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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 문성현 - 창비소설집
윤영수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이 꼭 '민주화 운동' 냄새가 났다. 게다가 내가 싫어하는 신명조체로 줄간도 좁다. 표지는 전혀 세련되지도 않았고,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그런데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추천한 사람의 안목을 믿기에^^
책을 펴드니,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동네에 있던 작은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싸아하게 코를 자극하던 오래된 책에서 나는 옛스런 냄새. 햇빛 드는 날은 먼지까지도 화사하게 보이던 그곳에서의 풍경이 오랜 시간 지나 다시 연출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편 소설인 줄 알았건만, 이 책은 중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었다.
맨 앞의 연작 소설 세 편은 형식과 연출에 있어서 거의 파격적인 모습이었고, 첫 작품부터 그녀의 탁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헉! 영화로 찍어 놓으면 죽이겠다 싶었다.
이어지는 단편들에서도 눈이 커지기만 한다. 책에서 손을 놓기가 어렵다. 단편도 이렇게 재밌는거구나... 새삼 깨닫고 말았다. 일상 소사에서 녹아있는 삶의 체험들, 곧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할짝이며 눈인사를 보낸다. 더군다나 여성 작가, 어머니, 주부로서 쓸 수 있는 이야기들과 관찰의 대상들에 살짝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시선은 줄곧 따뜻하다. 우리 사회의 모순을 고발할 적에도 그녀의 눈길은 차마 냉소를 머금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와 자신을 분리하지 않고 그녀 자신도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임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동시에 특별한 존재임을 증명한다.
마지막 편 착한 사람 문성현을 읽으면서 떨려오는 흐느낌을 참기가 힘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눈물 짓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놀라운 충격이었으며 감동이었다. 고맙고도 미안했으며, 안타깝고 아픈 마음이 줄곧 공존했다. 그녀의 글쓰기가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