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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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대를 찾는 노력은 거북이로 끝났다.

 
우선 간단하게 형식에 대해 이야기하면 액자 만화의 형식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버트란트 러셀은 여러모로 저에게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수학, 철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접어드는 시기에 많은 천재들과 얽혀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것은 그는 수학의 토대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플라톤주의자였지만 실천적으로 반反플라톤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플라톤주의자는 정의로운 전쟁을 옹호하거나 전쟁에 관해 무관심하지 전쟁을 반대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발생합니다. 전쟁이 합리적이었는가? 대부분의 전쟁( 또는 모든 전쟁)은 비합리적, 비이성적입니다. 과연 합리적 (또는 이성적)이라는 것(, 본질)은 무엇인가?

 
p 124 “실례합니다. 여기가 프레게 교수님 댁인가요?”
“아니요 여기는 그 사람의 정원이고요! 그 사람 집은 저 안쪽이에요.”
“교수님이 댁에 계십니까?”
“아뇨, 정원에 있어요. 내가 프레게 교수요, 당신은 뉘시오?”

 
보통의 대화라면 프레게의 집을 찾는다는 것은 프레게라는 사람을 만나러 왔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내가 프레게요. 무슨 일로 프레게의 집을 찾으시오?” 가로 물었을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의문이 있었습니다. 왜 일반적인 사람은 프레게처럼 ‘말을 항상 정확하게 하’지 않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의중유보에 언급한 거짓말과 신뢰(비언어적 표현)의 배신과도 관련이 있다.) 만약 모든 사람이 말을 정확하게 사용한다면 거짓말은 있어도 오해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이와 같이 않은 이유의 첫 번째는 효율의 차이입니다.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생각했는데, 수학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으니 수학을 닮은 언어라고 무모순이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언어의 사용에 엄밀한 프레게도

p 128 “그럼 왜 그런 내포를 지닌 말을 하는 거요?”라고 하는데 앞에서와는 다른 엄밀하지 않은 유추 해석입니다.

 제가
이 토대의 불확실성을 강하게 느낀 때는 스티브 호킹 박사 우주에 대한 강연을 마친 후 어느 할머니로부터 ‘당신의 강연은 틀렸소, 지구는 코끼리 (아니면 거북이)가 받치고 있소’라고 이야기하고 퇴장했는데, 나(호킹)는 그 할머니보다 무엇을 더 엄밀하게 알고 있는가라는 글을 읽었을 때입니다. (할머니 이야기가 사실인지 이해를 돕기 위한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p 96 실재, 정신

 
버트란트 러셀은 몇 대(大)철학자의 의견대립을 이야기합니다. 실재의 판단은 정신에 의해 이루어지고 정신의 실재도 정신에 의해 판단되니 여기에도 러셀의 모순이 적용됩니다.

 
이 책에 관심을 끄는 또 다른 한 이야기가 광기狂氣입니다.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우울증을 치료하니 작곡능력이 없어졌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상 최대의 쇼>에서 개의 진화에서도 언급되었던,) 다면발현pleiotropic 이란 개념이 있는데, 저는 천재의 광기는 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과 반대적인 위치에 있다고 합니다.

 
서평을 마치면서 반전주의자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집니다. 1939년 9월 4일. 영국은 나치와 전쟁(형제를 지키는 자가 되는 것)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는가?

* 밑줄 긋기
p 40 논리는 정의로 시작해서 규칙에 맞게 진행되지요.
p 72 물론 흔한 일은 아니었다. ... 만큼 끔찍한 일도 아니었다.
p 86 깨달음과 더불어 고통도 왔다.
p 90 교회
p 95 새로 사귄 애인하고는 잘 돼가요?
p 100 라이프니츠의 꿈
p 103 “논리학이란 새롭고 필연적인 추론이다.”
p 123 <개념표기법>
p 175 나는 평생 동안 지식인의 정직한 행동을 많이 목격했지만, 나의 역설에 대한 프레게의 반응만큼 정직한 행동은 보지 못했다. ; 지식인의 가장 큰 용기는 진리를 다른 모든 것 위에 두는 것이다.
p 185 끊임없이 자기를 의심하면서 전진하는 것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다.
p 263 교수님이 논리학의 토대를 창조하려다 실패한 원인은 논리학의 본성 자체에 있어요. ... 논리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 단지 논리학을 보여주는 것만 가능하다고요!
p 271 예이츠 ; “다들 산산히 흩어지고, 중심은 버티지 못하네...”
p 280 “나쁜 달걀로 좋은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다.” ; 보편적 ‘나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p 295 그 결과로 우리 자식들이 집도 빼앗기고 부모도 빼앗겼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혀 몰랐다.
p 298 글쎄요, 공산주의와 나치주의는 둘 다 극단적입니다. 나아가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자유를 말살한다는 것이지요.
p 300 “진리에 이르는 왕도는 없다!” /확실성의 모범인 논리학과 수학에서도 완벽한 이성적인 확실성에 도달할 수 없다면, 하물며 복잡하고 어지러운 인간사에서는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막론하고 인간사에서 완벽한 이성적 확실성에 도달하기는 정녕 불가능합니다./비트겐슈타인이 한 이 말은 옳습니다.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을 전부 다 알아도 세계의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p 306 오레스테스는 자신이 처한 비극적 딜레마를 잘 알아.
p 308 튜링 “좋아, 우리가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어.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
* 가장 기억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p 315 지혜를 성취하려면... 통상 지혜가 아니라고 배제되는 부분도 허용해야 한다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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