계로부터.... 그러나 갈대의 뿌리를 손쉽게 캘 수 있다고 생각한 착각이 지하의 세계에 감금된 뿌리를 찾으려는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면, 인간의 사유의 뿌리를 더듬어 보겠다는 나의 욕망과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세상을 측량해 보고 싶다는 나의 거친 야심은 한낱 부질없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런지.

  세상의 익명성(匿名性)에 도전하고 싶다. 더러운 허위 의식과 위선으로 가득찬 세상을 욕보이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 희망을 지키는 것보다 더 힘이 든다. 때로는 희망이 사람을 망친다.

"삶은 아무리 더럽고, 치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죽음보다 낫다."는 결론을 나는 이미 오래전에 내려놓고 있었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롤랑 바르트와 같은 괘락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몸이 텍스트의 관념을 쫓아가는 바로 그 순간에 텍스트의 즐거움이 일어난다"고 말하던...

* 알라딘에서 2005년 마이리스트를 올리면 그중 20명을 뽑아 10만원 상당의 책을 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부랴부랴 보관함의 책들 가운데 50권을 옮겨놓고 보니 또 책이 그만큼 남는다. 그러고나니 문득 보관함에 남아있는 내 책들이, 아니 내 불쌍한 욕망들이 가엾어진다. "10만원의 책을 얻고 싶어서 나는 이렇게 열심이구나"란 생각이 무심결에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도록 만든 거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흔들어 생각해보니 이렇다.
"삶은 아무리 더럽고, 치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죽음보다 낫다"는 나의 결론.... "살아남으면.... 살아남으면 부끄럼도 알게 되겠지"라는...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무척 유쾌해졌다. 역시 난 쾌락주의자...Dum vita est, spes est. 생명이 있는한 희망은 있다. 역시 모든 거창하게 만드는 걸 좋아한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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