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사려 깊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미소였다. 영원히 변치 않을 듯한 확신을 내비치는, 평생 가도 네댓 번밖에는 만날 수 없는 보기 드문 미소 말이다. 한순간 외부 세계를 대면하고 있는-또는 대면하고 있는 듯한- 미소였고, 또한 어쩔 수 없이 당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으며 당신에게 온 정신을 쏟겠다고 맹세하는 듯한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만큼 당신을 이해하고 있고, 당신이 스스로 믿는 만큼 당신을 믿고 있으며, 당신이 전달하고 싶어 하는 최상의 호의적인 인상을 분명히 전달받았노라고 말해 주는 그런 미소였던 것이다.
-76쪽
나는 그와 악수를 했다. 악수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은 일처럼 보였다. 갑자기 어린아이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51쪽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갔지만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다-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맑게 갠 날 아침에......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253쪽
(작품해설 김욱동) 191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려면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시스터 캐리』(1900)를 읽어야 하고 193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려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1939)를 읽어야 하듯이, 1920년대 미국이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야 한다. 재즈와 찰스턴 춤과 자동차가 상징하는 1920년대 미국의 사회 현실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유럽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상류계층에게는 재산을 늘릴 수 있는 최적의 시대였다. -259쪽
그러나 이러한 경제 성장의 그늘에는 도덕적 타락과 부패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 톰 뷰캐넌과 개츠비가 타고 다니는 번쩍거리는 고급 승용차, 개츠비가 주말마다 벌이는 사치스러운 파티와 마치 ‘불빛을 쫓는 부나비처럼’ 환락과 쾌락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 톰과 데이지가 보여 주는 도덕적 혼란과 무질서와 무책임은 바로 전쟁이 끝난 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방황하던 이 무렵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보여 준다. 피츠제럴드의 한 단편 소설의 제목 그대로 이 무렵의 미국은 말하자면 ‘현대판 바빌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톰의 저택이나 개츠비의 파티처럼 겉으로는 우아하고 고상하며 화려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 보면 탐욕과 이기와 정신적 공허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259쪽
에클버그라는 안과 의사가 세워 놓은 광고탑은 전통적인 神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대인들은 전통적인 종교를 밀어내고 바로 그 자리에 자본주의와 상업주의라는 새로운 신을 세워 놓았다. 한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미국의 꿈’은 이제 과육을 빼낸 오렌지나 레몬처럼 껍질만 남은 채 쓰레기 계곡처럼 악취를 풍기고 있으며 안과 의사의 광고탑처럼 상업주의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271쪽
피츠제럴드는 이 작품의 제목을 두고 무척이나 고심하였다. ‘쓰레기 계곡과 백만장자들’, ‘웨스트에그의 트리말키오’, ‘웨스트에그로 가는 길’, ‘황금 모자를 쓴 개츠비’ 등 여러 제목을 염두에 두었지만 그 가운데에는 ‘푸른색과 붉은색 그리고 흰색’이라는 제목도 포함되어 있었다. ‘푸른색과 붉은색 그리고 흰색’은 두말할 나위 없이 미국을 상징하는 성조기의 색깔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어떤 식으로든지 미국과 관련시키려고 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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