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조은 지음, 최민식 사진 / 샘터사 / 2004년 9월
품절


살다보면 바위 속에 유배당한 것처럼
삶이 암담해질 때가 있습니다.

-바위와 유배라는 말이 가슴을 묵직하게 만든다. 유배보다 유폐라는 단어가 사실 먼저 떠오르긴 했다. 1963

암울한 그림자의 숙주 같은 몸은
점점 낮은 곳으로 허물어져 갑니다.

-저 쇠약한 육신이 그림자의 숙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IMF직후이니 저런 절망감을 가진 이가 얼마나 많았을까. 1998

이 위태로운 세계 속에 아이들이 샘물처럼 들어앉아
흘러갈 세상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사진 찍는 사람이 신기해서 쳐다보았을 저 눈망울들.
하지만 호기심으로 번뜩여야 할 눈빛은 그럼에도 지쳐 있다. 허기진 눈빛, 외로운 눈빛들이다. 1967

삶을 응시하는 자들이 키워가는 세계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삶의 무게가 온몸에 덕지덕지 묻어있다. 그 무게를 꿋꿋이 견디어 내는 사람들이 버텨가는 세계에서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다. 1976

그래도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 불행의 그림자가 길어질지라도

-혹여 잠든 사이 불행의 그림자가 조금은 짧아지고 옅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1972

버리는 순간 눈앞이 환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지
우리를 둘러싼 어둠은 깊기만 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더 버려야 이 어둠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더는 내려놓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도 자꾸만 내려놓으라고 재촉하는 세상... 1970

그래도 그 속에서는 가려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어제와는 달라져야 할 내일을 위해.

-생각한대로 살기 위해서,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1975

힘들게 일하며 떠나보내는 시간은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기다리면 분명히 오는 걸까요? 포기하지 않으면, 만날 수 있는 건가요? 1962

-불순함이라고는 없는 노동에 저토록 수모를 당해야 하다니
때로 세상의 정의가 불한당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오디오 없이 오디오가 들린다. 아주머니의 불안하고도 절박한, 그러면서도 능청스러움을 가장한 목소리가 들린다. 1972

불평할 줄 모르는 자들의 삶은 얼핏 평화롭게 보입니다.
하지만 잠든 어머니가 기대고 있는 벽처럼
저들의 지반에는 균열이 많습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지 못하는 말들이 많음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또 입이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시간들... 1971

가족이라는, 이웃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랑만이 어둠을 역전시킵니다.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된 시선, 사랑과 정이 가득 담긴 시선. 그 순간만큼은 어떤 이물질도 끼어 있지 않은 청정의 시공간. 1960

일찍 어른의 모습이 되어버리는 아이들의 얼굴에선
미래가 암초처럼 모습을 나타내곤 합니다.

-유소년기를 강탈당해버린 아이들, 어리광을 부려보기도 전에 이미 인내와 침묵에 익숙해져버린 아이들. 그 아이들의 결핍은 어떻게 보상될 것인가. 1957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됩니다.
모든 구속 너머에 진짜 삶이 있다는 것을.
가만히 있어서는 어떤 경계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도 하기 힘든 것들이 분명 있는 세상. 그래서 서러운 세상.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고 다시 주먹 꼭 쥐게 되는 이 세상... 1965

생의 모래 언덕도 저런 모습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거침없이, 주저없이, 미련없이...... 1999

늘 무엇인가가 넘치거나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삶일까요?
오래 꿈꾸었으나 가지 못한 길은
저 나무가 깨워놓은 수많은 하늘처럼
불편하게 우리를 자극합니다.

-가지 못했지만, 내가 가본 이 길도 아름다웠다고, 그렇게 믿어가며 살아가기. 2001

구불구불한 길에 뒤덮인 저 육체!
산다는 것은 제 몸속에 길을 내는 것입니다.

-그 길속에서 헤매지 말고, 속지도 말 것. 믿고 따라갈 것! 1975


최민식의 사진은 늘 강렬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피사체들의 절절한 삶이 사진으로 긴박하게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 조은 씨가 글을 담았다. 조세희 씨가 쓴 글의 사진들과 많이 겹쳤는데 그 사진들은 따로 올리지 않는다. 같은 사진을 보아도 서로 다르게 느끼는 것이, 또 그 속에서 공통점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최민식의 입으로 들어보면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이다.

시인은 글을 쓰기 전에 사진작가를 직접 만나지 않았다. 작업에 앞서 그를 만나면 그의 정신력에 눌려 제 몫의 일이 힘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란다. 두 삶은 출간 직전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찍을 때에야 비로소 만남을 가졌다 한다. 존경에 대한 표시, 또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함께 느껴진다.
재밌는 것은, 두 사람의 사진은 여기 실리지 않았다는 것.
그렇지만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여지에서 무엇도 부족하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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