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만든 먼나라 이웃나라 15 : 에스파냐 먼나라 이웃나라 15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먼 나라 이웃나라의 대미를 장식하는 나라는 에스파냐다. 스페인으로 더 익숙한 바로 그 나라!

 

읽는데 시간이 엄청 걸렸다. 내용이 무척 방대하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파란만장한 역사인데다가 얽혀 있는 이웃 나라와의 관계도 보통 복잡한 게 아니어서 정리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지는 마시라. 복잡해도 충분히 재미있으니까. 한 나라의 수천 년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면 오히려 실례일 것이다.

 

에스파냐 하면 생각나는 게 뭐가 있을까? 투우, 축구, 시에스타, 카르멘에 돈키호테 정도? 아무튼 뭔가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느낌이 가득한 나라다. 실제로 들여다보니 정말 열정 그 자체였다. 너무 열정적이어서 과할 정도로...

 

투우 이야기가 앞부분에 짧게 소개된다. 투우야 자료 화면으로 잠깐씩만 보았을 뿐, 경기 전체를 본 적이 없는데 소가 죽어야 끝난다는 것을 알고 좀 놀랐다. 스포츠나 오락이 아닌 ‘문화’ 면에 기사가 실리는 투우는 그들 나라에서는 ‘의식’에 가깝다고 하니 내가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다소 잔인해 보이긴 하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로 에스파냐 이름이 등장하곤 했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재밌다. 취미로 고고학을 연구하는 아버지와 여덟 살 난 그의 딸이 동굴을 발견했는데, 아이가 먼저 동물 천장의 그림을 발견하고는 '알타 미라!'라고 외친 것이다. 알타는 '위'라는 뜻이고 미라는 '보라'는 의미. 그러니까 위를 보라고 말한 게 이 유명한 구석기 벽화가 남겨진 동굴의 이름이 된 것이다. 오홋!!

 

에스파냐의 역사에서 빼먹을 수 없는 게 강력한 가톨릭 국가라는 것이다. 이슬람교가 파죽지세로 힘을 뻗어나갈 때, 에스파냐가 있는 이베리아 반도도 이슬람 세력에 의해서 덮여버렸다. 북부의 산악지대만 제외하고. 모퉁이에 몰린 그리스도교 국가들은 이를 악물고 버텨내더니 급기야는 800여 년 만에 이슬람 세력을 모두 쫓아낸다. 그 해가 1492년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해 에스파냐는 콜럼버스를 통해 그들이 알지 못하던 새로운 대륙을 찾아냈다.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다. 에스파냐인 들에게 1492년은 영광의 해다. 그랬기에 그로부터 500년 뒤인 1992년에는 again1492를 외치며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개최했다. 88올림픽 다음 개최지였기 때문에 기억이 난다. 성화 봉송 마지막 주자가 불화살을 쏘아서 과녁을 맞히던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간지 좔좔~

 

 

 

다시 역사로 돌아가서, 이 무렵은 카스티야이레온 왕국의 이사벨 공주와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자가 결혼을 해서 그리스도교 연합 왕국을 결성했을 때의 일이다. 서로 독립된 나라를 다스리면서 공동 왕으로 군림하며 거대한 제국을 이뤄낸 이들 부부에게는 열 명의 자녀가 있었다. 영아 사망률이 높던 시절이니만큼 살아남은 아이는 다섯. 이 아이들이 유럽 각국과 결혼으로 맺어지면서 제국은 더 거대해진다. 군사를 동원하는 것보다 더 쉽게, 더 유리하게 영토를 넓히는 방법이 혼인이었다. 비단 에스파냐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다른 유럽 여러 나라들도 그렇게 사돈에 사돈으로 얽혀 있고, 지나친 근친혼으로 인해 기형 출산이 잦았던 시절이었다. 모든 일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따르는 법. 쉽게 얻은 영토는 쉽게 잃을 수 있었다. 대가 끊겼을 때 그 후사를 다른 왕실의 가문이 냉큼 이을 수가 있으니 말이다.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죽게 되자 유럽 각국은 그 후사를 자기 나라 사람이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이칠란트 후보 호세 페르난도는 외할머니가 카를로스 2세의 이복 누나였던 점에서 다음 왕위의 자격을 주장했고, 오스트리아 황제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레오폴트 1세의 아들 카를은 아버지 레오폴드 1세의 외할머니가 에스파냐 공주였다는 점에서 자신에게 왕관이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물론 이런 주장들은 그들 뒤에 있는 어른들이 내세운 거지만 하여간!) 심지어 앞서 나온 페르난도와 방금 나온 카를은 조카와 삼촌 사이이기까지!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의 손자 필립이 왕관을 노렸다. 필립의 할머니가 카를로스 2세의 이복 누나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 자격을 주장하는 할머니나 누나는 모두 고인이 되었지만 그 혈통은 자신들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충분히 자격이 있다는 것! 이들 나라뿐 아니라, 이들이 에스파냐 왕관을 가져감으로 인해 유럽의 세력 균형이 바뀌는 것을 경계하는 다른 나라들까지도 이 왕위 계승 문제에 뛰어들어 아주아주 시끄러웠다. 그 꼬라지를 다 지켜보고 산 에스파냐 백성들이 얼마나 신물이 났을까 싶다.

 

유럽 제일의 가톨릭 국가라지만 이들의 가톨릭 순혈주의는 무서울 지경이었다. 뭐든 극단적이면 도가 지나친 법! 나라의 근간이 되었던 아랍 출신 농민들이 쫓겨났고, 두뇌 역할을 하던 유대인들도 쫓겨났다. 가톨릭 이외의 종교는 물론이요, 과거에 개종한 자들마저도 탄압을 받았다. 조상 중에 누군가가 이슬람교나 유대교를 택해 가톨릭을 버린 경력이 있으면 고등 교육을 받을 수도 없고 이미 갖고 있던 관직이나 성직도 박탈당했다. 심지어는 종교 재판에 회부되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상상초월의 연좌제다. 밀고와 모함이 판을 치고 억울한 마녀 사냥이 자행되었다. 이러니 조상의 경력을 조작하거나 족보를 고치고 과거를 세탁하는 비리 유행했다고. 어째 지나치게 기시감이 든다.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고 어마어마한 황금을 본국으로 끌어들였지만, 이것이 에스파냐에게 얼마만큼의 도움이었는지 모르겠다. 막대한 황금을 끝없이 쏟아 부었어도 잦은 전쟁으로 인한 부채를 해결하지 못해 국가 파산에 이른 적이 여러 번이었고(심지어 저 유명한 펠리페 2세 때 무려 네 번!), 지나치게 방대한 해외 영토를 관리하지 못해 국내 정치가 더 어지러워지기도 했다. 그들이 신대륙이라 부른 그 대륙이 받은 타격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은 그야말로 대재앙! 문명이 파괴되었고, 병균이 옮아가 민족 자체가 말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게 400년의 시간이 흘러 에스파냐의 언어, 종교, 문화는 남미의 스타일로 굳어버렸고, 정복자의 동상이 곳곳에 서 있기까지. 참으로 묘한 역사의 귀결점이다.

 

 

 

긴긴 역사의 과정을 보면서 우리와 무척 닮은 모습들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특히 근현대사로 넘어오는 부분이 그랬다. 자립하지 못하고 외세를 끌어들이는 나약한 군주의 모습에서 고종이 떠올랐고, 외국 군대가 쳐들어오는 위기가 닥쳐오자 왕이 식민지로 먼저 도망칠 궁리를 한 부분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선조가 떠올랐다. 심지어 스페인 내전은 몇 년 뒤에 벌어지는 한국 전쟁의 평행이론 같았다. 여러 나라의 대리전 성격이었고, 전쟁이 끝난 후 독재 정권이 장기 집권했던 것도 그랬다. 그러나 프랑코 사후 국왕으로 복귀한 후안 카를로스의 자세는 우리 역사와 무척 비교되는 부분이 있었다. 어게인 프랑코를 외치는 쿠데타 세력 앞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헌법의 수호를 재차 천명한 국왕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우리 역사의 어느 대통령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부러운 부분만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역동적이고 지나치게 열정적이어서 말도 못하게 혼란스러웠던 이들의 정치판은 우리 역사의 이면을 떠올리게 했다. 한 왕조가 무려 500년 이상씩 가곤 했던 우리 왕조의 긴 생명력의 원천 같은 것 말이다. 백성들이 지나치게 순종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백성들을 어느 정도 눈치 보고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했던 문화의 힘 말이다.

 

그런데 또 재밌는 부분은 이 극단적일 만큼 열정적인 민족의 지극히 느릿한 성격이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감정과 일방적인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고집과 독선, 그것이 서로 충돌해서 폭동, 반란, 쿠데타 전쟁의 연속으로 이어진 에스파냐인 들의 기질인데도 모든 것은 여유롭고, 너그럽고, 서두르지 않는 전형적인 남쪽 나라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패스트푸드를 먹고 시간을 쪼개 쓰며 모든 것에 ‘빨리빨리’를 외치는 데 비해 에스파냐인 들은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고 저녁 열 시가 되어서야 가족들과 함께 식당에 나와 새벽 두 시 세 시까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삶을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슬로우, 슬로우, 슬로우.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성격이 에스파냐의 옛 식민지였던 남아메리카도 거의 같다는 것이다. 언제나 조급하게 서두르는 우리나라 사람이 에스파냐에 가서 적응하려면 꽤 힘들 것 같다. 그것을 틈새시장으로 노릴 격정적인 기질이 우리에게 또 있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천천히 삶을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게 참 재밌다. 세계 역사에서 보면 변방에 속했던 유럽이 그 변방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신항로를 개척했고, 순수한 종교를 앞세워 폭력을 행세 했고, 레판토 해전의 승리로 최고 정점을 찍었던 에스파냐가 순혈령으로 인해 내리막길을 걸었고, 바다의 왕자는 영국과 네덜란드(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한!)의 몫이 되었다. 영국보다 200년이나 앞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자랑했지만 화려한 영광만큼이나 그 그림자도 짙고 어두웠다. 사실 읽으면서 이 나라가 망하지 않고 버틴 게 신기했다. 그것도 분명 그들의 저력이리라.

 

프랑코 독재 정권이 2차 세계대전 때 보여주었던 박쥐같은 자세는 전쟁이 끝난 후 서방 세계로부터 왕따 대접을 받는 이유가 되고 말았다. 전쟁으로 인해 망가진 국토와 경제 상황을 다시 일으키는 데 극적인 구원투수 역할을 해준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아, 이거 우리 덕분이라고 으스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속이 무척 쓰렸다. 우리가 일본만 살린 게 아니었구나. 이 나라는 1차 세계대전 때도 전쟁 특수로 경제를 극적으로 살려놓았는데 또 다시 다른 나라의 전쟁으로 기사회생하고 말았다. 이것도 천운이라면 천운이다.

 

긴긴 이야기를 알기 쉽게 잘 정리해 주었다. 무척 복잡한 역사인지라 조금은 천천히, 공을 들여 읽을 필요가 있다. 그 덕분에 유럽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어렴풋이 정리가 되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스페인 내전도 읽고 싶어졌고 카탈로니아 찬가도 읽고 싶어졌다. 피카소와 달리의 그림이 더 정겹게 느껴졌고 돈키호테 음악(맨 오브 라만차)도 더 듣고 싶어졌다. 평소 에스파냐에 가보고 싶다고 크게 충동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 복합적인 나라의 면면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졌다. 정열적인 붉은 색이 무척 잘 어울리는 이 나라의 자연과 문화를 모두 체험해 보고 싶다.

 

먼 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는 대학교 때부터 읽게 되었는데,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들은 소장하고 있지 못하다. 한참 역사를 배우고 있는 조카를 생각하니 남은 시리즈도 모두 채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 이 시리즈를 다시 읽어도 충분히 재밌으리라.

 

덧글) 몇몇 오타와 수정되었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다. 여러 차례 찍을 테니 다음번에는 수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

 

21

소의 등에 맺어둔 리본을 >>> 묶어둔의 의미 같다.

53쪽과 54쪽의 지도가 서로 배치된다. 53쪽에서 카스티야이레온 왕국령으로 설명한 지중해의 섬들이 뒷장에선 아라곤 왕국 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53쪽이 틀린 것으로 보인다.

59

그라나라의 함락으로 >>> 그라나다

68

태조 왕건은 부인이 무려 열 명이나 되었는데>>> 29명이었다. 왕후가 6, 부인이 23.

70

가톨릭 왕들의 셋째 딸 후아나>>>둘째 딸

76

마르가레테와 후안나의 오빠>>>후아나

82

폴랑드르>>>플랑드르

140

황제를 재판도 없이 처행했다고?>>>처형했다고?

148

700년간에 걸친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 >>>800년

161

프랑스 황태자 루이를 루이 14세의 처남이라고 표기했다. >>> 장남

181

반란의 앞장에 페르난도 왕자가 서서 지휘를 하니 >>>문장 부자연스럽다. 페르난도 왕자가 반란에 앞장서서 지휘를 하니

192

그들 존경해서 >>>그를 존경해서

202

왕당파는 권력을 잃은 되찾기 위해 >>> 잃어버린 권력을

208

알폰소 12세의 치세 중 초반 12년간은>>> 재위 기간이 12년이었다. ‘중 초반’ 생략

208

에스파냐의 국운이 상승하는 하던 시기>>> 국운이 상승하던 시기

214

전투가 주로 벌어진 지역이 북아메리카 리프 산맥이어서 >>> 북아프리카

217

1917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 끝나갈 무렵(전쟁이 1918년에 끝났으니까)

232

소련의 스탈린은 어떻게든 공산주의를 퍼뜨려 유일한 공산 국가 처지를 벗어나>>> 1936년에 몽골도 이미 사회주의 국가였다.

233

공화파에는 무려 53개 국가에서 3만 2,000명의 젊은이가 국제 여단을 조직해서 국민파 군대 편에 서서 >>> 인민 전선 편에 서서

261

대서양 너머를 가르키고 있어. >>> 가리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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