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서 힙합을 연주하면? [제 503 호/2006-09-27]
성당 한편에 모인 수녀들이 영화 ‘시스터액트’(Sister Act)에서 나온 노래를 연습하고 있다. 영화에서 들로리스(우피 골드버그 역)의 지휘로 느리고 감미롭게 시작했다 후반부에 빠르고 경쾌하게 바뀌는 그 곡이다. 연습을 진행하면서 수녀들은 처음 생각과 다르게 빠른 후반부가 왠지 이상하게 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처럼 멋지게 들리지 않는 이유가 뭘까?

그레고리 성가를 오래된 성당 안에서 들으면 은은히 퍼져 나오는 음악소리에 심취해서 즐길 수 있지만, 빠른 힙합 음악을 연주하면 음이 마구 얽혀 들을 수가 없게 된다. 수녀들은 연주회장의 성격을 이해 못하고 곡을 선정한 것이다.

연주회장을 선택하는 오래된 기준 중 하나는 연주회장의 ‘반향시간’이 연주곡과 잘 맞는 지이다. 반향이란 한 음표의 연주를 마친 후 벽에 반사된 소리들이 들리다가 결국은 벽에 흡수되어 소리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성당과 같이 딱딱한 표면으로 둘러싸인 넓은 공간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데, 한 소리의 연주를 마치고 오랜 후에도 소리가 메아리친다. 반대로 침실과 같이 부드러운 물체가 많은 좁은 공간에서는 소리는 부드러운 가구에 빨리 흡수되어 빨리 없어진다.

예를 들어 야외는 반사되어 돌아오는 소리가 없으므로 반향시간이 0초다. 소리를 모두 흡수하는 방음장치가 된 방도 반향시간이 0초다. 그리고 일반적인 침실과 거실의 반향시간은 약 0.4초, 보스톤 심포니홀은 약 1.8초, 런던의 왕립 알버트홀은 약 2.6초이다. 현대에 지어진 연주회장은 대부분 1~3초이지만, 오래된 성 바울 성당의 반향시간은 13초나 된다.

그럼 어떤 곡이 어떤 장소에 잘 어울릴까? 그레고리 찬송과 같은 교회음악은 성당같이 매우 긴 반향시간을 가진 곳에 어울린다. 바하의 많은 오르간 작품들은 성당의 반향을 조사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으로 연주가 끝났을 때 청중들은 오르간 곡의 마지막 소리가 성당 안을 떠돌아다니는 신비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앞뒤의 음이 뒤섞여 이런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런 음악을 좁은 방에서 연주하면 웅장한 느낌을 전할 수 없다.

반면 18세기에 하이든과 모차르트와 같은 작곡가들은 후원자와 손님들을 위한 음악을 작곡했는데, 이 음악은 반향시간이 짧은 실내에 잘 어울린다. 이들 실내악을 성당 같은 곳에서 연주하면 분명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는 앞의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뒤의 소리가 나서 음을 구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대의 힙합과 같은 음악도 마찬가지다.

또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작곡가의 독특한 타악기와 복잡한 리듬이 섞여 있는 소리는 깨끗하고 선명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현대에 지어진 연주회장에 가장 적합하다. 사실 현대의 연주회장은 큰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최적화되었지만, 그 외의 음악에도 큰 무리없이 잘 어울린다. 다양한 음악회가 이곳에서 연주되기 때문에 감안해서 설계한 것이다.

위에서 알 수 있듯 좋은 연주회장이란 반향시간을 고려하여 많은 종류의 음악회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외부의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무대에서 나오는 소리를 연주회장 곳곳에 있는 청중들에게 좋은 음질로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보다 좋은 연주회장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들은 실제 건축할 연주회장의 작은 모형을 만들어 소리가 퍼지는 것을 실험한다. 모형은 실물의 십분의 일에서 오십분의 일 정도로 만드는데, 그 안에서 시험하는 소리의 파장도 모형에 비례해서 작아져야 정확한 실험이 된다. 일반 음악 소리를 그 비율로 줄이면 모형에서는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 초음파가 되기 때문에 초음파를 측정하는 장비를 써서 실험한다. 또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소리가 어떻게 퍼지는지 분석한다.

또 청중도 중요한 요소다. 가령 청중석이 가득 차면 소리의 약 55%를 청중들이 흡수한다고 한다. 청중들로 인한 음의 흡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연주회장의 청중석은 영화관보다 경사가 급하다. 하지만 많은 사전 시험을 거쳐도 실제 연주회장에서 청중들이 있을 때 어떤 소리가 날지는 지어놓고서야 알 수 있다. 그만큼 연주회장의 건축은 어려운 일이다.

많은 작곡가들은 그들이 작곡하는 음악이 연주되는 공간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염두에 두게 된다. 예전에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지어진 연주회장의 특성 때문에 연주되는 음악의 성격이 변하기도 했다. 좋은 연주를 하려면 연주되는 곡은 물론 연주회장의 특성까지 잘 알아야 한다. (글 : 최준곤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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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9-2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건대 새천년관은 대중가수의 공연을 즐기기엔 정말 아니올시다였다.
일산 어울림 극장도 마찬가지였다.
백암아트홀은 클래식도 어울릴 법한 장소였는데, 대중음악도 소화한 정말 럭셔리 공연장이었다. 개인적으로 귀가 가장 고급스러운 사치를 느꼈던 곳.
소극장에서 생목소리로 노래 들어봤음 소원이 없겠다. 가수는? 당근 이승환이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