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품절


척이 방귀를 뀌었다. 통이 침대에서 튕겨지듯 일어나서는 달려가 창문을 열고 악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가 언제나 경탄스러웠다. 캄보디아에서 그런 끔찍한 일들을 겪고도 어떻게 방귀 따위에 분개할 수 있단 말인가.
-100쪽

나는 그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 그게 도움이라는 것을 그가 눈치 챌 수 없는 범위 안에서.
-119쪽

나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연 단위의 세월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달이나 주 같은 시간들 역시 중요하니까 말이다.
-123쪽

"난 독일 점령기에도 노래를 불렀어요. 그래서 나중에 노래를 그만둬야 했답니다."
-141쪽

"네가, 그러는 건 멀어지기 위해서야. 거리를 두기 위해서라고."
"무슨 뜻이야?"
"감동을 주거나 두렵게 하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멀어지기 위해, 감정으로부터 너 자신을 떼어놓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그건 일종의 자기방어라고 할 수 있어. 네가 고뇌에 시달린다고 하자. 너는 네 고뇌를 사전 속에 있는 건조한 상태로 환원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려 하는 거야. 감정을 차갑게 식히는 거지. 눈물이 나나고 해보자. 너는 그 눈물로부터 멀어지고 싶어서 사전에서 눈물이라는 단어를 찾는 거라고."
-181쪽

"셈법을 다시 배워야 해, 니콜라. 넌 열일곱 살이야. 새로운 수학을 배워야 해. 이 세상에 혼자라는 건 옛날 셈법이야. 새로운 수학을 모르기 때문에 네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잊지 말고 전화해, 니콜라. 전화 기다릴게. 내가 네 전화를 기다린다는 걸 잊지 마, 니콜라. 널 믿는다, 잊지 마."
전화를 기다린다고 사람들이 믿게 하는 건 중요했다. 의기소침해 있을 때, 전화선 저편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관심을 두고 당신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느끼는 것은 중요하다. 누군가 자신의 전화를 기다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가스 밸브를 열어 자살하지 않는다.
-205쪽

솔로몬 씨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예의를 갖추고 물었다.
-218쪽

내 목소리가 떨렸다. 그 정도로 나는 점점 더 내 말에 빠져들었다. 고뇌와의 관계는 늘 그렇다. 여러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튀어나와서는 여러분이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바로 그 말을 하게 된다.
-219쪽

행복을 느낄 때, 사람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겁을 내. 그런 상태를 행복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말이야. 내 생각엔 영리한 사람이라면 평생을 바쳐 돌처럼 불행해지기 위한 준비를 했어야 해. 그러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지금 난 잠을 잘 수가 없어. 이건 뭔가에 대한 불안이야. 좋아, 우리는 행복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헤어지지 않을 거라는 뜻은 아니잖아?

"당신이 행복해한다고 해서 삶이 당신을 벌주진 않아."
"잘 모르겠어. 알다시피 삶은 눈을 갖고 있고, 행복한 사람은 눈에 띄기 마련이라서 말이야."
-239쪽

그는 파시즘에도 장점이 있다는 데 동의하는데, 그 이유는 반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285쪽

"내 친구 척 말이 맞아. 내가 타인들로부터 안식처를 찾는 건 나 자신의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거야. 나한텐 스스로를 돌보는 데 필요한 정체성이 없어. 내가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르는 거야. 알겠어?"
"당신 친구 척은 무엇보다도 자족적인 사람인 것 같아. 자기도취적인 사람 말이야. 내가 보기엔 그것 역시 별로 좋지 않아."
-296쪽

두세 건의 불행을 접수했고, 그러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 몫의 불행이 내 안에서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덜 불행해졌다.
-319쪽

내게 타인 강박증이 있다는 척의 말은 옳았다. 나는 안식처를 나 자신에게서 찾은 적이 없었다.
-324쪽

사 년 동안 지하실에 숨어 지냈고, 인종 말살과 나치, 나치에 협력한 프랑스 경찰을 의기양양하게 따돌렸는데, 그것은 겁쟁이처럼 시시하게 자연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의지와 결단, 계략, 신중함, 정신력, 개성으로 무장하고 승리한 그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보자. 이건 그에게 늦게라도 당할 일은 당한다고 나치가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362쪽

"그 여자에겐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단 말이오."
-3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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