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안 풍경 전집 - 김기찬 사진집
김기찬 지음 / 눈빛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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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카오루의 신부 이야기는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 이야기이다. '공동체'가 살아 있는 그들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은 거의 사라진 이런 골목 안 풍경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골목 안에서도 충분히 심심하지 않고 재밌을 수 있었던 공간. 널판지 지붕 위에는 주말마다 실내화가 말라 가고, 이 궁핍한 살림 살이에도 화분을 곱게 키우는 여유가 있다. 커다란 대야 한가득 물만 부어주면 그 자체로 개인용 풀장이 되던 저런 풍경 속에 나도 어릴 적에 살았었다. 



초딩 시절에는 즉석떡볶기 집이 유행했는데 디제이 부스가 있어서 엘피 판을 틀어주곤 했다. 크게 유행을 타다가 급 망해 버리더니, 다시 또 세월이 흘러 그런 분위기의 분식집이 종종 보이기도 한다. 떡볶이는 즉석이지! 기타 좀 만지는 저 청소년들을 보니 그때 그 풍경이 떠올랐다. 92년 풍경답게 티셔츠엔 태지 보이즈가 적혀 있다. 중3 추석 때 저런 대청마루에 배 깔고 앉아서 삶은 밤 먹던 게 생각난다. 대청마루에 그저 누워 있을 뿐이었는데 어찌나 시원하던지.... 지난 밤 내 방 온도는 32.8도였다. 아, 자다 말고 일어나서 세 번이나 다시 씻어야 했지.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날들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 마당 있던 시절에는 저리 등목도 했었는데 말이다. 지금은 아무리 더워도 저리 찬물로 바로 샤워는 못하지만....;;;;



방 안 가득 이불 펼쳐놓고 아주 커다란 대침으로 이불 꿰매던 엄마 모습도 생각난다. 이불 뒷면까지 바늘이 닿아야 했기 때문에 아주 크고 굵은 바늘이어야 했다. 풀 매겨서 뻣뻣했던가? 암튼 이불 호청의 그 빳빳함의 시원함은 생생히 기억 난다.

동네에 저런 미니 놀이기구 갖고 오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나 더 어릴 적에는 못 보았는데 6학년 때 동네에 나타나셔서 아이들이 죄다 저기 가서 놀았다. 나보다 어린 애들만 타고 있어서 마음은 굴뚝이지만 차마 타지 못하고 구경만 했는데 할아버지가 초등학생이니까 타도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백원인가 내고 나도 탔던 기억이 난다! 치마 입었지만 기꺼이!



알록달록 우산이 정겹다. 일자 눈썹이 유행한 건 순악질 여사 때문일까?

지금은 몹시 비싼 저 자개 상이, 저때는 왜 그리 흔했을까? 그때는 좀 저렴했었나???

펌프 있는 마당 집에 샀았더랬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는데, 그 앞에서 똥을 밟아서 막 울고 있었더니 옆집 아줌마가 나오셔서 발 닦아주셨던 것도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아줌마 참 고마우신 분!



목욕탕 가는 길? 혹은 다녀오는 길? 그럼에도 멋는 부려야 하는 법!

집에서 날마다 샤워할 수 없던 시절에는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 가는 게 나름의 큰 행사였다.

한 번 가서 세 시간씩 놀고 오고, 나오면서 바나나맛 우유나 요구르트 하나 먹는 게 그야말로 꿀맛!



6년이 지나도 오누이는 사이가 좋아 보였다. 



참 정겨운 모습이다. 엄마 표정이 유난히 좋다.



꼬꼬마는 22년 뒤 엄마를 번쩍 업을 만큼 장성했다. 얼마나 든든하실까.



떡잎부터 남달랐던 누이 사랑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발넓은 아주머니가 자고 있던 청년 하나를 끌고 나왔다는 데에서 빵 터졌다. 잘 생기게 자랐구만!



다닥다닥 붙어 있던 골목들엔 아파트가 들어섰고, 어깨를 겨눌만큼 서로 가난했던 이웃들은 아파트에 입주해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 긴 시간 참 성실하고 착실하게 살으셨을 테지. 저 골목에서도 밀려난, 지금은 다시 만나기 어려운 이웃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오래된 앨범을 모처럼 넘겨 보는 기분이었다. 자동으로 소환되는 기억들에 조금씩 미소 짓기도 했다.

이제 이 골목 시리즈들은 다시 만나기 어렵지만, 오래오래 추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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