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환의 심판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6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무척 재밌게 읽었다. 이 책은 그 후속편이다. 전편에서 총상을 입은 마이클 할러 변호사는 약물 중독으로 재활원까지 다녀왔고 1년 만에 현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인연은 현재 사건이 진행되는 2007년으로부터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사였던 제리 빈센트는 미키에게 보기 좋게 당한 뒤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새출발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서 검사 시절보다 더 잘 나가게 되었다. 둘은 앙숙으로 남지 않고 윈윈 전략을 구사해서 서로에게 일이 생기면 상대의 일을 다 넘겨받는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15년의 점프. 미키는 슬슬 일로 돌아가고 싶지만 몸과 마음이 아직 덜 깨어서 초조해 하던 참이었다. 뜻밖에도 빈센트의 살해 소식이 들려오고, 그 바람에 그가 맡고 있던 의뢰가 전부 미키에게 넘어온다. 서른 건이 넘는 사건들이었고, 그 중에는 초유명 인사인 월터 엘리엇의 사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엄청난 수임료가 걸려 있는 이 사건은 미키가 돌아왔다는 것을 화려하게 장식해줄 이슈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큰 돈이 걸려 있는 재판이란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큰 법이다. 제리 빈센트가 그 사건을 맡고 있다가 살해를 당한 것이 그 증거였다.

 

여기까지도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사건을 더 재미있게 만들었던 것은 또 다른 등장인물 때문이었다. 해리 보슈. 최고의 강력계 베테랑 형사 해리 보슈는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또 다른 유명한 주인공이었다. 마이클 코넬리 시리즈를 보면 해리 보슈 시리즈가 무척 많다. 이 책의 뒷날개에 소개된 책만 해도 열권이다. 그 해리 보슈가 빈센트 살해 사건을 파헤치느라 마이클 할러와 마주쳤다. 첫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서로의 영역을 넘봤다는 신경전마저도 보인다. 미키는 해리 보슈의 움직임이 어쩐지 낯익었다. 혹시 우리가 전에 본 적 있냐는 질문에 보슈는 그럴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가 같은 사건을 다뤘다면, 당신이 날 잊었을 리가 없겠지."

 

아, 이 짧은 대답이 왜 이렇게 섹시해 보이는지. 해리 보슈 시리즈를 전에 본 적이 없는데, 이 문장 때문에 그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혹시 꼭 시리즈 순서대로 봐야 하는 게 아니라면 가장 재미있는 해리 보슈 시리즈 추천 바란다.

 

마이클 할러는 다시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라는 명성 답게 일단 운전사를 확보했고, 차 안을 사무실처럼 활용하는 기존 습관도 유지했다. 쉬고 있던 일년 동안에 감각은 조금 무뎌졌지만 본능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재판이 진행되고 배심원을 확보하고, 의뢰인을 설득하고 적절히 협박도 하고, 또 이러저러한 위기를 헤쳐나가면서 작품은 천천히 달아오른다. 548쪽에 달하는 꽤 긴 이야기인데 전작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보다는 상승세가 가파르지 않았지만 충분히 다음, 그리고 또 다음이 궁금해져서 애를 타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경찰도 거짓말을 하고, 변호사도 거짓말을 하고, 증인도 거짓말을 하고, 피해자도 거짓말을 한다.

재판은 거짓말 경연장이다. 법정 안의 모든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판사도 알고, 심지어 배심원도 안다. 그들은 법원 건물 안에 들어설 때부터 앞으로 거짓말을 듣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들이 정해진 자리에 앉는 것은 거짓말을 듣겠다는 동의와 같다.

피고 측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인내심을 갖는 것이 요령이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것. 그냥 아무 거짓말이나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이쪽에서 꽉 움켜쥐고 뜨거운 쇠처럼 잘 벼려서 날카로운 칼로 만들 수 있는 거짓말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만든 칼로 사건을 찢어발겨 내장을 바닥에 쏟아내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칼을 벼리는 것. 날카롭게 다듬는 것. 자비심도 양심도 없이 그 칼을 휘두르는 것. 모두 거짓말을 하는 곳에서 진실이 되는 것. -11쪽

 

작품의 첫 장을 옮겨보았다. 매력적인 시작이다. 그리고 저 거짓말들이 작품 전체에 걸쳐서 퍼져 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누가 누구를 속이는지는 끝까지 읽어봐야만 다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재판이 끝나고 누군가가 또 죽고 나서도 진실은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의 마지막 장까지 다 봐야만 모두 파악할 수 있다. 끈기 있고 인내심도 큰, 그리고 저력 있는 작가 마이클 할러의 솜씨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 미키는 그야말로 탐욕적인 변호사였다. 그는 돈이 되는 사건이라면 가차 없이 달려들었고, 양심의 가책 따위는 자동차에 끼워져 있는 광고 문구보다도 하찮게 여겼다. 그러나 큰 사건을 겪고, 가족의 위협을 몸소 체험하고, 또 전처와의 재결합까지도 꿈꿀 만큼 인생이 잘 풀려갈 무렵,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잃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이 뿌린 씨앗을 보았고 본인의 책임도 통감했다. 그리고 힘든 재활의 시간. 그는 많이 반성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돈냄새 잘 맡는, 성공을 향한 촉각이 곤두선 그런 변호사였지만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 보인다. 전처와는 더 벌어졌지만 한걸음씩 조심스런 발걸음을 내딛으려 했고, 그 조그만 진전에 감사하고 만족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보기 좋은 변화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미키이다 보니 해리 보슈의 역할은 크지 않았지만, 마지막의 반전은 그가 담당해내었다. 아, 이렇게 엮이는구나. 종종 언급되는 미키의 아버지가 변호사 시절 활약했던 이야기는 시리즈에 없는지 모르겠다.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그쪽도 꽤 재밌을 것 같다.

 

우리와는 많이 다른 사법 체계이지만 어찌 됐든 법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 법망을 아주 잘 피해가는 사람들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아주 많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책의 제목처럼 탄환의 심판, 총알 평결이 따라가기도 한다. 그러니까 정의의 실현을 기다릴 수가 없어서 직접 평결을 내리는 거리의 사람들의 심판 말이다. 당연히 옳지 않은데, 간혹 박수를 보내고 싶을 때도 있다는 것을 부인 못하겠다. 영화 잭 리처에서 탐 크루즈가 멋졌던 게 그런 거였다. 그는 심판해야 할 대상 앞에서 주저하지 않았고, 그 바람에 자신의 자유를 포기했다. 물론 잭 리처쯤 되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책 표지를 다시 들여다 본다.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이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한 손에는 정의의 검을 들고 있다. 이 여신상이 상징하는 것처럼 이 땅의 법이 제발 공정하고 부디 정의롭기를, 부질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말도 안 되는 사면권이나 남발하지 말고......

 

덧글) 341쪽 피해를 입일지 >>>입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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