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만리 3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굉장히 쉽게, 빨리 읽히는 소설이다. 3권이나 되는 분량이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보다 짧게 느껴진다. 작가분도 술술 써내려갔을 것처럼 상상되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중국은 대단하다!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몇 마디를 보탠다면 여러 면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중국인만큼 돈에 대한 집착과 탐욕도 세계 으뜸이랄까. 그야말로 '돈부심' 돋는 중국이었다.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억눌렸던 욕망의 문이 열린 순간 그 어느 나라보다 더 강렬하게, 더 흡인력있게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 거대한 나라인 만큼 그 규모도 어마무시하다. 그리고 그런 만큼 부패의 크기 또한 엄청나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의 빈부격차. 중국이 세계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이 크면 클수록, 부자들이 자신들의 곳간을 채우는 속도만큼 더 빠르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가 벌어진다. 땅이 크고 인구도 워낙 많다 보니 어떤 불협화음이 들려와도 덮는 것이 일이 아닐 것 같은 나라 중국.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밑천이 되어 터진다면 그 화력 또한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나라가 중국이다. 과거의 왕조 국가들이 모두 농민 반란으로 무너졌듯이.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말해왔지만, 현대의 중국도 그게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솔직히 들었다. 자본주의 세계의 폭력성이 얼마나 가혹한지 우리 모두가 목격했지만 그 정점을 열망하는 인간들의 욕망 또한 그만큼 뜨거워서 말이다. 


조정래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는데 내가 읽은 책은 아리랑이었다. 무척 재미있게, 감탄하며 읽었는데, 그후 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그의 다른 작품들은 내 기억 속의 기대에 못 미쳤다. 이어서 읽은 허수아비 춤도 이책처럼 빠르게 술술 읽혔지만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그리고 이 작품까지 읽고 나서 아쉬운 부분들이 손에 잡혔다. 이야기는 충분히 힘있게 밀고 나가지만 '문장'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만족감이 부족했다. 영화로 비교하자면 강우석 감독의 느낌? 대중적이고 관객도 꽤 많이 들고 흥행도 되지만, 인기상은 받아도 작품상은 못 받는 그런 느낌? 대가를 향해 표현하기 미안한 비교지만 내 느낌이 그랬다. 중국이 지금 어떤 형태로 달려나가는지,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속도를 실감나게 묘사했고, 역사적으로 얽혀 있는 동아시아 삼국의 형편도 잘 묘사해 주었는데, 그런데도 갈증이 난다. 수많은 비유법 중에 오로지 직유법만 쓴 느낌이랄까? 


“일본은 우리 중국에서 3,500만 명,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 1,000만 명, 도합 4,500만 명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들 일본 인구의 절반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210여만 밖에 희생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17만 내지 20만을 포함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네가 세계 최초의 원폭 피해자라는 것을 강조하고 강조해대면서 자기들의 침략 만행을 희석시키고 은폐하려고 해왔습니다. 그 악랄함에 더해 그들은 저희들의 원폭 피해자보다 훨씬 더 많은 난징다투사를 조작이고 날조라고 악질적 발언을 일삼고 있습니다.” -205쪽


중국이라는 제국이 세워진 이래 전세계 GDP 1위를 2천년 가까이 고수했던 이 나라가 서양 제국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다시 일본에게 농락당했지만 이 거대한 나라는 엎어지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 컸다. 그리고 그런 나라이기 때문에 피해 규모도 제국스러웠다. 3500만 명이라면 해방 당시 한반도의 인구를 능가할 수준이지 않은가. 


“그런 집단적 분노와 증오는 뼈저린 공동체험 없이는 형성되지 않는 거야. 유태인들의 병적이다시피 한 국가 건설 욕망의 응집력이 나치 학살의 공동체험에서 비롯되었듯이 말야. 그건 명료한 제2의 증거가 되기에 충분해.” -196쪽


난징대학살로 인한 중국인들의 분노와 증오를 유태인에 빗대어 비교했다. 뼈저린 공동체험... 이 말이 섬뜩하고 아팠다. 국제시장 열풍이 저절로 이해되는 풍경. 가해자가 진정 어린 사과를 하고 필요로 하는 배상을 하고 그 다음에 앞을 보고 나가야 하는데,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도 만만치 않을 동아시아의 분투가 보인다. 그 틈바구니에서 대한민국은 균형을 잘 잡을 것인가? 소설을 읽으면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기분이 내내 들었다. 힘이 있던가, 영리하기라도 하던가, 눈치라도 빠르던가? 


명동에도 홍대에도 로드샵에는 조선족 직원들이 가득했다. 중국 관광객이 그만큼 많이 몰린다는 뜻일 것이다. 중국 손님에게는 최고의 점원이 되겠지만 우리말은 해도 현지인만큼은 아니어서 내 나라에서 내가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잠식되어가는 기분? 책 속에서도 실생활 속에서도 거대한 중국이 느껴진다. 과거 '메이드 인 차이나'에서 코웃음치던 그 중국이 아니다. 그 중국을 잠든 상태에서 깨워버린 자본주의의 에너지도 활활 느껴진다. 사마천이 지적했던 바로 그 돈의 힘!


“그 사람이 기원전, 그러니까 2,100년쯤 전 사람인데, 『사기』에다 돈과 인간의 심리에 대해 아주 기막히고 절묘한 표현을 했소. 자기보다 10배 부자면 헐뜯고, 자기보다 100배 부자면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1,000배 부자면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10,000배 부자면 노예가 된다. 이게 어디 2,100년 전 분석 같소? 어떤 예리한 심리학자가 오늘날의 인간 심리를 갈파한 거지. 사마천이 ‘중국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 탁월한 인물이니까 그렇게 예리하게 갈파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때 이미 중국은 돈이 인간사회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었는지, 돈이 인간사회에서 얼마나 큰 권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는지, 정치제도는 봉건주의였지만 경제구조는 그때 이미 자본주의 형태였다는 것 등을 두루두루 확인하게 해주고 있소. 중국사람들과 돈, 그 상관관계는 이렇게 뿌리가 깊소.” -267쪽


소설이기보다 이야기를 가미한 한편의 보고서를 읽는 기분으로 들춰봐도 좋겠다. 우리 옆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 잠자던 용의 실체가 숫자로 파악이 될 것이다. 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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