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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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긍정도 과유불급

 
제가 생각하는 긍정의 배신은 논리적 오류부터 지적하고자 합니다. 같은 나이 같은 암의 같은 병기를 갖은 환자 두 명이 있습니다. 한명은 비관적인 태도를 갖고 다른 사람은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아마 긍정적인 사람이 치료에도 순응하고 같은 기간을 생존했어도 좀 더 나은 사람을 살았습니다. 긍정적인 태도가 암의 예후에 긍정적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논리적 비약이 생깁니다. 긍정적인 태도가 치료 효과에 긍정적이라면 최대한(의, 슈퍼, 울트라, 킹, 왕, 짱)의 긍정적인 태도는 암을 낫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는 다시 근거 없는 확신으로 변합니다.

 
뿐만 아니라 긍정이 비용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자연스러운 긍정적 태도는 비용이 거의 수반되지 않지만, 긍정을 억지로 유지하는 의지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효과도 없는 긍정 관련 산업에 사회적 비용을 쏟기도 합니다. <웃음의 과학>에서 ‘p 200 감정을 억누르고 억지웃음을 지은 사람은 후에도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는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하며 감정 노동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긍정적 사고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전래 동화 ‘삼년고개’나 오 헨리의 ‘마지막 한 잎’ (잎새는 표준어가 아니네.)에서 익히 알려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어디까지일까? 이런 혼동은
 
p 108 ~ 109 그런데 긍정적 사고에서 (중략) 아니면 그녀의 환상 속에서 인질이 되어 버린 것일까? 글쓴이는 감정적으로 통제가 벗어나면서 긍정적 생활 태도와 극단적 주관적 관념론을 혼동하고 있는데, 이는 저자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혼동에서 기인된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의 큰 이야기는 개신교와 관련된 것입니다. 기독교 내에서도 <예배인가, 쇼인가!> 책과 같이 비판이 있으며, 현 기독교의 하나님과 예수님이 그 뜻에 따라 심판할 것입니다.

 
세 번째의 이야기는 긍정과 관련된 산업, 사회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 많은 교양 강좌가 있는데, 이는 구성원의 생산력을 높이려는 숨겨진 목표가 있습니다. 여기서 발생한 추가 이윤이 구성원에 돌아갈 지는 의문입니다. 긍정과 관련된 산업 (자체가 meme으로) 살아남기 위해 불필요한 영역까지 확장합니다.

 
제가 원래 기대했던 책은 긍정의 비용과 효과에 대한 엄밀한 연구 결과와 이에 대한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주제에 비해 논리 전개는 조금 조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제는 쉽게 제기하기 힘들고, 사회적 지원을 받기 힘들기 때문에 긍정의 한계에 대한 연구는 진행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를 고려할 때, 꽤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결론은 긍정적인 마음의 긍정적인 효과는 있되, ‘그 결과의 한계와 비용은 고려해야 한다.’입니다. (이렇게 따지는 상황에서 긍정적인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방법론적으로는 훈련을 통해 긴장을 극복하는 자신감만이 해결책으로 생각합니다.

* 밑줄 긋기
- 현학적인 양자적 표현보다 상보성이라고 또는 모순이라고 표현하면 이해가 쉽다.
- 기대를 벗어나는 일은 일어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에서는 우연에 기댄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은 로또 복권이 맞은 것보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거나 삼풍백화점이 일어나는 방식으로 일어나기가 쉽다.
p 21 H=f(S,C,V)/p 222 H=C x V ; 제 가치관은 ‘(개인 (마음가짐 포함) x 환경 = 결과)로 마음이라는 변수는 분명히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러나 무한대나 무한소는 아니며) 환경이라는 변수를 장악하지 않고 환경이라는 변수에 따라 결과에도 영향을 받는다.‘입니다.
p 53 ~ 54 “내가 느끼는 행복의 근원은 다름 아닌 암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인생의 좋은 부분이 얼마나 좋은지를 암이 알게 해 주었다.”라고 증언했다. 이런 부분이 극단적으로 발현되면 유방암은 전혀 문젯거리가 아니며 성가신 일 축에도 끼지 못한다. 오히려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하는 ‘선물’이 된다.
p 59 나는 웃음 띤 얼굴로 암을 수용해야만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방암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여성들 가운데 60퍼센트가 암에 걸리고도 목숨을 잃지 않은 이유로 ‘긍정적인 태도’를 꼽았다./p 62 그런데 긍정적 태도가 암 치료에 효과가 있음을 보여 주는 연구가 정말로 존재하는가?
p 65 배타적 증폭
p 71 10년쯤 전부터, 정신과 육체는 연결되어 있다는 대중적 믿음을 토대로 우리 사회가 환자들에게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부담을 지운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
p 84 ‘미소가 협력자를 만든다’고 충고했는데 맞는 말이다./그러므로 성공하고 싶다면 진짜 감정이 무엇이든 긍정적인 모습을 가장하는 속임수를 써야 한다. ; 직장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마립간과 같은)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p 93 만약 정신의 힘이 진정으로 무한하다면 굳이 주위에서 부정적인 사람들을 제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행동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면 되는 것 아닐까?p 95 그 남자를 ‘끌어당긴’ 여자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 카메라 마시지 효과를 떠올린다.
p 103 “정신은 인식되는 대상 그 자체를 실제로 형성한다.”고 환상적으로 해석한다. 그 지점에서 논리는 우리가 정신을 통해 우주 전체를 창조한다는 생각으로 성큼 도약한다./양자 물리학은 오히려 인간 정신과 심상의 초란한 ‘한계’를 일깨워 준다. 전자와 광자 같은 미소한 물질이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 세상의 존재에 관한 형이상학과 인식론 p 133 힐은 ‘생각은 실체’라고 섰다.
p
 118 격동하는 가능성의 신시대를 맞은 사람들은 인간이 처한 상황을 새롭게 보게 되었으며 선조들의 징벌적인 종교를 거부했다./종교적 유산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 철학자들만은 아니었다.
p 120 신사상의 등장 ; 새로운 meme의 등장 그것이 히스테리든, 긍정이든.
p 131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종적인 왜곡이 남아 있다./p 133 칼뱅주의는 사악한 성향을 이유로, 긍정적 사고는 ‘부정성’을 이유로 자아를 공격한다.
p 139 문제는 왜 그렇게 내적인 부분에만 오로지 몰입하는가 하는 점이다. 왜 사랑과 연대감을 품고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가? ; 만약 사랑과 연대감을 기대할 수 없다면?
p 141 기업에 파고든 동기 유발 산업 ~ p 163 구조 조정 상처 가리기 ~ ; 저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가끔 합니다. 효과가 있습니다. 단지 비용 대비 효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p 170 계속되는 다운사이징으로 전체 조직이 한 팀으로서의 의미를 잃으면 잃을수록 경영진은 그 허구적인 단위에 헌신하라고 개인을 더 몰아부쳤다.
p 178 61 퍼센트가 ‘하느님은 사람들이 번창하길 바라신다.’는 서술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p 182 ~ 183 하지만 그들의 밝은 전망 속에는 옛 칼뱅주의적 마니교가 그대로 깃들어 있다. 이족 면에는 선함과 경건함과 빛이 있지만, 저쪽 면에는 어둠과 의심이 있다.
p 186 “하느님은 우리한테 반대하는 사람들을 적대하십니다.” ; 요한복음 2: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 왜 사람들은 그렇게 휘둘릴까? 여기는 그곳과 다른가?
p 189 자, 여기 어디에 기독교 신앙이 있는가? 겸손하게 생각하고 타인에게 희생적 사랑을 베풀라는 요구가 어디에 있는가? 법에 의지해 외투를 빼앗아 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옷장도 내주라고 말한 예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p 193 그 추세가 바로 ‘교회 성장 운동’이다./p 198 긍정적 사고가 성서에 근거한 진실이거나 성서에 의해 지지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고객’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p 224 행복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한 혹은 긍정적인 사람들이 분명 직업적인 면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는 게 사실인 듯하다./하지만 이런 현상은 긍정적 태도를 높게 평가하고 ‘부정적인’ 사람들을 싫어하는 기업의 편견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p 224 긍정적 전망을 갖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는 주장은 성공의 경우보다 긍정심리학자들의 기반이 더 탄탄한 것 같다./p225 그런데 이런 연구들은 대부분 상관관계만 제시할 뿐 인과관계에 관해서는 입을 다문다./p 227 ‘행복이 수명을 연장하고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그림’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것은 행복감이나 다른 긍정적 감정 상태가 그 사람의 건강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꽤 있다는 사실이다./p 228 게다가 일부 연구는 비관주의와 같은 부정적 특성이 장기적으로는 낙천성과 행복보다 오히려 건강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결론가지 내렸다.
p 229 이는 부분적으로 ‘무위 결과’를 기피하는 언론의 오랜 편견에서 기인한 현상이다.
p 232 템플턴 커넥션/존 템플턴 John Templeton이 1972년 설립한 이 재단은
p 239 인간의 행복에서 환경 변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면 정책은 주변적인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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