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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 -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안세홍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8월
평점 :
지난 주였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지원금을 내년 전액 삭감하겠다고 정부가 발표했다가 몇 시간 안 되어서 번복했던 일이. 그런 식으로 삭감했던 예산이 한 두 개는 아니지만 그 모든 것들에서 공통점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에게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해방이 되고도 조국이 살뜰하게 보살펴주지 못한 그들을 사진작가 안세홍이 찾아다녔다. 그가 방문한 곳은 중국. 전쟁이 끝났음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그곳에 살아야 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다닌 것이다. 세월이 흘러 이주한 곳을 못 찾기도 했고, 이미 돌아가신 분도 계셨다. 그렇게 재차 방문이 가능했던 여덟 할머니들의 육성을 사진과 인터뷰로 담아냈다.
이수단 “이 사진 한 장밖에 없어. 유일한 가족사진이야.”
김순옥 “어디메로 도망을 쳐, 잡히면 죽어요.”
배삼엽 “일주일 동안 거기서 피가 나대요. 아프고 붓고 걷지도 못했수다.”
김의경 “꽃이 피어오르는 걸 끊어낸 거지.”
박대임 “밤에는 잠을 안 재워. 그 짓을 안 하면 밥도 안 줘.”
현병숙 “혼은 조선에 가 있어요. 꿈을 꿔도 조선 꿈이지.”
박우득 “갈 수만 있다면 고향에 가고 싶어요.”
박서운 “나이가 원수라……. 인자 여기가 고향이여.”
목차만 보고도 짠해진다. 사진도 같이 보자.
지구 반대편도 얼마든지 오고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건만, 이분들의 물리적 거리는 여전히 멀다. 그리고 아마 그들이 기억하고 있던 고향과 현실의 모습은 물리적 모습 뿐아니라 심리적 간극이 더 클 것이다.
저렇게 속아서 온 분들을 '자발적으로' 간 거라고 우기는 사특한 것들이 있다.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당신은 조국의 말을 잊어버린 게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조국은 당신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듯합니다...ㅜ.ㅜ
주름 가득한 얼굴에 젊을 때의 모습이, 흔적이 그래도 느껴진다.
한복 입고 사진 찍는 게 소원이라던 할머니를 위해 안세홍 작가님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할머니, 소원 이루셨어요.ㅜ.ㅜ
고향 말과, 고향 노래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달래주었을까. 동시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불러왔을까.
이래서 할머니들은 젊어서 불임이 많았다. 이분들의 인생을 얼마나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던 것인가. 그런데 아직도 사과 한마디 못 받고 있다. 인정도 안 한다. 징글징글하다.
그 시절에 바람 난 남편을 향해 이혼을 선언한 대찬 여인은, 홀로 아들을 키우며 열심히 살았건만, 이토록 무참한 일을 당하고야 말았다. 국가는 이분들에게 어떻게 속죄할 것인가.
떨어져 지낸 시간이 너무 길었다. 반가운 마음도 육신의 고단함이 받쳐주질 못했다. 할머니는 사흘 만에 중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미국 군인도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서로 적군인데?? 헐!
가난이 원수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건 이 나라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어렵게 국적을 회복해서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지만, 그것이 더 큰 상처가 되어서 중국으로 돌아가신 할머니. 그 서운함과 상처가 얼마나 컸을까. 한국의 가족들만 나무랄 수도 없다. 그들 모두가 피해자다.
사진전이 무사히 열릴 수 있도록 힘을 보탠 깨어있는 시민들도 분명히 있었다. 일본에서도 말이다.
현재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생존자는 47명에 불과하다. 이 숫자가 줄어드는 가속도가 더 붙을 것이다.
언제 후원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아무튼 위안부 피해자 소녀 이야기 '귀향'이 곧 영화로 올라간다고 시사회 안내 메일을 받았다. 이런 민간 차원에서의 움직임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좀 더 영향력 있고, 영양가 있는 활동을 보고 싶다. 제발,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