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상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199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을 떠올릴 때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간결한 문체였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개, 강산무진... 기타 등등까지. 모두 간결하지만 강력한 문체로 독자를 압도하게 만들었는데, 뜻밖의 책을 발견했다.

1993년에 서문을 썼으니 십년도 더 된 글인데, 김훈의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만연체에 가까운 긴 문장과 긴 호흡, 그리고 현학적인 수식어가 난무하는 글이 충격처럼 다가왔다.  그가 한문 단어를 많이 쓰긴 했어도 부러 어렵게 쓰려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 책은 지식인의 냄새가 많이 났다.

기행 산문집인데, 그의 눈으로 보고 느낀 감정들이 적힌 글이어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이어서 독자하고의 사이에 어떤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하고자 하는 말들이 지극히 추상적이어서 나로서는 대략적인 느낌만 전달 받았을 뿐, 다 읽고서도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는 감이 오질 않았다.

원래가 김훈의 글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편이었는데, 초반의 노력이 있으면 곧 몰입되어 빠져들게 하던 옛글... 사실은 이 책 보다 더 근래의 글에 비하면 이 책은 물과 기름처럼 나와 격리된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 책을 썼을 그 시간으로부터 긴 시간이 흘러 지금이 짧고도 간결한, 그러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문장으로, 김훈만의 문체를 만든 것일 지도 모르겠다.

글이 어려운 것은 오로지 작가 탓만은 아닌, 부족한 독자의 탓도 크지만... 어쨌든 난 지금의 김훈이, 그의 글쓰는 방식과 스타일이 더 좋다.  그의 문장을 사랑하니까.   그렇지만 모든 작품을 다 사랑하기는 어렵다.  바로 이런 책이 예외로 숨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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