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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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샀던 건 순전히 표지 때문이었다. 강렬한 노란색이 유혹적으로 보였는데 제목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어떤 간절함이 느껴졌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 말이다. 책을 사고 얼마 뒤 이 작품이 큰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홋, 굽이굽이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조건들을 계속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냉큼 읽어야지!


제목에서 내가 느낀 것은 장편 소설이었는데 단편 소설집이었다. 아핫, 역시 나의 감은 역시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군..;;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나 역시 구병모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위저드 베이커리'였다. 당시 그 작품이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과도한, 혹은 의도적인 희망 만들기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끝난 드라마 '여왕의 꽃'을 화장품 바르면서 1분 정도 보았는데 악행을 지속했던 인물들이 인과응보 형식으로 벌을 받아서 비참한 형편이 된 게 묘사되었다. 으레 그렇듯이 이번에도 권선징악형 해피엔딩인가 보다. 사실, 현실처럼 좋은 놈은 계속 안 풀리고 나쁜 놈은 승승장구하는 내용으로 드라마가 끝난다면 방송국 홈페이지가 마비될 테지.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과 동떨어지게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구성으로 그리하여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끝나는 것도 너무 후지지 않던가. 그런 연장 선상에서 구병모 작가의 책들이 좋았다. 새침하고 시크하고 날카로운 이야기들의 서릿발 말이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고, 그 후유증으로 읽고 나면 우울해질 수 있다. 더군다나 작가님의 문장 스타일은 길게길게길게 이어진다. 문장이 마침표를 찍지 않고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의도된 문장 스타일이지만 이런 글은 읽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안 그래도 너저분한 현실의 고리들을 계속해서 보여주는데, 문장마저도 숨이 턱 막히게 만드니 책을 읽으며 내가 소모되는 느낌이 드는 게 유일한 단점이다. 그런데 여러 권을 읽는 동안 계속 이런 스타일을 고수하시는 걸 보니, 작가님의 소신이라고 봐야겠다. 독자가 나름의 완급을 조절해서 알아서 읽을 수밖에. 그런 의미로 이 책이 단편집인 건 다행이었다. 쉬어갈 호흡을 마련해 주었으므로.


8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의 내력에 주목하게 되었다.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에서는 대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는 을 중의 을이 되어버린 시간 강사가 나오고, 그밖의 작품에서도 근거 없는 폭력에 노출되어버리는 사회복지사와 비서가 등장하고, 사회의 말단에서 언제든지 소모품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경비원, 콜센터 직원 등이 출연한다. 이들은 단지 설정 상의 바닥 계급이 아니라 작가의 치밀한 인터뷰나 사전조가사 뒷받침 되었을 것 같은 디테일함을 갖추고서 각자의 위치에서의 고단함을 보여주는데, 그 모든 현실들이 내일처럼 다가올 만큼 현실적이었다. 그것이, 몹시 슬펐다. 


그가 피 흘리며 구호도 외치는 사람이었을 적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쇠지레로 쑤시거나 구둣발로 걷어질러 해산을 종용했던 용역들이 주위에 집결했지만, 이제는 누구도 섣불리 그를 철거할 염을 내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225쪽


살아서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한 그가 하루아침에 덩굴식물의 형태로 괴상하게 죽어버리자 그 죽음 앞에서 주춤거리는 자가 나타났다. 멀쩡한 사람의 얼굴로서는 해내지 못할 일이었다. 이런 현실 인식이 슬프다. 그러나 이런 죽음이 도처에서 나타나자 이것도 무뎌져서 한때 사람이었던 그 사체는 쓰레기처럼 취급된다. 


흉흉한 소문이 돌아 일시적으로 매출이 급감하여 한때 문을 닫을 뻔했던 패션몰은 각종 공격적인 이벤트와 모기업의 조직적 뒷받침으로 기사회생해서 오늘도 순조로운 영업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저가 패션몰 업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이는 툭하면 픽픽 쓰러지거나 부서지거나 덩굴식물이 되어버리는 나약한 사람들보다는 자본의 흐름이 훨씬 정직하고 믿을 만하며 삶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는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사례로 남게 되었다. -231쪽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OECD자살률 1위를 또 기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인구 10만 명당 29명 꼴이란다. 이는 우리가 1위를 가로채기 전까진 부동의 1위를 자랑하던 일본의 18명 보다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숫자다. 작품 속에서 덩굴 식물이 되어버린 사체를 치우는 미화원은 건조한 목소리로 이 일을 설명한다. 


"보기에 좀 불편해 그렇지, 못 본 척하고 가만있으면 지낼만은 합니다." -238쪽


미화원의 심드렁한 목소리에서 생명 경시 사상이 느껴진다고 성토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만연한 죽음이, 특히나 노동자의 죽음이 지나치게 익숙해져서 그 모든 걸 배경화면처럼 스윽 보고 지나가는 것은 아닌지, 그런 무관심이 우리에게 깊숙이 자리한 것은 아닌지 섬뜩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마지막 단편에서 택시에 오른 콜센터 계약직 직원은 자신의 집안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주 못사는 건 아니고 두 분 다 평범한 서민층이에요, 옛날 정치경제 교과서에서는 중산층이라고 주입시켰던 그 서민층요. 딱 먹고살 정도는 되고 그 이상 행복해지려거나 사치를 부리려면 다른 것을 반드시 희생해야 하는 그런 계층이죠.  -257쪽


적나라한 묘사다. 몇 해 전인가, 회원 수가 아주 많은 유명 주부 사이트에서 중산층이란 어떤 계층인가라는 질문이 베스트 게시물이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사람들이 댓글로 표현한 중산층의 재산 규모에 입이 쩍 벌어졌다. 내 기준으로는 '재벌급'인 사람들이었는데, 그 정도 규모의 돈은 있어야 '중산층'이란다. 아니 내집 하나 있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밥먹고 살 정도면 중산층이 아니었던가? 그럼 대한민국은 죄다 서민만 있고 아주 조금의 중산층과 극소수에 해당하는 자산가들이 사는 나라였던가? 내가 부러워했던 정도가 기껏해야 이 나라에서는 서민이라는 이 씁쓸한 현실 인식에 웃플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지막 단편의 인물은 혼자서 모든 대화를 주르륵 쏟아내는데, 서른을 코앞에 둔 이 젊은 여성의 한맺힌 듯한 수다에는 공감 가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몇 번이나 한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지나친 리얼리티는 독자를 통곡하게 만든다. 빌어먹을 현실이여!


이렇듯 절절한 사랑 얘기가 실려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가슴 저미며 책을 읽어야 했다. 그래서 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나 고르라면 단연코 두번째 수록작인 '파르마코스'다. 앞을 못보는 소년을 붙잡고 온 마을이 다 잠기도록 긴긴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던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현실이라면 언감생신 결코 내릴 수 없는 결정, 누군가 그런 시늉이라도 한다면 결사반대했을 결정이지만, 그것이 문학이라면... 대리만족하는 마음으로 어쩐지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흡사 유시진 작가님의 '폐쇄자'처럼, 세상을 닫을 능력이 있다면, 이 세상이 마땅히 닫혀져야 할 만큼 더럽고 악하고 무의미하다면, 기꺼이 그 결정을 내리는 절대적 힘을 지닌 사람의 결정을 지지할 만큼, 마음이 슬퍼졌기 때문이다. 내가 내릴 수는 없는 결정, 내 손으로는 끊을 수 없는 세상의 고리. 그런데 그걸 해낼 누군가가 있다면 어쩐지 지지하고 싶어지는 그런 슬픈 마음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또 아프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작가님이 76쪽에 인용한 이 구절이 더 마음을 파고든다.


어느 곳이라도 좋다! 어느 곳이라도!

그것이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


보들레르


덧글) 69쪽 첫번째 줄의 문장이 부자연스럽다. 

꿀벌은 수분을 시키기 위해 취하며


>> 시키기 위해가 맞는가?? 내가 읽기에는 좀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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