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산님께

 지난주에 시간이 없어 편지가 늦었습니다. 이야기가 다국적 기업에 대한 생각의 교류에서 시작하여 정치관을 포함한 가치관과 자아를 포함한 약간의 철학적인 문제를 거쳐, 이번에는 종교적인 문제에 이르렀습니다. (가을산님이 '자아'에 대한 의견은 안 주셨네요.^^)


 좌파, 우파에 대한 저의 견해는 미리 말씀드린 대로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정권의 두 사람이 만나도 좌우가 있다고 생각하고 미국 공화당 정치인 두 사람이 만나도 좌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 지구적인 세계적 평균을 추측할 수 있으므로 이것을 기준으로 하겠다고 하면 그것으로도 나눌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저도 아래로부터 세워지는 권위를 진정한 권위로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나 기성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나를 제가 2004년 1월 17일 ‘할머니에 관한 추억’을 읽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많이 야단맞고 자랐습니다. 무슨 일 시키면 ‘예’라는 대답하는 대신 ‘왜요’라고 물어서, 어른한테 따지고 대든다고.


 저는 불가지론자, 다원주의자에게 신앙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믿음이 있다고 하는 분들도 저는 신기하게 까지 여겨집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도 어렸을 때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성경교사까지 했음에도 지금은 신앙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상상이 안 됩니다. 어떻게 신앙이 없는데 교사를 하지? 신앙이 있었다면 어떻게 그것을 잃어버릴 수 있지?


 저의는 고민의 시작은 성경의 문구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캘빈의 예정설이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든 어디까지 자유의지로 볼 것이냐. 그런데 이것은 꼭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의 고민은 불완전한 인간과 완전한 하나님의 관계는 완전한 것인가 아니면 불완전한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고민했던 창조론, 진화론에 대한 고민,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 육신의 부활, 영생이라는 고민을 할 기회가 적었습니다. 그 외에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노아의 홍수의 의미 등등.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요한복음 2:18-22)]


 제가 군복무 시절 신학대 학생인 군종병에게 이것저것을 물어 보았는데, 선악과가 사과냐, 선악과를 하와에게 건네 준 것이 지금 우리가 먹는 사과가 맞나, 가인과 아벨은 누구와 결혼했냐 등등. 그리고 그 친구에게서 신학적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위에 인용한 성경 구절에 성전temple을 예수님 자신에 비유하셨습니다. 이 구절에 의지하여 다른 사람이 고민하는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성경의 단어 의미를 사전적 단어로 해석할 것이냐, 상징적 단어로 해석할 것이냐에 대답을 현 시점에서 누구도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mannerist님은 사전적 단어 해석을 하는 사람은 기독교의 근본주의자라고 말씀하였지만, 글쎄요 그렇게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창세기에 나온 하루 지금의 하루일까요 아니면 비유일까요. 선악과를 준 뱀이 뱀일까요. 수면 중에 운행하시던 하나님이 빛을 나중에 창조했다고 성경 말씀에 의지하여 소립자 물리학이 발견한 빛보다 수소가 먼저 있었다고 좋아해야 할까요.


 저는 인간의 창조론과 진화론도 깊이 갈등하지 않는 이유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

 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영혼을 만드시고 이에 걸 맞는 신체를 주셨다고 쓰여 있지 않고, 또는 신체와 영혼을 동시에 창조하지 않았고, 흙으로 지으신 후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고 쓰여 있습니다. 물질의 육체가 있은 후에 정신을 나중에 갖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면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립이 되질 않고 현대 과학으로 증명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인간이 진화했다라고 하면 궤변이 되나요.


 창조에서 수십억년의 광대한 우주를 수천년짜리의 작은 상자에 넣게 된 것은 어느 신학자(이름을 정확히 기억 못함)가 ‘아담의 계보를 쫓아 한 사람의 세대가 얼마이니 세상이 창조된 것이 수천 년이다.’라고 했지만 현대 신학에서는 누구의 아들이라고 기록된 것이 실제로는 손자를 포함한 아들이 아닌 사람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육신의 아들이 아닌 신앙의 계보라는 것이 개신교(아마 가돌릭도 - 신교도 모르지만 구교는 전혀 몰라요.)의 정설입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우선 무한과 시간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빅뱅에 공간과 같이 태어났는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빅뱅이전에 무엇이 있었나, 어떤 과정을 통해 빅뱅이 생겼냐 하는 질문이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땅이 무한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지만 지구라는 것으로 유한이듯, 시간이 끝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예화를 들면 두 친구가 있었는데, 선의경쟁을 한 후 승리를 한 친구를 패배한 친구가 높여주는 의미에서 위(up)에 위치하자고 약속했고 선의경쟁 후에는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목마를 태웠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나중에 우주비행사가 되었습니다. 우주 공간에서 선의경쟁을 하고 승패가 갈렸는데, 어디가 위의 방향이죠.


 영생이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시간의 개념에서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시간이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의미가 없습니다. 시간의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엔트로피의 개념과 연관됩니다. 닫힌계의 두 사진을 비교하여 시간적 선후관계를 파악하려면 두 사진의 엔트로피를 계산하여 낮은 것이 앞선 시간이고 높은 것이 뒤의 것입니다. 왜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스티븐 호킹Stephen W. Hawking이 <시간의 역사>에 기술하였습니다. ‘우리의 우주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시간이 흘러가고 가역적이지 않지만 다른 빅뱅으로 만들어진 우주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시간이 흘러도 전혀 모순이 없다.’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긴 국토를 갖고 있습니다. 왜 동서로 긴 국토면 안 되나. 안 될 것 없지요. 그저 그런 국토일 뿐인 것처럼. 우리 우주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시간이 흐르지만 다른 우주에 엔트로피가 증가하거나 일정한 우주가 있다면... 어느 알라디너는 영생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관심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아직은  그렇습니다. 시간의 개념도 정확하지 않는데, 게다가 무한의 개념까지. (참조 : 시간의 개념은 과학동아 2004년 1월호에 특집으로 실려 있습니다.) (마립간 페이퍼 2003년 8월 18일자 무한의 신비 리뷰 ‘부모의 무한한 사랑’)


 ‘육신의 부활’도 육신의 사전의 의미와 상징적 의미의 구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정신세계의 상대적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 정신세계도 기독교내에 논란이 있는 부분입니다. 영, 혼백 이분법과 영, 혼, 백의 삼분법으로 나뉘기도 합니다. (학생 때에 알고 있던 것이어서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가치판단을 유보했다는 분야가 인지과학이라고 몇 번 말씀드렸으니 여기에 대한 설명은 더 진행을 못 하겠습니다.


 ‘우리의 를 사하시고’에서 이야기를 하지만 죄의 정의로부터 문제가 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의 분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죄를 사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죄, 육신, 악, 사망, 세상, 지옥이 모두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이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사도신경에 대한 저의 의견을 말씀드렸고 가을산님이 현재 교회의 장벽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네요.


 한 친구는 귀신이 있다고 믿는 친구고 한 친구는 귀신이 없다고 믿는 친구입니다. 두 친구가 밤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밤길에 흰 무엇이 앞에 둥둥 떠다니다가 사라졌습니다. 한 친구는 그것을 귀신이라 우기고, 한 친구는 하얀 비닐, 천, 또는 외계인일수 있지만 귀신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친구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제가 판단할 수 없지만 보았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아니면 어떤 광선에 의해 두 사람 모두 헛것을 보았다고 해도 비닐과 귀신이 없다는 것이지 광선조차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역사적 사실도 어렵습니다. 성서 고고학이라는 학문도 있으며 창조 과학회라는 모임도 있지만 과학적 증명하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반대하는 것에 저는 갈등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은 무엇인가를 보았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으며 그것의 판단에 대한 근거를 찾고 있을 뿐입니다. 문자적 해석은 요한복음 2:18-22에 의거하여 기대하지 않습니다. 과학적 근거가 나오면 그 때 판단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제가 ‘하나님이 왜 인간을 창조하셨죠?’하고 저보다 깊은 신앙을 갖고 계신 분에게 물으니,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하고 그분이 되물으셨습니다. 저는 ‘아마 외로우셔서 그렇게 하셨나.’라고 대답하니 그분은 어느 정도는 맞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고 쓰여 있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주의 생성원리, 목적, 미래, 결론에 관하여 이것 이외에 무엇이 더 쓰여 있지요?


 ‘성경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것 외에 저는 다른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성경책은 과학책이 아니므로 성경에서 Theory of everything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부모의 비유가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예화로 들자면,

 부모가 자녀를 위해 여려 편지를 남겼는데 자녀가 초등학교 때 그 중에는 늦게 식사하지 말라는 행동적 교훈도 있고 공부하라는 지침도 있고 네가 아팠을 때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심정을 담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아기가 어른이 되고 직장을 갖게 되면 이 부모의 편지는 모두 소용이 없는 걸까요. 늦게 식사하지 말라는 것은 건강을 염려하라는 뜻이고 늦게 음주를 하지 않으면 되고, 학교는 졸업했지만 공부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두고 직장생활 열심하고, 부모님 마음을 생각하고.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면 모순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공부를 열심을 하려면 늦게 자야 되는데 건강을 생각하지, 사회생활을 하려면 술도 마셔야 되는데, 직장생활 잘 하면서 어떻게 절제된 생활을 해.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이 편지에는 점심에 무슨 식사를 해야 할지 쓰여 있지 않습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믿음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죠.

 성경은 다만 다음과 같은 것을 이야기 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버렸고, 회복되기를 바라십니다. (기독교에서는 신약을 통해 알려주셨는데 예수님을 통해 회복이 가능합니다.)


 이교난교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가을산님의 표현을 빌자면 저는 난교를 쫓고 있지만 종교적 체험이 없기 때문에 잘라 말하기 곤란합니다. 경전, 수행,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격적인 관계죠. 이 인격적 관계가 가을산님의 표현으로 하자면 깨달음이 되겠네요. 부모와 자식관계지만 어떤 가족은 부모님께 전화하고 편지하고 찾아뵙고 선물하고 그리고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어떤 가족은 그렇지 못하고. 그것이 없다면 부모님의 편지는 잔소리죠. 교회나 종교 단체하고 하나님과 혼동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녀가 부모 집에 방문해서 집 자체나 집에 일하는 분들이 부모가 아닌 것처럼, 혹 형이나 누나가 있더라도 이는 형제이지 부모가 아닙니다.


 저는 제 자신을 가누기도 힘이 드는데 누구를 전도하고 가르치겠습니까? 더욱이 저는 미혼으로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도 모르는데. 가을산님이 화두로 던지신 내용에 대해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글로 적었습니다. 저의 신앙이 기독교의 정통이나 기본이 아닌 것을 이해하고 읽으셔야 합니다.^^


 얼마 안 있으면 추석이 다가오는 가을산님도 바쁘시겠습니다. 저의 집은 할머니 돌아가시고 찾아오는 친척도 없고 동생도 멀리 살아, 어머니가 하시는 일은 줄었지만 어머니도 한편으로 섭섭한 마음을 갖고 계실 것입니다.


 편지 쓰다가 글도 길어지고 날짜 넘겼네. 다음에는 다른 주제로 글을 쓰겠습니다. 평범한 여대생님^^의 서재에서 몇 권 골라서 읽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좋은 휴일 되십시오.


 마립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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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9-19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긴 글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사족이지만..... '다윈주의'가 아니라 '다원주의' 입니다.)

마립간 2004-09-19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정합니다. 다원주의로. 틈틈이 실수를 많이 합니다. 다윈주의를 다원주의로 바꾸면 문맥이 이상하나? 문맥이 어색할지 모르겠으나, 불교를 믿기 때문에 기독교가 싫다거나 기독교를 싫어 하지 않지만 불교를 믿지 않기 때문에 개종할 필요가 없다는 다원주의라고 하더라도 기독교 신앙을 전도(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강요로 생각하더라도)하다는 입장을 생각하면 마찬가지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