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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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수년 전에 읽었던 '서울, 밤의 산책자들'이 떠올랐다. 거기 실린 단편들 중 '양산펴기'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백화점 가판대에서 양산을 파는 알바생이 양산을 펴면서 핏, 팟... 뭐 이런 소리들을 반복했던 게 퍼뜩 생각난 것이다. 어쩐지 황정은의 느낌이었다. 찾아보니 동작가의 글이 맞았다. 


그때도 느꼈지만 황정은 작가는 굉장히 감성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듯하다. 창비 팟캐스트 진행할 때의 목소리는 아주 허스키하고 건조한 편인데, 목소리와 글의 느낌은 많이 다르다. 둘 다 매력적이긴 하지만.


작품은 소라, 나나, 나기의 입장에서 가각 서술하고 마지막에 다시 나나가 서술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소라와 나나는 자매다. 어려서 아빠를 잃고 친지들의 배척 속에서 삶의 기력을 잃은 엄마와 함께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때 옆집 살았던 게 나기다. 나기라는 캐릭터도 참 좋았지만 그 엄마가 더 근사했다.


나기네 어머니는 떡을 우물우물 먹으며 살풍경한 부엌을 둘러보고, 설탕을 입에 묻히고 있는 나나와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끝까지 떡을 뱉지 않고 삼킨 뒤, 이 떡의 맛이 좋으니 자기네 밥이랑 바꿔 먹자며 나나와 나를 벽 건너편으로 데려갔다. -40쪽


이미 죽으려고 했었던 엄마 애자는 아이들을 잘 건사하지 못했다. 자매가 쉰 떡을 먹고 있는 걸 이웃집 나기 엄마가 발견했다. 그 떡을 뱉고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도 되었을 것을, 이 맘 깊은 아줌마는 쉬어버린 떡을 삼키고서 아이들 마음이 다치지 않게 선의를 베풀었다. 이런 엄마 밑에서 나기가 반듯하게 자란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엄마가 되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회로가 그렇게 꼬여 있다. 생각이 아니고 심정의 영역에서.

그러므로 애초에 아기는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아기를 낳지 않는다면 엄마는 없지. 엄마가 없다면 애초에 애자도 없어. 더는 없어. 애자는 없는 게 좋다. 애자는 가엾지. 사랑스러울 정도로 가엾지만, 그래도 없는 게 좋아. 없는 세상이 좋아.

나는 어디까지나 소라.

소라로 일생을 끝낼 작정이다.

멸종이야.

소라,라는 이름의 부족으로. -45쪽


자신의 엄마가 어떤 엄마인지, 어떻게 생을 살아왔고 또 살고 있는 지를 아는 큰딸 소라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애자의 비극도 이해가 가고, 그런 엄마를 닮고 싶지 않은 소라의 절박함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나나가 임신을 했다. 이 아이에 대한 태도, 그리고 아이 아버지에 대한 태도에 나는 화가 났다. 나나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 보겠다고 단단한 결심을 내리는 것 모두 이해가 가는데, 그래도 내 가치관으로는 용납이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 할리퀸 로맨스를 한권 읽었다.(계속해 보겠습니다-는 읽은지 3개월이 지났다.) 무인도에 불시착했던 남녀가 헤어지고 난 뒤, 여자는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아이를 낳기고 결심하고 남자를 찾아갔다. 결혼을 제시하고 결혼 뒤에 곧 이혼하자고 제안했다. 나름으로는 남자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는 생각이었겠지만, 남자는 이 여자가 간과하고 있는 가장 큰 실수를 바로 간파했다.


"혹시 생각해 본 적 있소? 당신은 지금 아이보다 당신 자신을 더 걱정하고 있다는 걸? 당신이 아이를 낳았을 때 결혼한 몸이었는지 아니었는지가 5년 뒤에도, 아니면 10년이나 20년 뒤에도 문제 될 거라고 정말 믿고 있는 거요? 아이가 행복하고 안정된 가정에서 자라느냐 아니냐보다 엄마가 자신을 낳았을 때 결혼한 몸이었는지 아니었는지에 더 신경 쓰리라고 생각하는 거요?" 


-버림받은 그녀 165쪽


아이 엄마가 아이를 임신한 탓으로 자신의 인생보다 아이를 항상 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그렇게 살수도 없고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 아빠의 권리와 의무, 당연히 아이가 아빠에게 받아야 할 마땅한 관심과 사랑, 보살핌의 기회를 뺏어가서도 안 된다고 여긴다. 과연 나나가 내린 결정에는 자신히 했어야 할 모든 노력의 최선을 다한 것인가 싶었다. 난 그 결정 반댈세!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런 생각 역시 내가 자라온 환경과, 그래서 가져온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이뤄온 거니까. 


나기 이야기도 잠시 해 보자.


나는 이것을 아주 가끔 피운다. 아주 가끔으로 정해두고 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서 삼가는 것은 아니고 혀가 둔해져 조리에 영향이 있을 것을 걱정한다거나 담뱃진이 밴 손가락으로 식재료를 만지는 걸 꺼리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너의 냄새.

너의 냄새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너무 자주 피우면 내 냄새가 되어버리지.

피우는 의미가 사라져.

허공으로 길게 풀어져 사라질 때까지 담배 연기를 바라본다. 사과 냄새가 난다.

이것은 너의 냄새. -171쪽


셰프인 나기가 기피하는 담배를 굳이 아주 가끔 태우는 것은 그로 인해 떠올리고 싶은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깨진 앞니를 다시 채우지 않는 것과도 같은 이유다. 

상대에게 가 닿지 못한 사랑, 사랑하는 엄마에게도 밝힐 수 없는 사랑, 그래서 더 처연하고 더 잊을 수 없는 사랑. 


황정은 작가의 글을 몇 개 읽어보지 못했으니 선뜻 단정하는 건 무리지만, 왠지 그녀의 작품은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느낌이 강하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리듬감이 있다. 작가님 말투처럼 약간 천천히, 호흡을 뱉으면서 나직이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표현 죄송하지만, 젊고 '맹랑한' 느낌이 가득하다. 작가님 특유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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