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 새 시대를 열어간 사람들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약용이 남긴 시론이다.  시대를 아파하지 않는 자... 온 몸으로 시대에 항거하며 또 순응하며, 다치고 패배하고 절망도 했던 정약용의 닫힌 시대에 대한 서글픈 긍정은, 책을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을 너무 무겁게 했다.

원래 이덕일씨의 팬이었고, 그래서 나오는 작품들은 빠지지 않고 보는 편이었는데, 이 책은 사두고서 몇달이 지난 뒤에 읽게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못 보고 있었는데, 지하철에서 어떤 남학생이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는 왠지 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가서 바로 읽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서문에서부터, 사실은 목이 메었다.  정약용 형제의 서러운 죽음을 먼저 접하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한 명제들로 인사를 받고 보니, 100부작짜리 대하 사극을 다 끝내고 난 뒤의 아쉬움과 먹먹함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작가 자신에게 던진 의문형 명제는, 사실 우리 독자들에게 던진 질문과도 다름 없다.  옮겨보면 이렇다.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은 내게 한결같이 '너희들의 시대는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그 시대의 천재 이가환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단지 반대당파에 속한다는 이유로 천재를 죽이지는 않는가?"

이승훈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주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것을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몰지는 않는가?"

정조는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에도 나처럼 부친을 죽인 적당(賊黨)과 타협하며 미래를 지향했던 정치가가 있는가?"

정약전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에도 불의한 세상에 대한 절망을 민중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있는가?"

그리고 정약용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는 죽이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을 끌어안고 책을 읽으니, 결말을 이미 알고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언제고 터져 나올 비극을 기다리는 순간이 힘이 들어 자꾸 심호흡을 하는 것이 내 차지가 되었다.

책은 친절하게도 등장인물을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페이지도 할애하고 본문으로 들어간다. 신유박해(1801)로 국문장에 끌려온 정약용과 형 정약전, 그들의 형제 정약종의 자수로 목숨은 구해 받았지만 기약 없는 유배길에 오르는 눈물의 장면에서 이들의 오랜 과거로 돌아간다.

아버지가 임오년(1862)에 벼슬을 버리고 떠나는 장면, 그 해가 사도세자가 죽었던 그 해라는 데에서 정조와 정약용의 운명적 만남이 미리 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 태어나서 어떤 성장과정을 겪고, 다시 정조를 어떻게 만나며 그가 정약용을 어떻게 인재로 만들어 가는 지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마치 성공시대나 인간극장을 보는 기분?

사실 주인공은 정약용이지만, 난 정조에 더 집중해서 책을 보았다.  아무래도 영원한 제국 등등의 책으로 인해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기를 이끌었던 시대의 주역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가.  유독 그 시절에 뛰어난 인물이 많이 눈에 띈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도 그랬고, 정조는 물론이요 이가환, 김홍도, 신윤복,북학파 실하자 등등... 그 시절 활동했던 사람들의 놀라운 활약상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심각한 이야기도 많았고, 유쾌한 이야기도 많았건만. 2권에 이르러 정조가 죽고나서 상황은 급반전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암울한 이야기들.

시대가, 그러했다. 정조가 죽고나서 바로 고꾸라지는 시대의 영웅들. 사실 정조의 죽음 이후 그토록 몰락의 길을 걷는 조선의 현실은, 정조의 개혁이 근본적인 개혁은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물론, 그가 더 오래 살아서 개혁을 완수했더라면 많이 달라졌을 테지만.

작품은 굉장히 긍정적인 면에 몰두해서 쓴 기분이다. 사실, 다른 방향으로 조명한 책들도 종종 눈에 띄었었다.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가진 이승훈은, 진짜 베드로처럼 천주교를 세번이나 배교했었고, 정약용도 천주교를 버렸다기 보다 사실 배교한 셈이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 실체는 많이 다르게 보인다.

그래도, 나는 참 감동적으로, 그리고 인상깊게 이 책을 보았다.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주변에 소개해주었을 때 평판도 참 좋았다.

다만 책 제본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벌써 책장이 뜯겨나가 스테이플러 신세를 져야했다는 게 씁쓸할 뿐..ㅠ.ㅠ

제목도 얼마나 문학적인가. 초상화 속의 정약용이 좀 무섭게 보이지만^^;;;

적극 추천하는 책이다. 많이들 보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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