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포로 아크파크 2 : 사...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4월
절판


꿈의 포로 아크파크 시리즈 2권.
책 날개를 펼치면 나오는 그림은 1권과 동일하다.
무수한 군중 속에 느낌표 아래 있는 아크파크 씨.
가만히 지켜보니 저 많은 얼굴들이 모두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다.
월리를 찾아라 느낌도 난다.
제각각의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웃고 있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무섭게 인상을 쓰고 있고 잔뜩 찡그리고 있다.
부조리한 사회, 근미래이지만 오히려 퇴보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일까.

1권이 '컷'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면 2권은 '색'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제목은 '사...'까지만 소개했고 그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뭔가 큰 비밀이 담겨 있는 게 분명하다.

아크파크 씨는 거대한 빛의 폭발을 목격했다.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모든 물질들이 흩어지고 추락한다.
아크파크 씨도 중력에 의해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동시에 추락하고 있는 인물은 썰렁한 얘기를 곧잘 하시는 이웃 아저씨다.
두 사람의 밑으로는 이 만화를 그리고 있는 만화가의 책상이 보이고,
그 책상 위 잉크 옆 커피 잔에 풍덩하게 생겼다.
이윽고 풍덩! 암흑 속에 빠진 두 사람.

그리고 울리는 탕탕탕 소리!
또 다시 1권과 마찬가지로 잠에서 깨어나는 설정이 이어진다.
아침부터 들이닥친 불청객은 '생활 공간 검사'다.
말 그대로 생활 공간의 규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검사하는 공무원들.

이들은 문짝 귀퉁이에서 잠금 장치까지의 거리를 재고,
벽장에서 침대까지, 가스레인지에서 침대까지의 폭도 잰다.
모든 수치는 단 1mm도 규정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리 되면 그 사람은 불공정하게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사람으로서 이 사회의 적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아크파크 씨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장롱 서랍을 열어둔 채 두었던 것이다.
서랍을 열어두고 방치할 정도의 여유 공간을 그가 갖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 셈!

결국 검사관 몰래 서랍을 닫으려다가 측량도구를 훼손하게 되고 잘 닫히지 않은 서랍 은닉죄까지 포함되어서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거리에는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로 꽉 차 있고,
공무원들은 '살맛찾기부'에서 거리의 불만을 다른 방향으로 돌릴 방도를 차장야 한다고 중얼거린다.
'살맛찾기부'라는 부서가 필요한 사회라는 것도 놀랍지만, 불만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주요 업무라는 것은 더 충격적이다.
이 사회의 분위기와 삶의 만족도가 충분히 짐작 간다.

이미 예정된 수순으로 진행되는 재판에 아크파크 씨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평결문은 단조로운 노래로 불려지지만 운율도 맞지 않고, 박자도 어째 시원찮다.

어찌 됐든 따귀 두 번에 해당하는 벌을 받게 된 아크파크 씨.
집행자가 팔을 들어 뺨을 두 차례 내리치자 아크파크 씨는 또 다른 세상에서 눈을 뜬다.
성벽 밖 남문이라는 그곳의 명칭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뭐가 아무 것도 아닌지, 그 실체를 찾아 따라가 보자.

남쪽으로만 가라고 해서 무작정 걷고 또 걸었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때에 만난 한 장님 할아버지가 주는 한 마디가 의미심장하다.
아크파크 씨가 물었던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면 또 뭐가 필요하죠?"
그가 말했다.
"믿음"이라고....

강경옥 작가의 '거울 나라의 수수께끼'였던가? 그렇게 통과할 수 없는 미로 속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길을 물었지만 계속 헤매며 빙빙 돌던 주인공은 계속 물을 것이 아니라 첫 사람이 알려준 길을 믿고 끝까지 진행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통로를 찾는다.
아크파크 씨 역시 지금 필요한 것은 의심이 아니라 신뢰!

그리고 나타난 쉬어가는 곳이 놀랍다. 흑과 백의 경계로 이루어진 여관 아닌 여관은 문 너머 모든 공간이 방이고, 사실은 뻥 뚫려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 방(?)의 침대 머리 위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고, 그 액자 속에는 극장이 보인다.
이번엔 극장 안에서 눈을 뜨게 된 아크파크 씨.
도대체 몇 개의 시간과 몇 개의 공간을 뛰어넘는 것일까.
오늘 무지 바쁜 아크파크 씨다.

알고 보니 자신이 주인공이자 관객인 공연이 열리려고 하고 있었다.
무조건 '네'라는 대답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어디 그렇게 되겠는가?
왜 하필 나인지 아크파크 씨는 물어야 했고, 예정되어 있지 않은 질문과 답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자들은 큰 혼란에 빠진다.
지극히 당연한 물음이었건만 아크파크 씨의 질문은 그들에게 '혁명적'이었다.

자명정 소리와 함께 여관 아닌 여관 방에서 깨어난 아크파크 씨에게 '역'이 도착했다. 역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역이 아크파크 씨를 찾아온 것이다.
오, 이 세계에선 앞으로도 몇 번이나 더 놀라야 하는 것일까?

역 안은 충격적이었다. 주거 문제가 심각한 이 세계에서는 코인 로커를 단칸방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지난 1권에서 승강기가 지나는 통로를 집으로 쓰던 형제들도 그 전에는 코인 로커 집을 썼었다고 했는데 그 실체를 이렇게 확인하게 되었다.

로커 룸은 좀 낫다. 역사 바닥에 '식탁'이니 '창문'이니 '의자'니 써놓고 생활공간으로 쓰는 사람들의 무리는 더 기가 차다.
저 안에서 열차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는 얼마나 클 것인가.
대책 없고 답이 없는 미래를 기다리며 비참한 현실을 버티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주변에서도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예가 아니던가.

쫓아오는 사람들을 떨쳐내고 무사히 열차에 오른 아크파크 씨가 마침내 도착한 곳은 등대였다.
마치 하늘 끝에 닿으려던 바벨탑 같은 규모의 거대한 탑에 오른 아크파크 씨는 그 안에서도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는 통로에 다달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아크파크 씨에게 뭔가 비밀을 말하려고 했었다.
그들은 '사....'라고 입을 열기 시작했지만 주변 사람에 의해 저지 당했고, 혹은 스스로 깜짝 놀라며 제 입단속을 했다.
그들 세계의 비밀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크파크 씨는 마침내 그 비밀의 정체를 알아차렸을까?
시작할 때 한 번 언급하고 지나갔지만, 궁금증을 단번에 풀어주는 것은 도리가 아니니 여기까지만 얘기해 보자.
수상하고 위험한 흑백 만화의 세계는 앞으로도 쭈욱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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