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선생님은, 수업만 가지고 평가한다면 낙제점이었다.  교재 연구를 과연 하시기는 하는 걸까 생각이 들었으며, 책에 빼곡히 적어오신 요점정리(참고서 수준) 외에 수업에 도움되는 어떤 얘기도 들을 수 없었다.  학생들 사이에선 졸업할 때 저 책 훔쳐버리면 내년부턴 수업 못하실거야... 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았다.

그렇게 수업에 있어서는 박한 점수를 받는 그 선생님은,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학생들 사이에서 많은 존경을 받는 분이셨다.  이유는, 그분이 평소 선행을 많이 하시기 때문이었다.  여러 봉사활동 중에서 우리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편지를 주고 받고, 영치금도 넣어주는 등의 활동이었다.  그 활동 내역들이 우리 귀에 들어온다는 것은, 그분이 그걸 겸손히 숨길 줄 아는 미덕은 가지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아무 것도 안해서 내보일 것도 없는 것보다는 얼마나 훌륭한가.

군인아저씨(그들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항상 '아저씨'로 불린다.)에게 편지를 보내도 꼭 답장을 받곤 했던 나는, 정성을 들여 재소자들에게 편지를 쓰면 그들이 그곳에서 지낼 때 좀 더 위로가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머리 속에서만 구성되었던 그 계획은 구상으로만 끝났고, 난 재소자들에게 편지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도 알지 못하지만, 그때의 치기어린 마음이 얼마나 오만했던 생각인지를 좀 더 나이 먹고서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의 부끄러웠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은 바로 이 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다.

출간 당시부터 말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울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너무 감동적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너무 힘들어져서 다신 보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너무 많은 반응들이 쏟아져서 나까지 읽어야 해? 라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질문과 내 게으름의 당위성을 확인하곤 했다.

그랬던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다음 주면 개봉이고 주인공은 내가 좋아하는 이나영과 강동원이다.  이미 예고편과 뮤직비디오도 봤다.  지금 책을 읽는다면, 난 나만의 주인공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나영과 강동원의 얼굴을 한 주인공들을 만날테지만, 그래도 꼭 보고 싶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책은 주문한 다음날 바로 도착했다.  포장 상자를 열자마자 내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한마디씩 한다.  누구는 너무 재밌게 보았다.  누구는 손수건 준비해라, 누구는 나도 빌려줘라 등등등.

그 많은 관심을 받으며 책을 읽는데, 블루노트의 존재와 맞닥뜨리자마자 왈칵 눈물부터 났다.  애써 눈 부릅뜨고 눈물을 참느라 애썼다.  그건 일종의 각오였다.  이제 시작이야.  앞으로는 더 슬퍼질 거야. 이 꽉 물고 버티자!  아직은 안돼!

이야기는 진행되고, 유정이와 윤수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이야기 구조는 이미 짐작되고도 남았다.  이 아이는 어려서 성폭행을 당했겠구나.  이 아이는 지금 이렇게 상처입은 짐승의 눈을 하고 있지만 곧 선한 사슴의 눈을 할 것이고, 끝내 죽고 말겠지.

내 예상은 사실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를 읽기도 전에 다 안다고 속단할 수는 없었다.  워낙 각오를 단단히 한 탓인지 거의 끝까지 오기까지는 처음에 느꼈던 불안만큼의 슬픔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역시, 더는 무리였다.  다음 날 집행 소식을 듣는 순간, 소설 속 유정이가 그랬듯이 내 심장도 빨리 뛰었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릴 만큼 주변은 조용했고, 내 심장 소리가 벅찰 만큼 나 역시 두려워졌다. 혹시라도 내가 용서할 수 없던 그 사람을 용서하면 하늘이 감동해 그 사람 살려줄까, 죽어도 용서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찾아가는 유정이의 발걸음이, 그 회한에 찬 고함이 내 심장에 아프게 울렸다.  한밤중이었기에 망정이지, 한낮이었거나, 혹은 지하철 안이었거나 했다면 얼마나 망신스러웠을까 싶어 안도감마저 들며 나는 눈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영치금이 초등학교의 운동장 한귀퉁이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된다는 것, 그가 마지막으로 불렀던 노래가 애국가라는 것, 애국가가 그토록 슬프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그 처음 설정과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며 끝나는 것을 보며 나는 작가 공지영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인간 공지영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의 사생활을 내 어찌 알겠냐마는, 다른 글쟁이에게 들은 그녀의 개인 소사가 글을 통해 느끼는 그녀와 너무 달라서 나는 어줍잖은 심판자의 눈을 하고는 색안경을 끼고서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과연 작품에 몰입이 될까 이른 걱정부터 했었던 것이다.

작가의 후기를 읽으며, 나는 다소 미안해졌다.  적어도 그녀가 상상력이 뛰어나서, 타고난 글재주가 놀라워서 이런 작품을 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발로 뛰며 취재한 자료 속에는 저마다의 윤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재소자들과 미사에 참여하면서, 그들과 나란히 앉아서 발을 씻김 당하는 예수님의 제자 역할도 해보면서 가졌을 감정과 감동을, 나는 부정하며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재소자를 만나고 왔을 때 거기가 천국처럼 보였다는 말까지.

외국이 모두 그렇지 않겠지만, 어느 나라의 감옥은 다녀오면 다신 들어가지 않을 만큼의 교화가 된다는데, 우리 나라의 감옥은 한번 다녀오면 다시 다녀오기를 밥먹든 한다는 소리를, 어릴 적 그 세계사 선생님께 들었었다.

단순히 그건 감옥의 시설이나 교도관들의 태도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범죄의 문제는 결국 그 사회의 문제이며, 구조적 문제인지라 감상적인 동정이나 적선에서 해결될 수 없다.  유정이가 놀랐듯이 6개월 동안 영치금 천원도 받지 못하는 재소자들이 몸 담고 것이 이 사회, 이 나라이니까.

마음이 무겁다.  작품을 쓰면서 작가는 행복했다고 했다.  제기랄, 거기선 솔직히 욕이 나왔다.  같이 아파해야 했던 것 아냐? 뭐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결국엔 죽을 필요까진 없었던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잖아.  결국엔 누군가 억울하게 살다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거잖아.  무슨 인생이 이래?  뭐가 이렇게 불공평해?라고 악을 쓰고 싶었다.  (이 작품 읽고 작가 너무 싫어졌다는 그 사람의 말을 나는 십분 이해했다..;;;)

독자의 마음을 위해서 억지로 해피엔딩을 만들 수는 없었겠지.  작품 속에서 해피엔딩이라고 이 사회의 진짜 재소자들이 해피엔딩을 맞는 것은 아니니까, 그건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조작'이고 '눈속임'일 테지.

그런 생각들을 또 중얼거리며 다시금 착잡해졌다.  소설 속에서는 얼마든지 힘들고 괴롭고 아파도, 실제 우리 사는 이 세상의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아름답고 예쁘게, 상처없이 살았으면 한다.  그것이 꿈이라고 해도, 포기되어지지 않는, 그래서 언제가는 약간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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