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32 호/2011-04-25

슈퍼 농산물이 지구를 구한다!


학교에서 돌아 온 태연, 의기양양하게 커다란 화첩을 아빠 앞에 펼쳐놓는다. 정원 한 가운데 있는 분수에서 콜라가 콸콸 용솟음치고 주변에 있는 나무들에는 햄버거와 치킨이 광채를 내며 매달려 있는 그림이다. 제목은 ‘유토피아’.

“어때요, 아빠. 대단하죠? 상상화 그리기 대회에서 1등 먹었어요. 저의 넘쳐나는 상상력이 드디어 진가를 인정받은 거죠. 쿠할할할”

“너의 모든 상상력이 먹을 것에서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은 정말 대단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사실 과학자들도 오래전부터 너와 비슷한 상상을 해왔단다. 그 결과 열매는 토마토, 뿌리는 감자인 ‘포메이토’나 잎은 배추, 뿌리는 무인 ‘무추’ 같은 세상에 없던 식물들이 만들어졌지.”

태연, 눈을 수박 만하게 뜨더니 아빠 앞에 넙죽 엎드린다.

“아바마마! 저에게 그런 식물을 만들 수 있는 첨단 기술을 당장 전수해 주신다면 그 은혜 백골난망이로소이다!”

“에고 에고, 또 오버 시작했다. 유전자 연구는 너처럼 단순한 호기심을 시험하는 게 아니라 인류를 굶주림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는 아주 중요한 연구야. 사막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등 기후변화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경작지는 계속 줄어들고 있어. 그런데 전 세계 인구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어 식량부족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 실제로 2010년에는 주요 곡물생산국마다 이상기후가 발생해서 곡물가격이 전년에 비해 70% 이상 오르기도 했단다.”

“어머나! 듣던 중 가장 슬픈 일이네요. 아빠, 그럼 어떡해야 하죠?”

“그래서 과학자들은 위기의 순간 지구를 구하는 슈퍼맨처럼 슈퍼농산물을 개발해내고 있단다. 먼저 농산물이 가뭄에도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 ‘ABCG40’라는 유전자를 연구하고 있어. 식물은 물이 부족할 때 기공을 닫아 내부에 있는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보호하지. 이때 기공을 빨리 닫게 하는 물질이 ‘아브시스산’이라는 호르몬이야. 이 아브시스산을 조절할 수 있는 유전자가 ABCG40이지. 과학자들은 ABCG40의 기능을 왕성하게 해서 가뭄에도 시들지 않고 사막화가 진행되는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곡식을 개발하고 있단다.

“요즘엔 땅 자체가 중금속에 오염돼서 농산물까지 못 먹게 되는 경우도 많다던데요? 일본 후쿠시마 원전 근처 땅이 다 방사성 물질에 오염돼 거기서 재배한 시금치까지 몽땅 뽑아버리는 걸 TV에서 본 적도 있어요.”

“그래, 맞아. 토양 오염도 문제야. 그래서 중금속에 중독되지 않고 오히려 토양 속의 중금속을 제거할 수 있는 유전자 ‘AtABCC1’과 ‘AtABCC2’도 연구 중에 있단다. 이 두 개의 유전자는 중금속인 비소를 세포 속 작은 기관인 ‘액포’에 저장했다가 밖으로 내보내지. 액포는 다른 생체조직에 영향이 가지 않게 격리돼 있기 때문에 식물 자체에 악영향을 끼칠 염려도 없단다.”

“비소 말고 다른 중금속이랑 방사성 물질 오염도 없앨 수 있는 유전자 연구가 빨리 진행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태연이가 먹는 문제를 접하니까 엄청 진지해지는구나. 이 외에도 식물 자체를 튼튼하게, 어떤 병균이 들어와도 끄떡없도록 만들어주는 유전자 연구도 활발하단다.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지거나 가물었다가 홍수가 나는 등 환경이 순식간에 바뀌어 버리면 식물도 스트레스를 받아 시들고 말거든. ‘AtTDX’ 유전자는 이럴 때 생체기능을 조절하는 단백질 구조를 변화시켜서 식물이 시들지 않도록 보호한단다. 또 ‘ABR1’ 유전자는 병원균의 증식 자체를 억제하고 유전자 ‘OSKAT’와 ‘CBL’은 염분이 있는 땅에서도 식물이 잘 자라도록 해주지.

“와~ 유전자마다 각각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는지를 잘 밝혀내서 식물에 적용시키면 비가 오건 안 오건, 땅이 오염이 됐건 안 됐건, 심지어 병균이 몰려와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슈퍼농산물’이 탄생할 수도 있겠네요. 그럼 곡물 수확량이 늘어나고 배고픈 사람들이 줄어들고 결국, 결국, 드디어, 드디어!! 제가 정말 원하는 ‘미친 듯 배부른 세상’이 탄생한다는 거죠!!!!”

태연,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포효한다. 그러더니 곧바로 정원으로 뛰어나가 버린다. 잠시 후 정원에 나가 본 아빠,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질 지경이다. 태연이 전지가위(가지치기할 때 사용하는 가위)로 나뭇가지들을 잘라 제각각 다른 나무에 붙이고는 테이프로 칭칭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감나무에 개나리 가지가 붙어있고 목련 줄기에 사과나무 가지가 붙어있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던 것!

“태연아~ 무슨 짓이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생명공학자가 되려면 어릴 때부터 이 정도의 실험정신은 발휘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버지? 걱정 마세요. 동물실험은 좀 더 커서 시작할 테니까요.”

“무작정 잘라 붙인다고 목련에서 사과가 피겠냐!? 아이고 내 사과, 아이고 내 감~~.”

“나의 유전자 연구 사랑을 매도하지 마~~!!”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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