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세뇨르 4 - 완결
황미나 지음 / 팀매니아 / 1995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책들은 빨리 품절되고 쉽게 절판된다. 절판된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고, 헌책방을 이용하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좋은 만화 작품들은 연재중일 때, 혹은 책이 출간된 그 즈음에 바로 사서 소장해 두어야 한다.

이 책을 초기에 소장해 놓은 나는, 그러니까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다^^ㅎㅎㅎ

엘 세뇨르를 처음 만난 것은 초딩 5년 쯤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너무 어려워서 잘 이해가 안 갔다.

다만 황미나 작가를 무지 좋아했었기에 열심히 읽었을 뿐.

중학교 2학년 쯤에 다시 이 책을 읽었다. 전보다 이해가 잘 갔지만, 확실하게 머리 속에서 그려지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다시 읽었다. 뭔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슬픈 사랑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가브리엘이 이루고자 했던 세상과, 그가 실패했던 세상을 들여다 보는 것은 지극히 아플 따름이었다. 그건 아마도 열일곱 감성에도 알아차릴 수 있는 세상의 부조리함 같은 것?

당시 내가 친구들에게 자주 비교하곤 했던 설명이 있었다. 작가 신일숙은 '평등'을 이야기할 때, 평등은 애초에 없다. 고귀한 혈통을 가진 자의 우위를 인정한다!라고 했었다. (리니지를 보면 적나라하게 나오지 않던가.) 작가 김혜린의 작품을 보면, 혈통의 우수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은 평등하다. 다만 평등하게 살기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하고 실패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도전해야 한다!라고 했었다.(테르미도르를 보면 그런 느낌이 꽉 든다.)

헌데, 작가 황미나를 보면, 진정한 '평등'이란 꿈과 같은 것이고 이상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은 포기해서는 안 되고, 보다 가까운 평등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라고 설명했다.(이 작품 엘 세뇨르가 그때의 보기였다.)

가브리엘은 카나리아와 독수리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 새장 안의 카나리아는 안전하지만 자유가 없고, 새장 밖으로 나가 자유를 찾은 카나리아는 곧 독수리의 먹이가 되어 생명을 잃는다. 다르다는 것... 인정하기 싫지만, 그 차이를 뼈아프게 인정하고 이해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룩한 그 이상적인 해적들의 섬에 안헬리나를 닮은 여자가 들어서는 순간 붕괴되는 모습은 너무 적나라하면서도 섬뜩하리만치 현실적이다.  완벽이라고 믿어왔지만,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을 만큼 인간은 이기적이고 신뢰 또한 약했던 것이다.

작품이 한없이 '절망'만을 노래한 것은 아니다. 절망 속에서도 한줄기 피어나는 '희망'을 노래하지만, 그 희망은 너무 처연하고 아프고 서럽기만 하다. 4권이라고 하는 짧은 분량 안에서 작가 황미나는 자유와 평등과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 작품이 출간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던 것을 감안한다면 그 시절 황미나는 혁명적으로 앞선 생각들을 하였던 것은 아닐까.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고 새롭게 깨달음을 준다. 그런데 이런 명작품이 절판되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니 정말 두고두고 아까운 일이다. (그리고 내가 미리 구입해둔 것은 두고 두고 잘한 일이다^^ㅎㅎㅎ)

궁금하신 분들은 대여점과 헌책방을 이용하세요~ 대여점도 갖춘 곳이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되지만.ㅡ.ㅡ;;;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