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9.23-12.22



처음 전시 계획이 잡혔을 때 언론에 노출된 사진들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꼭 보고 싶었다. (추가 사진은 집에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사진전의 본래 제목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사진의 역사를 열다."

그러니까, 이 사진전은 '역사'가 주인공이 아니라 '사진'이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몽촌토성까지의 멀고 먼 길..;;;  한미 사진 미술관은 굉장히 깨끗했다. (이름은 별로였다..;;)

입장료는 5.000원, 그런데 사물함 비를 따로 받네. 500원.
살짝 기분 나빴다.  도난의 위험 등등 관리를 위해서 사물함을 쓰게 하는 거면서 돈까지 받는 게.
자율적으로 맡겼더라도 가방이 무거워서 나는 이용했을 텐데 말이다.

들어가 보니 나밖에 없다ㅡ.ㅡ;;;  이런 분위기 왠지 익숙해....ㆀ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진 부분을 입구부터 쭈우욱 보는데, 첫번째 전시장은 액자들의 높이가 너무 낮아서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보아야 했다. 혼자였으니 망정이지 자세가 얼마나 민망한가.ㅡ.ㅡ;;;

100여 년이나 지난 사진들은 빛바랜 색을 하고도 여전히 제대로 찍혔다!라는 느낌을 주었다.  필시 그 사진들은 우리같은 디카족들의 아마추어 솜씨가 아니라, 아주아주 드물게 사진 기술을 배운 전문가일 테니, 어줍잖은 솜씨는 아니였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나라에 사진이 도입된 것은 대략 1880년대였나 보다.  제일 오래된 사진이 그 즈음에 찍힌 것들이다.  지운영씨는 우리 사진 수용의 선각자라고 하는데, 당시로서는 정말 혁명같은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초기이 사진관은 주로 일본인이 운영을 하였고, 1920년대가 되면 경성과 이북에 조선인 사진관이 개설된다.  전국에 고르게 분포된 사진관들이 지도와 함께 전시되어 있고, 그래도 수도라고 서울엔 확실히 많이 모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10년대 사진은 아무래도 시대상을 반영하는지 얼굴 표정들이 딱딱하다.  학교 졸업 사진이 많은데 칼 찬 교원들의 모습이 사진 건너 편에서도 섬뜩하다. 

1900년대로 추정되는 한 연회사진엔 기모노를 입은 기생들이 잔뜩 있었는데 일본인일까 한국인일까...

근대 초기에는 왕족, 귀족, 양반계급 등 특정계급이 주 고객이었다.(그랬을 테지..)
1920년대에 이르면 고객층이 일반 대중으로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문화통치 시기여서인지 관광사진이 유독 많았다.

이때까진 그렇구나... 하겠는데, 1940년 배경의 금강산 비로봉 등정 기념 사진은 좀 신경이 쓰였다.
그 무렵이라면 일본이 거의 미쳐 돌아가던 때였고, 나라 꼴도 아주 엉망이었던 때.  그 와중에 금강산 등정 기념 사진이라... 사진 속 주인공이 무엇하던 사람일까 의심스러웠다.  평범하지는 않았으리라.ㅡ.ㅡ;;;

전시관 측이 실수를 한 건지, 개념이 없었는지, 8개의 전시 진열대가 순서 없이 모두 뒤섞여 있었다. 그 넓은 홀을 뛰어가며 순서를 확인해야 했었지..;;;;

그런데 나밖에 없었는데 말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안쪽으로 상영회가 있었다.  제목은 "조선의 낙조"
이상현 작가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미 상영한 지 한시간이 지났고, 전체 시간은 두시간짜리다.  휘휘 둘러보니 여전히 나밖에 없고, 그래서 노트북 곰플레이어 돌려서 맨 앞부터 봤다ㅡ.ㅡ;;; 그래봤자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벽에는 대한 황실의 가계도가 알기 쉽게 그려져 있는데, 보고 있자니 속이 쓰리다.  잘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죽기엔 억울했던 고종황제나, 역시 마찬가지 이유의 명성황후, 그들의 다음 세대 황족들.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 여사.  그 사이에 태어나 작년에 돌아가신 이구.  의친왕 이강과 그의 얼짱(..;;)아들 이우 공 등...

얼짱 왕자 이우 공은 결혼식 사진첩도 있는데 직접 넘겨볼 수 있게 제작해 두었다.  일본인이 아닌 조선 처녀와 결혼한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테지만, 그 신부가 박영효의 손녀다 보니 쫌..ㅡ.ㅡ;;;

신부 박찬주는 미인이었는데, 결혼 사진이 하나같이 우울해 보인다.  원래 인상이 그런 건지, 망국의 역사를 서러워했을 지는 알 수 없는 일.  얼짱 왕자는 히로시마 피폭 때 사망한다.  그 젊은 나이에...T^T(1912-1945)

1919년생인 이해원 마마는 궁중 생활을 경험한 유일한 생존자다.  얼마 전 대황황실의 계승자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그 분.  살고 계시는 단칸방을 찍어왔는데, 정말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 초라하고 기막힌 현실과 금빛 황포와의 괴리감이 아찔할 지경.

더 보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전시장을 마지막으로 둘러보았다.  어헛, 불편한 인물들이 종종 보인다.  친일 문학가, 친일 예술가, 심지어 을사오적까지..ㅡ.ㅡ;;;;

끄트머리에는 전시 체제하의 기념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기념 사진의 식민지 근대성'을 볼 수 있었다.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는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하긴, 어디 숨조차 제대로 쉬며 살았겠는가.

나오면서, 혹시 조선의 낙조를 구입할 수 있는지 물었는데, 전시관과 이상현 작가 개인에게만 저작권이 있다고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쉬운 일이었다.  다 보고 싶었거늘...ㅠㅠ.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 하나. 19층에서 전시회를 보았는데 20층에도 전시물이 있다고 티켓에 써 있다.  이런..ㅡ.ㅡ;;;; 안내를 해줬어야 할 것 아냐... (버럭버럭버럭!!!)

쿨럭, 아무튼!  전체적으로 좋았던 전시회다.  그치만 직원은 별로 안 친절하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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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0-24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설명 : 얼짱 왕자와 박찬주(이 사진은 둘 다 별로 안 이쁘게 나왔다), 새색시와 꼬마 신랑, 그리고 기생.

마노아 2006-10-24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하나 더! 백년 사이 우리의 신체 구조가 엄청 서구화 된 듯. 하나같이 머리 크고 다리 짧아 대체로 5등신으로 보였다. 얼짱 왕자조차..ㅠ.ㅠ

마노아 2006-10-24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아까 잠시 보았는데 잘 이해가 안 갔어요. 다시 가서 공부를 해야겠어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