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SION 과학

제 2359 호/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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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색깔 논쟁,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드레스 한 벌 때문에 각국의 인터넷과 SNS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유명인이 입어서도 아니고 귀하고 비싼 제품이어서도 아니다. 가격도 수십 수 백 만원이 아닌 8만원 정도고 브랜드도 평소에 별로 들어보지 못한 ‘로만(Roman)’이라는 회사다. 세계적인 스타들까지 가세해 품평회를 할 만한 상품은 못 되는데도 논평이 끊이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품질이나 디자인이 아닌 ‘진짜 색깔이 무엇인지’ 가려내기 위해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다. 직접 찍은 사진까지 있는데도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색이라고 우겨댔다. 연예인과 패션전문가뿐만 아니라 사진가, 광학연구자, 인지과학자, 심리학자까지 총동원돼 드레스에 대해 그리고 기묘한 현상에 대해 분석했다. 이른바 ‘드레스 논쟁’이다. 

사건의 출발은 이러하다. 영국 북서부의 외딴 섬 콜론시(Colonsy)에 사는 케이틀린 맥닐(Caitlin McNeil)은 스코틀랜드 전통음악 밴드 ‘카나(Canach)’의 싱어로 활동 중이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연주를 해주기로 친구와 약속했는데, 어느 날 사진을 한 장 보내오며 의견을 물었다. 어머니가 피로연에서 입겠다며 의견을 물어왔는데 어떻게 보이냐는 것이다. 파란색과 검은색의 레이스가 가로 줄무늬로 겹쳐 있고 소매 부분이 풍성한 원피스 드레스였다. 

케이틀린은 무심결에 “파란색-검은색 드레스네” 하고 대답했다가 친구로부터 면박을 들어야 했다. “무슨 소리야. 흰색-금색이잖아.” 이때부터 논쟁이 시작됐다. 멀쩡히 사진이 찍혔는데 전혀 다른 색으로 이야기하는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텀블러(Tumblr)’라는 SNS 사이트에 사진을 올리고 네티즌의 의견을 구했다. “이 드레스 색깔이 흰색-금색인가요, 파란색-검은색인가요?” 

색깔 논쟁 드레스 (출처 : SNS Tumblr Swiked.)


그런데 사람마다 의견이 달랐다. 어떤 사람은 파란색이다, 다른 사람은 아니다 흰색이다 대답이 제각각이었다. 보다 못한 사람들이 사진을 퍼 나르기 시작했고 삽시간에 지구촌으로 퍼져나갔다.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케이틀린의 SNS 사이트를 찾아왔고 세계적인 팝 스타들도 트위터를 통해 논쟁에 가세했다. 해외 인터넷 투표에서는 파란색-검은색이라는 의견이 30%, 흰색-금색이 70% 정도였다. 우리나라 네티즌들도 논쟁을 벌였다. 인터넷 게시판마다 드레스 색깔에 대한 주장과 다툼이 이어졌다. 의견과 분석도 제각각이었다. 상대를 비난하고 인신공격을 하는 글까지 등장했다. 

같은 물건을 찍은 사진을 보고 어떻게 사람마다 다른 색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원래 드레스의 색깔은 파란색-검은색이 맞다. 하지만 흰색-금색이라고 대답한 사람들도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의 원인은 우리의 뇌가 눈에 보이는 색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같은 색이라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3가지의 불일치가 작용한다. 

사람이 물체를 볼 수 있는 것은 ‘가시광선’ 덕분이다. 다양한 종류의 빛 중에서 물체에 부딪혀 반사될 때 380~780nm(나노미터)의 파장 길이를 가지는 광선을 가리킨다. 파장의 길이가 짧아져 380nm에 가까워지면 보라색이 되고 780nm에 다가갈수록 빨간색으로 보인다. 그 사이에는 흔히 알고 있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색이 들어 있다. 

우리 눈의 망막에는 빨간색(R), 초록색(G), 파란색(B)의 3가지 색을 느끼는 원추세포가 있다. 빛의 종류에 따라 세포의 활성화 정도가 달라지면서 뇌로 전달되는 전기신호도 다양하게 바뀌며 이를 판단해서 색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빨간색을 보여주었을 때 모든 사람의 뇌가 동일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빛의 파장도 동일하고 원추세포의 움직임도 동일하지만 뇌는 사람마다 다르게 작동하는 것이다. 

외부의 물리적 자극을 각자 다르게 받아들인다면,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을 때 사람마다 다른 신호를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모두가 똑같이 “노란 꽃이다” 하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교육과 합의에 의한 결과다. 특정 물체에 반사돼 눈으로 들어오는 색채에 누군가 이름을 붙였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 명칭을 가르쳐줌으로써 공통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같은 개나리꽃을 보더라도 나와 상대의 뇌 속에는 서로 다른 신호가 오가는 셈이다. 이것을 ‘지각색(知覺色)’이라 한다. 여기서 첫째 불일치가 생긴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지구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빛의 세기가 달라진다. 가장 큰 광원인 태양이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빛이 강렬해지기도 하고 어스름해지기도 한다. 빛이 달라지면 물체의 색도 달라진다. 동일한 물체를 들고 다녀도 운동장 한 가운데와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서로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색채 현시(顯示, 나타내 보임)’라는 현상이다. 여기서 둘째 불일치가 생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물체의 색이 변했다”고 하지 않는다. 밝은 곳에서도 어두운 곳에서도 개나리꽃은 여전히 노랗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환경 변화에 상관없이 물체의 색을 동일하게 인식하는 뇌의 기능을 ‘색채 항상성’이라 부른다. 사과를 파랗고 하얗게 칠하는 인상파는 색채 항상성 대신에 색채 현시를 강조하고, 자신만의 지각색으로 표현한 사람들이다. 

자주 보던 물체라면 빛의 특성과 세기를 감지해서 색채 항상성을 발휘할 수 있지만, 처음 접하는 물체는 판단이 쉽지 않다. 꽃의 색이 원래 노란 것인지 빛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지 알기가 어렵다. 이때 각자의 판단이 개입된다. 자신의 지난 경험을 토대로 물체의 색을 유추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이 ‘기억색’이다. 같은 물체라도 사람마다 경험이 달라서 서로 다른 색으로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셋째 불일치가 생긴다. 

물리적인 가시광선의 파장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해 드레스 논쟁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컴퓨터 그래픽 소프트웨어 ‘포토샵’을 만드는 어도비 사(社)는 사진을 컴퓨터로 분석해 “파란색과 검은색이 맞습니다” 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색채 현시만 고려했을 뿐 사람마다 지각색이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다. 당연히 논쟁을 멈출 수 없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기억색에 의존해 색채 항상성을 발휘한다. 드레스의 원래 색깔이 파란색-검은색이라 하더라도 일부의 눈에는 하얀색-금색으로 보일 수 있다. 옷에 내리쬔 조명이나 실내 환경을 나름 고려해서 판단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수의 의견을 내세워 소수의 의견을 “틀렸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진 드레스 논쟁은 의외로 여러 가지의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시각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배웠고, 물리적인 정보에 근거했어도 타인의 의견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맨 처음 사진을 올린 영국 시골의 21세 소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미국의 팝스타들과 친해졌고, 문제의 드레스를 제작한 로만 사(社)는 연이은 매진 사례에 즐거워하며 흰색-금색 버전의 새 드레스까지 내놓았다. 지구촌은 온갖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부딪히기도, 타협하기도 하며 다양성을 배우는 장소라 불러야 할 것이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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