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단길로 간다 푸른숲 역사 동화 6
이현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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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때마다 좋았던 푸른숲 역사 동화 시리즈다. 게다가 제목부터 흠뻑 반하게 만들었다. '비단길'이 나오고, 작품 속 주인공은 무려 '발해' 사람이다. 이름도 예쁘다. 붉은 비단 홍라. 금씨 상단의 외동딸 금홍라. 홍라의 어머니는 금씨 상단을 이끄는 대상주다.

 

그러나 태풍에 배가 부서지고 홍라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홍라를 물에서 건져낸 것은 신라 출신 소년 비녕자였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곁을 지켜준 이는 금씨 상단의 호위무사 친샤와 수습 천문생 월보였다. 어머니의 생사를 알 수 없던 홍라는 서둘러 상경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하여, 비녕자의 집에서 맡아 기르던 말을 제멋대로 금가락지 하나로 값을 치르고 잡아 탔다. 나름 결단력 있고, 행동도 빨랐지만 분명 무례한 결정이었다. 값을 치른다고 해서 거래가 무조건 성사되는 것이 아닐텐데, 어린 홍라는 아직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상경성에 돌아와서도 어머니의 행방은 찾지 못했다. 사람들을 보내어 사방으로 알아보았지만 알 길이 없었다. 빌린 배는 난파되었고, 물품들은 모두 잃었다. 일꾼들은 품삯을 요구했고, 빚쟁이들이 날마다 찾아왔다. 특히나 상경성 제일 부자이면서 고리 이자로 비싼 섭씨 영감네 독촉이 무시무시했다. 날마다 불어나는 빚 때문에 금씨 상단이 통으로 넘어갈 판이었다. 게다가 국가에 물품을 대야 하는 날짜도 다가오고 있었다. 황실의 혼인식에 쓸 비단 오백 필이 필요했다. 여러모로 홍라에게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홍라는 어머니께서 위기 상황에 빠지면 쓰라고 했던 묘원의 열쇠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그드 은화를 발견한다. 황실에 바칠 비단 오백 필은 너끈히 살 양으로 말이다. 그러나 홍라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짜르의 얼굴이 새겨진 특별한 은화였기 때문에 사마르칸트로 가면 더 많은 양의 돈으로 바꿀 수 있었다. 두 배라면 비단 천 필. 밀린 빚을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홍라는 결심했다. 사마르칸트는 멀어서 시간에 댈 수 없지만 솔빈의 소그드 인 마을에 가면 여기보다 나은 값으로 거래를 할 수가 있다. 솔빈에 가서 은화를 팔고, 그 돈으로 솔빈의 말을 사는 것이다. 솔빈의 말은 당나라까지 널리 알려진 명마이니, 이 말을 장안에 가져가면 훨씬 비싼 값에 팔 수 있다. 그리고 장안에서 비단을 싸게 사서 돌아오면 몇 갑절의 이문을 남길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에 미치자 홍라는 당장에 행동에 옮긴다. 언제까지 어머니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섭씨 영감의 이자가 불어나는 상황이다.

 

그러나 홍라에게 은화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빚쟁이들이 몰려올 터, 최대한 은밀하게 조용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리하여 호위무사 친샤와 수습 천문생 월보가 같이 길을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홍라를 구해줬던 인연이 있던 비녕자가 부모를 잃고 이 자리에 합류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뜻밖의 감시인이 따라붙었다. 섭씨 영감의 아들이 차용 증서를 갖고 찾아온 것이다. 그리하여 반갑지 않은 혹이 붙었으니 이 소년의 이름은 쥬신타! 아버지를 닮아 셈에는 빠르지만 아버지같이 지독한 수전노는 아니다. 홍라가 그에게 마음을 열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잠시 홍라가 움직인 길을 살펴보자. 당시 발해에는 여러 개의 국제 교역로가 있었다. 발해의 수도 상경에서 부여부를 지나 거란으로 향하는 거란도, 상경에서 영주를 거쳐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이르는 영주도, 상경에서 서경을 거쳐 압록강에 이르고, 거기서 서해를 건너 산동 반도에 상륙해 다시 육로로 장안까지 갈 수 있는 압록도가 있다. 여기에 동경을 거쳐 신라의 수도 서라벌에 이르는 신라도가 있고, 동경을 거쳐 바다 건너 일본의 서부 해안으로 향하는 일본도가 있다. 홍라는 엄마를 따라 이 여러 길들을 다녀본 경험들이 있다. 그러나 이 먼 길을 스스로 주도해서 가는 길은 분명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그러나 배포 있게 출발했고, 시간을 다투어 말을 달렸다.

 

경험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법! 급한 마음에 서둘렀지만 그것이 도리어 발목을 잡았다. 무리한 행보로 탈이 나버린 홍라. 여러모로 시간을 지체했고, 장안까지 가는 건 도저히 무리였다. 분하지만 보다 차분하고 냉정한 판단을 하는 쥬신타의 충고로 홍라는 등주까지로 길을 단축시킨다. 당나라 땅인 등주에서도 솔빈의 말은 반응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비단은 보다 값싸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홍라의 일행은 등주로 향한다. 그리고 이 책의 모든 절정과 반전은 모두 등주에서 일어난다. 짜릿한 첫 거래의 성사와 뜻밖의 일탈, 그리고 예기치 못했던 사건들까지...

 

열세살 홍라로서는 여러모로 쉽지 않은 길이었다. 상단에서 나고 자라 많은 것을 보아왔지만, 구경하던 사람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기술도 부족했고, 진심을 표현하는 것도 어리숙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겐 상처를 주었고, 본인도 약한 마음에 스스로를 베어버렸다. 여기까지 도착한 배짱은 인정해 준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홍라는 분명 부잣집 철모르는 아가씨일 뿐이었다.

 

 

힘들었던 여정이었지만 흑수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던 아버지도 만났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크고 따뜻했다. 다 정리하고 아버지와 함께 살자는 제안은 달콤하고도 위험했다. 그러나 홍라는 어머니의 강인하고도 끈질긴 핏줄도 이어받았다. 홍라는 이 거래를 스스로 마무리 짓고 싶었던 것이다. 애석하게도 생각만큼 쉽지 않아 보이지만...

 

 

홍라의 호위 무사 친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친샤의 속 이야기가 나올 때 무척 슬펐다. 그녀가 말을 잃게 된 과정과, 그 후의 삶이 그림 속에서 말없이 전달되었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그림인데, '발해'라는 무척 낯선 나라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 까닭이다. 물론, 남은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 그림들을 있는 그대로 다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림을 상징적으로 잘 포착해서 옛스러우면서도 개성 강한 느낌이 잘 전달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그림만 따로 찾아서 몇 번이나 더 들여다볼 정도로 말이다.

 

이 책은 홍라가 교역길에 나서면서 여러 사건들을 접하게 되는 일종의 모험으로도 읽히지만 그것보다 '성장 소설'로 더 크게 다가온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제 생각만 할 줄 알던 철부지 아가씨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시련을 당하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꿈이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책 속의 인물들은 그렇게 순리를 따라갔다. 가야할 곳으로 향했고, 갚아야 할 것들을 갚았다. 그리고 새출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 책의 제목이 나온다. 홍라는 비단길을 택한 것이다.

 

 

책의 표지 그림이기도 한 이 그림은 맨 마지막에 나온다. 독자를 흐뭇하게 만들고 기대를 갖게 하는 그림이다. 그 비단길, 그 도전, 그 모험, 그 성장, 홍라뿐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독자 모두에게 갖고 싶게 만들 것이다.

 

책에서는 국사 책에서 몇 안 되게 나오는 발해에 관한 것들이 적절하게 소개된다. 말갈과 흑수를 포함한 다문화 국가 발해, 무왕 시절의 명장 장문휴, 선왕 때 해동성국이라고 불렸던 일 그리고 신라 장보고와 청해진 등등. 그리고 이 책에서 기발하게 등장한 십자가도 소개한다.

 

사진 속 불상의 가슴에 걸린 십자가가 보이는가. 조선 후기에 기독교가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미 8세기 무렵에 우리 조상들은 저 먼 서방의 종교와 교류하고 있었다. 앉아서 이방인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길을 뚫고 교역을 했던 발해다운 문화 전파다. 불교와 기독교가 자연스럽게 섞인 이 모습에서 평화로운 미소가 지어진다.

 

국제도시였던 발해의 상경성. 그곳에서 뻗어나가 세계로 향했던 우리의 조상들. 그 기개가 근사하다. 그런데 지금은 작은 한반도도 반으로 갈리어 바다를 통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분단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조상들께도 면목이 없지만, 후손들에게도 낯부끄럽다. 얼마 전 내한한 영화 감독 라나 워쇼스키는 꿈이 뭐냐고 묻는 무릎팍 도사에게 "One Korea"라고 했다.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평화와 공존을 사랑하는 한 외국인이 분단과 단절로 가득한 이 나라에서 지극히 당연하게 말한 한마디. 원 코리아. 우리는 하나된 조국을 바라며 살고 있는가 떠올려 보니 눈물이 날만큼 속상했다. 발해의 역사마저도 도둑 맞을 위험에 처한 오늘날의 현실을 개탄하며 이 책을 보았다. 홍라와 같은 도전이 필요하다. 그 용감한 한 걸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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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2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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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2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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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1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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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1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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