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선집 1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광규 옮김 / 한마당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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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누구인가를 미리 알고서 작품을 접하게 되면, 그 작가에 대한 선입견으로 작품을 읽기도 전에 지레 짐작으로 평을 하고서 첫 장을 펴게 되는 예가 있다.  또한 비슷한 감정으로 어떠 어떠하리라... 라는 식으로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때로 어떤 작품은 그 작가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이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은 어떠한지를 알고서 접근하는 것이 작품의 이해에 훨씬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그러했다.


19세기 말에 태어나서 전쟁의 폐허를 경험하고 나치 치하에서 탄압도 받고, 긴 망명 세월을 보내고 동독에서 사망한 브레히트는, 그가 체험한 세대가 공유한 기억으로 인해 철저히 리얼리스트가 되었다.  아마도,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 혹은 예술인으로서 시대의 아픔에 동조하지 않고 홀로 외길을 걷는다면, 그것은 현실의 도피이거나 비겁한 자기 부정으로 내비치기도 쉬웠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브레히트의 아픔이, 그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작품은 작가가 살았던 그 시대상을 투영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느꼈을 뿐이다.


눈 속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구조 요청을 보낸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소년 십자군에 비유했던 것, 날기를 원했던 재단사와 그를 부정한 주교의 모습, 화가로 묘사한 히틀러, 무차별로 군대에 끌려간 남자들의 모습, 망명지에서 입국 심사를 받는 이주자들의 모습 등, 하나하나 관념적인 단상들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 시 속에 녹아 있었다. 


시인의 작품 연대별로 구성을 취한 이 시집은 작가의 세월과 그가 이동한 거리를 함께 이동하며 독자들에게 눈에 보이듯 그려주고 있다.  마지막에 역자의 작품 해설과 배경 설명 등이 주석처럼 달려 있는데 이 또한 읽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번역을 통해서 전달되어지기에는 ‘시’라는 장르가 워낙 섬세하여서 그 미적 가치가 충분히 전해지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그것은 어느 누구가 번역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우리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역자는 브레히트가 서독에서 작품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을 서독과 브레히트 자신, 그리고 우리 모두의 비극이라고 말을 했는데, 그가 그 같은 극한 상황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시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만약 그가 좀 더 여유 있고, 좀 더 안락하며 덜 위험한 주변 환경을 가졌다면 이보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게, 덜 날카로운 그런 시가 나왔을 지도 모른다.  물론, 브레히트 자신으로서는 간절히 서독을 원했을 테지만 이제 수십 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읽혀지고 또한 감동을 주는 그런 시를 남겼다는 것으로 그는 위안을 삼아야 할 것이다.  비록, 그 위로도 결국은 우리들 자신이 대신 받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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