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신 DIEU DIEU - 어느 날, 이름도 성도 神이라는 그가 나타났다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 휴머니스트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친구가 연극 표가 있다고 연락을 해왔다. 제목은 '예수와 함께 한 저녁 식사'. 책으로 재밌게 만났던 작품이다. 애석하게도 연극 상영일이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변경되면서 수영 때문에 참석을 못하게 되었고, 대신 엄마가 보셨으면 했는데 날이 지나치게 춥고 거리도 멀어서 결국 관람을 포기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그 연극이 더 보고 싶어졌지만 다음 주 월요일에 수영을 빠질 수밖에 없으므로 오늘은 내 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신이다. 초월적 존재의 그 신, 맞다! 그의 등장은 해프닝 같았다. 인구조사 현장에 주민번호도 신분증도 없이 나타난 이 정체 불명의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신'이라고 했고, 성 역시 '신'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를 부를라 치면 '신 신'이 되어버리는 것.

 

많은 사람들이 신의 등장에 코웃음을 쳤다. 신의 존재를 믿거나 안 믿거나,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 사람을 '신'이라고 인정하기엔 우리의 문명은 지나치게 발달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자칭 신이라는 자를 심문하기 위한 책임자로 정신과 의사가 나섰다.

 

 

 

첫 질문부터 눈앞의 인물을 '신'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물음이었다. 신이라는 자는 그걸 바로 지적했다. 자신의 질문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정신과 의사도 인정한다. 그가 다시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모든 정의를 초월한 자. 나 자신의 정의까지 포함해서.

만약 당신이... 한 권의 책이라면, 어떤 책일까요?

모래의 책

만약 당신이 하나의 숫자라면?

제로. 의미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엄연히 존재하오.

음악이라면?

침묵.

만약 당신이 동물이라면?

인간.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인간일까요?

갓난아이. 그리고 내가 진짜 갓난아이라면, 계속 그 상태로 남아 있도록 애쓰겠소.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이 사내를 신이라고 인정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평균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가진, 몹시 철학적인 느낌의 인물이라는 것은 용납할 수 있겠다. 이제 신이 반격할 차례다. 보통의 사람이 뇌의 10%를 사용하면서 산다면, 신의 뇌는 99.91%가 가동되고 있었다. 인간의 두뇌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치다. 완벽한 100%가 아니어서 오히려 더 완벽해 보이는 숫자! 그는 사람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힉스보존을 발견해냈고, 도서관 안에 들어 있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분자 수를 세어버렸고, 천체망원경으로 발견하지 못한 외계행성을 육안으로 찾아냈다. 그밖에 여러 사건들이 연일 사람들을 놀래켰고, 그때마다 신문은 '놀라운' 것이 '몹시 놀라운' 것이 되어버렸고, 그 다음에는 '완전 놀라운', 이어서 '놀라 자빠질 만한' 등등의 이름으로 변신하였다. 이러한 사건들을 명명하기 위한 수식어들을 모두 갖다 썼지만 더 이상 쓸 수 있는 말이 없을 만큼 놀라운 일들이었다.

 

자, 이쯤 되면 신의 존재를 믿는 무수한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다음에는? 신의 존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인간들에 의해 초유의 대량 소송 사건에 휘말린 신! 불행의 직접적인 원인이 신에게 있다고 고소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신에게 무엇도 요구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태어나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에게 보상을 요구했다. 신이 세상을 잘못 다스렸다고 나무라는 이들도 있고, 신의 보수적인 면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소송에 대처하기 위한 변호인단의 규모 또한 어마어마하다. 무려 250명의 변호인! 이들은 소송에 질 경우를 대비해서 보험 회사들과 제휴를 맺고, 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신의 얼굴은 변호인단에 의해 초상권 등록이 되어 법적으로 보호를 받았고, 신의 대필가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을 도배해버렸다. 사상 초유의 재판은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객관성과는 거리가 먼 배심원단들도 눈길을 끌었다. 신의 변호인들은 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가능한 한 신이 인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 시키는 방향으로 변론을 펼칠 예정이다. 승소하기 위해 신을 평가절하시킨다는 게 그들의 전략! 반면 원고 측에서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논거들을 계속 내놓을 예정이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 오히려 신의 존재 가치를 역이용하는 이들이다.

 

이후 등장하는 여러 변론들과 반론, 그리고 신의 대답 등은 무척 형이상학적으로 들린다. 실제로 많은 철학자들이 했던 말들이 인용되고 각색되고 재활용되었다.

 

그들의 말을 다시 가져오는 것도 나에게는 힘든 일. 오히려 환경미화원 남자가 건넨 한 마디가 피고인들의 불만을 응축해준 액기스 같았다. 만들기는 하되 애프터 서비스는 없다!라... 그야말로 세상을 창조했다는 신을 향한 인간의 불만의 정점 아닌가. 물론, 누가 망가뜨렸는가에 대한 과정이 빠지기는 했지만, 신이 창조자라면 인간 세상에 대한 책임은 분명 있는 것이다. 옆에 졸고 있는 그림은 저 재판에서 바로 나온 장면은 아니지만 붙여놓고 보니 어째 저 모양새가 되어 괜히 송구하다. 인간들이 갑론을박하는 모양새가 웃길 법도 하다. 또 얼마나 지루했겠는가.

 

재판은 끝을 모르고 진행이 되어가지만, 그 와중에도 신을 둘러싼 각종 비지니스는 춤을 춘다. 얼마나 좋은 마케팅 대상이던가. 또 얼마나 흥미로운 모델인가.

신의 등장을 기회로 설교자로서 재도약의 기회로 삼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현장학습 장면을 살펴보자.  "당신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란 익숙한 문장은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신은 이미 인간들 사이에 와 있으니까. 그랬다고 "오오오 신이시여, 우리는 당신이 와 주실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하기엔 너무 기회주의자 같고, "오오오 신이시여, 어찌하여 오래도록 기다리게 하셨습니까?"라고 하면 그건 기도지 설교가 아니다.

 

 

심각한 와중에 가끔 유머가 나와 쉬어갈 여지를 주고, 재판의 공방을 들여다 보면 신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더 들여다 보게 된다. 장 폴 사르트르의 글을 인용한 '신, 그것은 곧 인간의 외로움이다.'라는 문장은, 비록 내가 유신론자 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공감이 간다.

 

재판은 어느 쪽으로든 결말이 날 것이고, 그 전에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만든 신의 왕국-테마파크-을 보라.

테마파크에 방문한 입장객들은 입구에서 '세례'를 받고, '영혼'으로 거듭난다. 그 후에 '정화의 샘'에 발을 담그면서 공원에 입장할 수 있다. 마음의 양식만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의 메뉴판에는 주문, 기도, 묵상, 명상 등이 올라가 있다. 투자 없이 확실한 마진이 보장되어 있다. '지옥'으로 표현된 뜨거운 냄비 기구가 하이라이트다. 사람들은 괴로움을 당하기 위해서 줄을 서고, 실제로 그 안에서 고통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했다는 점을 오히려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그 밖에 다양한 기념품 샵이 준비되어 있다. 이러니 신은 또 얼마나 많은 '저작권료'를 챙기겠는가. 자본주의의 홍수 속에서 최고의 반사 이익은 신이 차지하고 앉은 꼴이다. 그는 과연 '신'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작품의 결말은 책 소개에 이미 나와 있다. 요지는 반전의 내용이 아니라 그 속에 깔려 있는 메시지다.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는 특유의 냉소적인 시선으로 신이 창조했다고 하는 이 세상과, 그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들고 있는 인간들에 대한 풍자의 화살을 날린 것이다.

 

앞서 읽었던 '아크파크, 꿈의 포로' 시리즈보다 더 기발하지는 않다. 신이 현신해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이야기는 무척 많았으니까. 또 그 입을 빌려 인간을 비틀고 풍자하는 예도 드물지 않았다. 그래도 흑백 컬러의 단호한 색을 제대로 활용해서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고, 그러면서도 냉소적인 시선도 거두지 않는 조화를 잘 지켰다. 역시 이름값에 뒤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단 한 번도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신의 등뒤 그림자가 왠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상은, 신을 믿고 의지하지만, 또 신이 너무도 두려운,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의 감상이다.

 

덧글) 오타가 하나 있다. 73쪽의 '요컨데'는 '요컨대'로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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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7 12: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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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7 1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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