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다 ㅣ 그림책은 내 친구 9
레오 딜런.다이앤 딜런 글 그림, 강무홍 옮김 / 논장 / 2004년 1월
절판
이 책에 나오는 구절들은 전도서 3장 1절부터 8절과 1장 4절에서 뽑은 것이다. 2천년 이상 전해 내려오면서 지혜의 말씀으로 분류된 이 메시지는 종교를 초월해서 수천년 동안 쌓여 온 인류의 경험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메시지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의 그림이다. 여러 나라의 전통과 문명을 담아내었는데, 그 속에서 역사와 문화가 함께 손에 잡힌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이 구절은 이집트의 그림에 나왔다. 기원전 2000년에서 1000년 경, 이집트 신왕조 시대 무덤 벽화 양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미라의 신인 아누비스가 죽은 자들을 저승으로 안내하고 있다. 전도서의 구절과 맞아 떨어지는 그림이다.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다."
일본의 18,19세기에 전성기를 누린 우키요에 목판화다. 우키요에의 독창성과 아름다움은 19세기 파리의 인상파 화가들의 눈에 띄면서 유럽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죽일 때가 있으면 살릴 때가 있고"
멕시코, 7세기 경 코덱스 누탈 양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좀처럼 만나지 못한 낯선 그림이다.
"허물 때가 있으면 세울 때가 있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적회식 도기 양식과 흑회식 도기 양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전시관에서 곧잘 보곤 했던 항아리들이 떠오른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인도의 필사본 삽화 양식으로, 이런 그림은 16세기 초에서 17세기에 이르는 무굴 왕조 시대에 꽃을 피웠다. 가뭄과 풍년의 대비되는 희노애락이 대조적으로 그려졌다.
"가슴 깊이 슬퍼할 때가 있으면 기뻐 춤출 때가 있다."
중세 유럽에서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유행한 목판화 일러스트레이션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모습과 남녀가 부부로 맺어지는 축하현장의 모습이 같이 담겨 있다.
"돌을 버릴 때가 있으면 모을 때가 있고"
14세기 푸에블로 인디언들이 의식을 치르던 방인 키바의 벽화 양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태양을 향해 쏜 화살'의 그림이 떠오른다.
"서로 껴안을 때가 있으면 거리를 두어야 할 때가 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에티오피아의 타나 호 부근의 곤데르 지방에서는 왕실을 위해 필사본을 만들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함께 비잔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갈색 피부의 동그란 눈망울이 무척 귀엽게 보인다.
"얻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고"
샴이라 불리던 태국에서 발달한 그림자 연극 양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소가죽으로 만든 복잡한 형상 뒤에서 불빛을 비추어 막에 그림자를 만들어 보여주는 그림자 연극은 태국 남부 지역에서 발달했다. 베트남에서도 비슷한 연극이 있다고 본 것 같은데 정확한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다.
"잡을 때가 있으면 놓아 줄 때가 있다."
딱 보아도 중국 스타일 그림이다. 기원전 2000년부터 1000년까지 비단 제조 기술이 발전한 중국은 종이뿐 아니라 비단에도 먹과 수채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한참 시끄러웠던 우리나라의 의궤도 비단에 그려진 그림들. 비단에 그린 그림들은 뭔가 신비로운 느낌들이 있었다. 비단 위의 글씨도 마찬가지!
"찢을 때가 있으면 꿰맬 때가 있고"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 번성한 러시아의 이콘화다. 참으로 뻣뻣해 보이는 그림이다.^^
"입을 다물 때가 있으면 열 때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나무 껍질에 그린 그림 양식이다. 동물과 물고기의 내장과 등뼈가 훤히 보이기 때문에 X-선 양식이라고도 하는데 제작 연도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나로서는 그저 아웃백이 떠오를 뿐이다. ^^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북극 지방에 살던 이누이트 족이19세기에 잘라낸 돌판을 이용해 제작한 판화 그림이다. 얼음과 돌조각에 능하니 판화 예술도 같이 발달한 것이 아닐까.
"싸울 때가 있으면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이란의 세밀화다. 헤라트 지역의 세밀화는 16세기 초 사파위 왕조 때 왕실 후원을 받아 더 발전했다. 그림을 보다 보니 '내 이름은 빨강'이 떠오른다.
"무릇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우주에서 본 지구 사진이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림으로 적절하지 않은가.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고, 이 또한 지나간다는 것을...
본문에는 큰 그림과 전도서의 구절만 있다.
각각의 그림에 대한 설명은 책의 맨 뒤에 나온다.
그림과 전도서 말씀만으로도 훌륭하지만, 덧붙여진 설명이 있기에 완성도가 깊어졌다.
예술과 학습의 적절한 균형을 맞춘 책이다. 무엇보다 정성 가득한 그림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다.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