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에 본격적인 가을 나들이가 시작되는 10월, 안타깝게도 말벌이 극성이다. 8~9월이 산란기인 말벌은 폭염과 마른장마와 같은 최고의 번식 환경 속에서 폭발적으로 개체 수를 늘리고 있다. 또한 이상 고온 현상으로 당도 높은 과일과 작물도 늘어나면서 풍부한 먹이까지 뒷받침됐고, 이는 말벌의 개체 수를 늘리는데 일조했다. 게다가 말벌에 쏘이는 사고도 이어지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지난 9월 30일에는 마을 뒷산에 운동하러 나갔던 70대 노인이 말벌에 쏘여 숨진 채 발견됐고, 9월 14일에는 대구의 주택 옥상에서 60대가 말벌에 쏘여 과민성 쇼크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벌에 쏘여 병원을 찾는 환자는 2009년 9,609명에서 2014년 1만 4,280명으로 증가했고, 8~9월 발생이 전체 53.7%였다.
■ 말벌류, 맹독에 공격성 강해… 자세 낮추고 자리 피해야
벌 중에서도 문제가 되는 벌은 바다리(쌍살벌, Polistinae spp)종류와 땅벌(Vespula flaviceps spp), 그리고 말벌류(Vespa crabro spp)다. 땅벌류는 땅 속에 집을 지어 바깥에서 보면 흙부스러기가 쌓인 듯한 흔적만 남기지만, 하나의 군집에 수백 마리에서 수천 마리의 땅벌이 있기 때문에 집단 공격을 할 위험이 있다. 가장 위험한 벌은 역시 말벌류다. 독성이 강한데다 침이 단단해 여러 번 공격하면서 독성이 더욱 강해진다. 특히 장수말벌은 맹독성으로 4~5m 이내로 접근하면 바로 공격하는 특성이 있어 가장 조심해야 한다. 최근에는 토종 말벌에 등검은말벌과 같은 외래종도 개체수를 늘려가고 있어 피해가 더욱 늘고 있다.
먼저 벌을 발견하면 자세를 최대한 낮춰 그늘지고 낮은 쪽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다. 벌을 쫒는다 생각하고 팔을 휘두르거나 뛰어가는 행동은 오히려 벌들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벌집을 발견한 경우에는 직접 제거하지 말고 119에 신고하는 것이 현명하다.
■ 쏘인 부위에 된장과 간장, 상처 악화시켜
응급처치도 중요하다. 벌에 쏘이면 벌침 끝에 달린 독샘을 누르지 않고 뽑아내야 하는데 핀셋이나 손톱보다는 신분증이나 카드류를 이용해 피부를 밀어내 듯 빼내는 것이 좋다. 반면 억지로 침을 빼려다 오히려 독이 번질 수 있기 때문에, 터지지 않은 독샘이 보이면 건드리지 말고 병원으로 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침을 뺀 이후에는 또 다른 감염을 막기 위해 쏘인 부위를 알코올이나 물로 가볍게 씻고, 얼음이나 찬 물수건으로 냉찜질을 하면 통증과 가려움증을 줄일 수 있다. 또 꿀벌의 침은 산성으로 묽은 암모니아수와 같은 염기성, 알칼리성 액체를 바르고, 말벌 침은 반대로 염기성이기 때문에 식초나 레몬주스 등 산성 물질을 발라주면 중화에 효과가 있다.
가끔 쏘인 부위에 된장이나 간장 등을 바르는 사람도 있는데 치료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감염원이 돼 상처를 더욱 악화 시킬 수 있다. 소주 역시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피부 손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 쏘인 뒤 호흡곤란, 알레르기 나타나면 빨리 병원으로
보통 벌에 쏘여 문제가 되는 이유는 알레르기 반응 탓이 크다. 벌에 쏘이면 큰 부작용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말벌에 쏘이면 다친 부위가 붓고 아프며 설사나 구토, 어지럼증이 나타난다. 드물게는 온 몸에 붉은 반점이나 두드러기가 나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 쇼크다. 면역체계 과반응으로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데, 벌에 쏘인 후 30분 이내로 기도나 장이 부으면서 급성 호흡곤란과 함께 혈압이 떨어진다. 이때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
아나필락시스 쇼크 외에도 병원에 가는 경우는 벌집을 잘못 건드려 여러 부위에 공격을 당한 경우다. 쏘인 부위가 붓고 아플 경우, 진통제나 스테로이드제 주사로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를 한다.
■ 말벌,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상책
사실 말벌 무리를 보면 바로 도망가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말벌을 유인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차단하는 것이다. 음료수나 과일과 같이 단 음식은 먹은 뒤 바로 정리하고 향수나 화장품, 헤어스프레이 등은 냄새로 벌을 유인할 수 있기 때문에 뿌리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벌은 화려한 색의 옷을 꽃으로 착각하고 달려든다. 그래서 벌초 작업을 할 때는 되도록이면 옷은 어두운 색으로 입고, 벌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몸에 딱 달라붙게 입는 것이 좋다. 이 외에도 보호 장비를 착용하거나 살충제를 휴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낯설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는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는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예방법과 대처법만 알아도 마음이 한결 든든하다. 벌에 쏘이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말벌 쏘임은 심각한 경우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만큼 이번 가을 나들이에는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 옷차림부터 신경을 쓰고, 응급처치법에 대해 숙지하고 나서면 어떨까.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