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덕 창비청소년문학 61
배유안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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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읽었던 고전 소설에 심청전이 있었다. 연꽃에 싸여 궁으로 들어오던 그림도 기억나고 심봉사가 눈뜨던 장면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런데, 뺑덕 어멈은 기억나지 않는다. 미안하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븐 세상~을 외치면서 늘 주인공만 기억하고 살았다. 뺑덕어멈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당연히 뺑덕을 알 리 없다. 그런데 그 잊혀진 존재 뺑덕에게 관심을 갖는 작가 분이 계셨다. 고맙게도 이렇게...


어미는 아들 없는 집에 후실로 들어왔으나 아들만 낳고 쫓겨났다. 본처는 처음에 아이를 귀히 대했다. 그러나 제 배로 아들을 낳자 돌변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뺑덕이의 서러운 신세. 아비는 병으로 죽었고 뺑덕이는 집안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에겐 가시같이 박힌 어미란 존재. 어떻게 후벼 파면 비명을 지를 줄 아는 동네 친구 녀석 때문에 부아가 치밀면 흠씬 두들겨 패주었지만, 그렇게 세상을 향해 바락바락 악을 쓴다고 비어진 가슴이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집을 떠나야만 했다.


한 번은 보고 떠나려던 어미를 마침내 보았지만 그 어미의 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기대했던, 혹은 바라왔던 모습이 아니어서 실망했다. 실망하는 자신이 또 실망스러웠다.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미가 야속하기도 했다. 두고 온 자식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보았으면 한번쯤 자식을 떠올릴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 어미가 속상했다. 


다시 찾은 바다. 뱃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채버린 뺑덕은 바다를 등지고 뭍으로 올랐다. 잠시간 어미 곁에 있어 볼 요량이었다. 그곳에서, 청이를 만났다. 젖동냥으로 자신을 키운 눈먼 아비에게 지극 정성으로 효성을 다 하는 그 아이 청이...


자, 이제부터는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심청전 이야기이다.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로 제 몸을 던진, 그렇게 해서라도 아비의 눈을 뜨게 하고자 했던 그 소녀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뺑덕이 주인공인 채로 흘러간다. 뺑덕이 바라보는 뺑덕 어미, 뺑덕이 느끼는 심청이 말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참 좋다. 권교정 작가가 처음에 내 마음에 들어왔던 것도 동화를 패러디한 그 빼어난 솜씨에 반했기 때문이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다섯번째 산'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성서에 나오는 엘리야의 이야기를 아주 그럴싸하게, 또 설득력 있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밀고 올라가는 추진력이 좋았는데, 그래도 딱 꽂히는 문장은 적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속단이었다. 뒷심이 좋은 작품이었다.


어미 말대로 돈에 팔려 가는 건 왜 항상 여자일까? 용왕은 왜 살아 있는 제물만, 그것도 왜 여자애만 원하나? -172쪽


내말이 그거다. 왜 꼭 여자만... 여자만 재물이 되었냔 말이다. 강의 신 하백은 대답하라 오버!


나는 소리 죽여 울었다. 바락바락, 그거 애쓰며 산 거 맞아요. 나는 어미가 산 세월을, 어떻게 해 볼 힘이 없어 혼자 버둥댄 흔적을 보듬어 안았다. 그러자 내가 어미에게 안기는 것 같았다. 아가야, 귓전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어머니. 내 안의 응어리가 조금씩 녹아내렸다.

(...) 어미가 어미의 삶을 찾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머잖아 정말로 아들이 되어 다시 올 것이다. 그때 어미가 심 봉사와 함께 있든 아니든, 심술 맞고 우악스럽든 아니든 나는 어미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어미 있는 아이가 될 것이다. 나는 담담해졌다. 아니, 든든해졌다. -196쪽

어미 있는 아이가 되겠다는 뺑덕, 아니 병덕의 다짐이 참으로 아팠다. 어미 없이 살아야 했던 너의 세월과, 아이를 잃고... 혹은 잊고 살아야만 했던 뺑덕 어미의 신산한 삶이 교차해서 지나갔다. 얼마나 무수한 뺑덕이와 뺑덕 어미가 이 땅에 있을 것인가......


“하하, 이제 정말로 배를 타는 것같이 타서 하는 말이다. 누군가의 아들이 되어 보니 세상이 다르지?”

그래, 나는 그냥 뺑덕이 아니고 누군가의 아들 뺑덕이었다. 배 바닥을 딛고 선 허벅다리에 힘이 실렸다. 문득 땡중의 말이 떠올랐다. 기적. 누군가의 아들이 된 것, 독기가 빠지고 이렇게 허벅다리에 뻐근하게 힘이 실리는 것이 기적이 아닐까? -203쪽?


결과가 좋으니 뾰족하게 나온 입을 다물게 되지만, 그래도 그 땡중 너무하셨소. 자식 팔아 눈을 뜬들, 그 아비가 행복할 수 있겠냔 말이다.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부디 심청이같은 결단은 내리지 맙시다. 그래서 불치병에 걸린 엄마가 뱃속의 아이를 포기하면 제가 살 수 있음에도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제 생명을 포기하는 그런 설정을, 나는 아주 싫어합니다. 어미 생명과 맞바꿔 태어난 그 아이와, 그걸 지켜보아야 하는 아이 아빠는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네? 난 그게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자신을 얼마나 불행하게 하는지, 또 얼마나 오래도록 긴 상처를 남기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부모라고 다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사람들은 아니다. 상처받고, 주눅 들고, 후회에 찬 시간을 보내는 부모도 많다. 평범하고 더러는 미숙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자식에게 당당하지 못한 부모들의 신산한 삶 또한 받아들이고 보듬어 주는 것이 청소년들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 아닐까? 그럼으로써 자신의 삶을 더 튼튼히 세울 수 있지 않을까? -210쪽


작가의 말이다. 부모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자신을 얼마나 불행하게 하는지...에 콱 박혀 버렸다.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는데, 그렇게 복불복으로 맺어진 인연이 아플 때가 얼마나 많던가.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조금씩만 연민을 가지자고 말해 보겠다. 아주 조금만... 당신도, 나도 가엾을 때가 많으니... 그저 서로를 향해 조금씩만 안쓰러워 하자고...... 


엄마의 일흔번째 생신... 1월에 여행을 다녀오고, 지난 주에 이모들 모시고 식사를 하고, 다시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거하게 잔칫상을 차린 것도 아니건만 온몸의 진이 다 빠져버렸다. 그 안에서 삭여야만 했던 온갖 감정들 때문이다. 그건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반영한 결과였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이야기들이 꼭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의 소중한 인연을 함께 보듬어 보려고 한다. 모두모두 수고했어요. 이렇게 한 가족으로 만나 살아온 지난 삶 말이에요. 앞으로도, 우리 열심히 살아봅시다. 이 울타리 안에서. 


배유안 작가의 초정리 편지를 참 좋아한다. 그렇지만 서라벌의 꿈과 창경궁 동무는 다소 아쉬웠다. 그 아쉬움의 끝에 다시금 애정의 불꽃을 확 질러준 뺑덕이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쿠쉬나메 신청해 두었다. 몹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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