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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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에 익숙해진 사람은 쉽게 운명의 무게를 받아들인다. 그런 점에서 내 고향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운명론자들이었다. 그들은 도대체 진보라고 하는 것을 믿지 않았다. 내 유년의 고향 마을은 물처럼 고여 있었다. 운명은 방죽에 고인 물과 같은 것이었다.
-19쪽

어린 나이였지만, 한 번도 어린아이다운 적이 없었던 그는 자신의 지긋지긋한(그는 내게 그 표현을 썼다. 그 나이에 벌써 현실에 대해 엄청나게 비극적인 상상을 하곤 했노라는 것이다) 현실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그리하여 상처받은 그의 자존심은 현실로부터 자신을 유폐시키기를 꿈꿨다. 요컨대 그의 독서에의 몰두는, 책속에서 낙원을 발견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현실에 눈감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책들은 일찍부터 마취제였다. 그러므로 성인이 되어 책을 쓰고 있는 지금은 자신의 글 만들기가 마취제인 셈이라고, 그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띠며 나지막하게 고백했다.
-22쪽

사람이 노출 본능 때문에 글을 쓴다는 말은 거짓이다. 더 정확하게는 위장이다. 사람은 왜곡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현실이 행복해 죽겠는 사람은 한 줄의 글을 쓰고 싶은 충동도 느끼지 않는다. 오직 불행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만이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때 그는 펜을 들어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 마취제를 주사한다. 독자들 또한 그 마취제를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뿐이다.
-23쪽

‘세상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세상은 그가 아닌 모든 사람의 편이었다.’(《생의 이면》, 99면)
-76쪽

그는 두 개나 되는 재를 터벅터벅 걸어서 넘었다. 집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가 지나온 두 개의 재에 비하면 언덕이라고나 해야 할 야트막한 고개를 하나 더 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그 대신 오랫동안 버려진 채로 있는 교회당으로 갔다. 어둠이 매우 느리게, 그러나 아주 체계적으로 땅을 점령해 들어오고 있는 시간이었다.
-77쪽

현실 속에서 부정해 버린 아버지를 신화 속에서 되살려 내려는 나의 무의식적인 기도를 아버지는 허용하지 않았다. 그분은 신화 속에 자리를 잡는 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던 것일까. 내가 지워 버린 현실 속으로 불쑥 얼굴을 내미는, 아버지의 뜻하지 않은 출현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86쪽

나는 이미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현실 속에서 부정해 버린 아버지의 자리를 내 신화 속에 만들어 넣으려고 찾아온 무극사에서,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의 아버지를 만난 충격이 하도 커서 나는 정신을 가누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버지의 흔적>, 《생의 이면》, 198~200면)
-88쪽

그는 자신의 그 참혹한 가난과 외로움을 극복해 보려는 어떠한 시도도 해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에 대해 비난할 권리가 없다. 그래서 그는 비난하는 대신(비난하는 것은 참여한다는 뜻이다) 혐오하거나 기피했다. 말하자면 초월하려고 했다.
-108쪽

풍경화는 나를 질리게 한다. 서정시들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것들은 나의 심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침을 튀겨 가며 감탄해 마지않는 소위 명작들 앞에서 한없이 밋밋하기만 한 내 멀뚱한 심장을 노려보며 절망적인 열등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나는 불행하다. 다른 정상인들처럼 색을 식별하지 못하는 색맹임을 알게 된 충격이 가세하여 한동안 기형 콤플렉스에 시달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고박할 필요가 있을지.
-113쪽

나는 기억한다. 세상은 나를 힘들어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그런 것처럼. 그것은 내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 속에 들어와야 한다고 세상은 내게 말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자기 품으로 들어오지 않은 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사전에 이해를 확보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119쪽

아하, 쉼 없이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여태 이야기 상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왜 기도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자기 이야기를 마음 놓고 솔직하게 늘어놓기 위해서이다. 아무 불평도 하지 않고 한없는 끈기와 인내로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이야기들을 들어 줄 상대를 찾아서 사람들은 기도처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무슨 뜻이 있을까.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 줄 상대, 이제까지 나는 그 상대를 찾지 못했었다. 그래서 늘 나의 일상은 불안하고 외롭고 헛헛했던 것이다.
-181쪽

살부(殺父) 인식은,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차 또렷해지면서 자꾸만 그를 괴롭혔다. 아버지는 이제 부재가 아니라 원죄였다. 원죄는 시간으로 지우지 못한다. 원죄의 무게 앞에서는 시간도 무력하다. 그는 자주 아버지를 살해하는 꿈을 꾸며 잠을 설치곤 했다. 때때로 아버지에게 그가 살해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의 편이 아니었으므로. 세상은 그와 너무 달랐으므로. 정신 이상의 아버지가 집안 어른들에 의해 감금된 것처럼 그 또한 세상으로부터 감금되어 있었으므로. 적어도 그 자신은 그렇게 판단하고 일찍부터 세상에 대해 적의를 품고 살아왔으므로.
-215쪽

그는 다 식어 빠진 한 모금의 커피로 목을 축이고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의 쓸쓸한 웃음 뒤로 언뜻 회한 같은 것이 어리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가을이 되면 알을 낳기 위해 강 상류로 헤엄쳐 올라온다는 연어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기억이 그의 영혼에 일으키고 있는 파장을 나는 그의 표정에서 읽었다. 나는 그를 재촉할 수 없었다. 그는 한참 동안 쉼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 띄엄띄엄 자기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끔씩은 고통스러워서인지 얼굴을 찡그렸고, 때때로 부끄러움 때문인지 낯을 붉혔다.
-221쪽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처럼 수월한 것은 없다거나 사랑은 자연 발생적인 것이므로 따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따위의 안이한 생각에 빠져 있다. 사랑에 실패하는 사람은 많지만, 사랑에 대한 자신의 능력 부족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랑을 유쾌한 감정 놀음이나 우연한 몰입쯤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그렇게 이해하는 한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사랑에도 기술이 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들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면, 사랑이야말로 그래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배우지 않을 때, 종종 사랑은 흉기가 되어 사람을 상하게 한다.-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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