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적 병사를 총검으로 찔러 죽이는 병사를 백안시하는 한편, 적기를 10기나 격추한 파일럿은 영웅으로 추앙했다.
-254쪽
살육 병기의 개발은 적을 얼마나 멀리, 보다 간단하게 대량의 희생자를 내느냐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맨손으로 때려죽이는 것보다는 날붙이를, 그리고 총기류를, 포탄을, 폭격기를, 결국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이런 식으로. 거기다 미국의 경우 이건 나라를 지키는 기간산업 중에 하나가 되었어. 그래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거야. 전쟁 당사자 중에서 가장 잔인한 의사를 가진 인간, 즉 전쟁 개시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만큼 적으로부터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었다. 백악관에서 만찬회에 출석하고 있는 대통령은 적이 흩뿌린 피를 뒤집어쓰지도, 육체를 파괴당한 전우가 내뱉는 단말마의 외침을 듣지도 않는다. 살인에 뒤따르는 정신적 부담을 거의 받지 않는 환경에 있기에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잔학성을 더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군대 조직이 이러한 형태로 진화하고 과학 기술 덕에 병기가 개선되고 있는 이상, 근접전에서 살육이 격렬해지는 것이 당연했지만 전쟁의 의사결정자는 아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대규모 공중 폭격을 명령할 수 있는 셈이다. -255쪽
전쟁의 심리학은 권력자의 심리학이라고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사람은 어째서 전쟁을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명령하는 인간의 정신 병리를 먼저 해명해야 했다.
-256쪽
반대 의견의 문제점은 꼬치꼬치 따지면서 배제하고, 찬성하는 사람들만 주위에 가득하게 채워 가는 것. 민주적인 결정으로 보이는 독재였다. 번즈 정권은 이렇게 해서 이라크 국민들의 살육도 주도했던 것이다.
-276쪽
예거는 드디어 전투의 대의를 손에 넣었다. 조국을 위해서도,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도, 아니면 돈을 위해서도 아닌, 자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304쪽
이라크군과 합동으로 8000명의 병력을 조직하여 반미 세력의 거점이 되었던 이 지방 도시에 총공격을 개시했다. 격렬한 시가전이 전개된 결과, 네 사람의 보복을 위해 1800명의 병사와 시민이 사망했다. 게다가 미군이 많은 열화우라늄 탄을 사용했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에 의해 오염된 이 지역에서는 암 환자나 기형아가 증가하고 있을 터였다. 전부 이 행성에서 최고의 지성을 가졌다고 자부하고 있는 생물들이 한 일이었다.
-313쪽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415쪽
군산 복합체의 중심에 있다 보면 지배 논리란 것이 굉장히 단순하다는 사실에 놀라고는 했다. ‘공포’였다. 전쟁으로 돈을 벌고 싶은 정책 결정자는 다른 나라의 위협을 과장하여 국민에게 크게 퍼뜨리기만 하면 됐다. 판단의 근거를 국가 기밀이란 벽으로 감춰 버리면 매스컴도 확인 없이 이 위협론에 올라탔다. 그저 그것만으로 막대한 자금이 세금에서 국방 예산으로 흘러들어 군수 기업 경영자들에게 갈 대가가 순식간에 뛰어올랐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심어진 공포는 국경 밖으로 전파되어 다른 나라도 미국을 따라서 군사 예산을 늘렸다. 이런 국가 간의 긴장은 의심 때문에 현실에 비해 훨씬 고조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진짜 전쟁으로 이어져 특정인만 이득을 얻는 무한한 금맥이 형성됐다. 게다가 위정자로서는 외적을 만들면 덤으로 지지율이 오른다는 이익이 생겼다. 이 사태를 예견한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연설에서 군산 복합체의 위험성을 국민에게 경고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세계 각국에 전쟁으로 이윤을 얻는 기업이 존재하는 이상, 이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질 일은 없을 터였다.
-462쪽
인간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는 않네. 하지만 선행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미덕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행동이라면 칭찬 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국가의 선은 다른 국민을 죽이지 않는 행위로밖에 드러나기 어렵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한 것이 지금의 인간이야.
-475쪽
현생인류는 탄생한 지 20만 년이나 지나도 서로 죽이는 걸 멈출 수 없는 딱하디 딱한 지적 생명체네. 살육 병기를 모아서 서로를 위협하지 않으면 공존할 수 없는 이 현재 상황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윤리의 한계였던 거지. 슬슬 다음 존재에게 이 행성을 넘겨줘도 좋을 때라고 생각하네.
-475쪽
역사학만은 배우지 말게. 지배욕에 사로잡힌 멍청한 인간이 저지른 살육을 영웅담으로 바꿔서 미화하니까 말이야.
-481쪽
네오나치나 백인 지상주의자 등 자신의 폭력 행동을 정치사상으로 탈바꿈하는 가짜 우익에는 공통적인 심성이 있었다. 비뚤어진 자존심의 발로였다. 그들은 자란 환경 등의 문제로 자신을 직접 긍정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속된 집단을 무턱대고 긍정하며 그 집단의 구성원인 스스로가 훌륭하다는 논법을 취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관심은 자기 자신에게 밖에 향하지 않는 것이 명백했다. 그 증거로 가짜 우익의 공격은 자신들의 주장에 이의를 다는 동포들, 심지어 그들의 의견에 무턱대고 긍정했던 구성원에게도 향할 수 있다.
-503쪽
루벤스는 이라크 전쟁을 모의할 때마다 신에게 기도를 해 왔던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경건한 기독교인. 천상에서 내려오는 빛을 받고 있는 그의 발치에 불관용이라는 이름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번즈가 내세우는 것이 이상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전지전능한 존재를 꿈꾸며 이교도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널리 보이는 습성이었다. 피부색이나 언어의 차이뿐만 아니라 어떤 신을 믿는지도 적과 아군을 식별하는 장치로써 기능했다. 그리고 신은 회개했다고 말하기만 하면 대학살의 죄악도 사라지게 해 주는 편리한 존재였다.
-506쪽
과거 20만 년에 걸쳐 서로 죽이는 것을 되풀이해 온 인류는 항상 다른 집단의 침략에 떨었고 그 공포심이 더 큰 두려움을 초래하여 피해망상 직전의 상태를 유지하다가 국가라는 방위 체제를 만들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 이상한 심리 상태는 인류 전체가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상이 아니라 정상이라고 여겨지고 있었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상태’였다. 그리고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위험하다는 확고한 증거를 서로가 이미 자신의 내면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모두 다른 사람을 상처 입혀서라도 식량이나 자원, 영토를 빼앗고 싶어 했다. 이 본능을 적에게 투영하여 공포를 느끼고 공격하려고 했다. 그리고 죽음을 초래하는 폭력의 행사에는 국가나 종교라는 세력이 면죄부가 되었다. 그 궤도 바깥에 있는 것은 에일리언, 즉 적이기 때문이었다.
-5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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