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재 신채호
부제 : 나의 정치관에 영향을 미친 것들2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라는 이름은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 외에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는데 (지금도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매우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조, 애국, Anarchism, 의열단, 허무주의, 현학적인 그의 글 등이 그 이유일 것입니다. 당시에는 광복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최연소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 박희도의 변절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독립을 주장하다, 친일 매국으로 돌아섰으니... 그런 당시 상황에서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강력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학생 운동이 한창일 때 대학생 시절을 보냈던 저는, 친구에게서 학생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추구하는 바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민족 해방National Liberty과 민중 민주People‘s Democratic가 있지만 세부적으로 여러 갈래로 다시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중 민주의 한 갈래(정확히 그 명칭은 기억나지 않음)는 우리나라의 통일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통일은 필요하지 않다.) 민족(통일을 포함한 의미에서)의 가치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제게는 진보 진영의 생각에 그러한 생각이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재는 이런 주장이 전혀 낯설지 않지만.
그 때 제가 좋아하던 위인 단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왜 나는 그를 좋아하는가... 아마도 위에 언급한 것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조국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까지 미치니, 매우 혼동된 느낌을 가졌습니다. 만약 단재 선생님이 살아 계서서 광복된 조국을 보셨다면, (그리고 머지않아 기대되는 남북통일이 된 후에) 어떤 패러다임을 갖은 국가 형태를 주장하실까. 역시 anarchism을 주장하실까.
* 교과서에 실려 너무 유명한 문장이지만 다시 한 번 마음에 되새겨 봅니다.
청년은 일국(一國)의 사령(司令)이오 일세(一世)의 도사(導師)이어늘 - 중략 - 기(其) 령(齡)은 청년이로되 기(其) 기력(氣力)의 병폐(病弊)는 노년(老年)과 동(同)하며 기(其) 모(貌)는 청년이로되 기(其) 지식(知識)의 몽매(蒙昧)를 유년(幼年)과 동(同)하니 청년 청년이오 시(是)가 어찌 청년이리요. - ‘청년 학우회 취지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