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81 호/2010-12-13

천사 로봇 VS 악마 로봇


태연,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학교에서 있었던 무용담을 펼치느라 정신이 없다.

“엄마, 엄마! 오늘 학교에 로봇 선생님이 왔었어요. 완전 멋져! 로봇 모니터에 원어민 선생님이 보이는데, 우리 반 전체를 다 돌아다니면서 우리랑 영어로 대화도 하고 질문도 해요. 사람 선생님이랑 똑같은데 훨씬 더 재밌어! 더 좋은 건, 내가 아무리 까불어도 쥐어박지를 못한다는 거예요. 정말 끝내주지 않아요? 그래서 실컷 까불었어요. 애들 수업도 못하게. 우하하하하~”

엄마, 태연의 개념 없는 장난기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로봇의 편의성에 대해서는 적극 동감하는 눈치.

“머, 어쨌든 로봇이 좋긴 좋더라. 엊그제 곗돈 타서 산 로봇청소기 말이야~ 그게 제법 깔끔하던걸? 문턱도 잘 넘어 다니고 소파 바닥 먼지까지 싹싹 쓸어내고. 솔직히 네 아빠 솜씨보단 백배 낫더라고. 게다가 아까 경비실에서 하는 방송을 들어보니까 이제부터는 아파트 상수관이랑 유리창 청소를 로봇이 한다는 거야.

“암튼 내가 시집갈 때쯤엔 지금보다 훨씬 집안일이 쉬워진다는 거잖아요. 야호!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소지섭처럼 잘생긴 남편이랑 행복하게 살아야지~~”

이때 옆을 지나면서 두 사람의 얘기를 들은 아빠, 대화에 끼어든다.

“그래, 그렇겠지. 로봇업계가 최근 생활 서비스 로봇 쪽으로도 상당히 많이 발전한 건 사실이니까. 지금 추세로 나아간다면 2020년에는 생활 서비스 로봇이 세계 인구와 맞먹는 수준이 될지도 몰라.”

지금까지 로봇은 자동차 조립공장 같은 산업체에서 활용되는 제조용 로봇이나 전장에서 인간을 대신해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전투용 로봇, 그리고 의료용 로봇이 주를 이뤘었다. 실제로 이미 군에서는 정찰용 로봇, 무인항공 로봇은 물론 각종 화기를 사용할 수 있는 전투용 로봇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또 미국 인튜이티브 서지컬(Intuitive Surgical)사의 수술용 로봇 ‘다빈치’는 사람보다 정교하고 안전하게 수술을 할 수 있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빠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엄마가 뒷말을 잇는다.
얼마 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인간형 로봇 ‘마루’가 전자레인지를 여닫고 구운 토스트와 음료를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시연을 했단다.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로봇처럼 동작이 자연스럽지는 못했지만, 조금 더 발전하면 가사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견을 했단다. 또 인천공항의 한 레스토랑에 가면 여러 나라 언어로 3D 입체영상을 보여주며 주문을 받고 결재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로봇도 만날 수 있지. 암튼 결론적으로 말해서, 세상 참 좋아졌다는 얘기야. 아~, 우리 집에도 ‘마루’ 한 대 들여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얘기를 듣는 동안 아빠, 얼굴빛이 점차 어두워진다. 평소 과학상식을 늘어놓을 때마다 얼굴에 떠오르던 자만과 의기양양함이 뒤섞인 표정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아니, 당신 표정이 왜 그래요? 당신은 ‘마루’가 우리 집에 오는 게 싫어요? 어쩜 그럴 수가 있어요, 내가 편해지는 게 그렇게 눈꼴셔요?”

“아냐, 정말 그런 게 아냐~ 난 그냥 로봇이 싫을 뿐이라고. 당신한텐 천사 같은 로봇이겠지만 이제 나한텐 악마 같은 로봇이라는 뜻이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에욧!?”

아빠, 휴~ 한숨을 쉬며 사정을 얘기한다.
“우리 부장님 성격 당신도 알지? 하루 종일 쪼아대는 부장님이 일주일만 출장을 가도 부서원 전체가 3kg씩 살이 쪘었는데 말야. 이젠 가끔씩 찾아오던 그 행복한 시간도 완전 끝이 났어. 부장님이 일본에 가시든 미국에 가시든, 아니 아프리카 우간다에 가신다 해도 더 이상 우린 그의 감시망을 빠져나갈 수 없게 됐거든.”

“엥? 무슨 말이에요 아빠? 다음 달에 아빠네 부장님 출장가시면 제주도로 여행가기로 했잖아요.”

회사에서 조만간 160cm 정도의 키에, 얼굴 부분엔 LCD 모니터를 달고 ‘주인’의 목소리를 멀리 전달할 수 있도록 스피커까지 장착한 모질라(Mozilla)라는 로봇을 구입하기로 했거든. 이제 부장님이 어디에 계시든 모질라 모니터에 자신의 얼굴을 띄우고 사무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를 쪼아대거나, 미칠 듯 졸린 회의를 두 시간씩 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해졌다는 뜻이야.”

“엥? 정말요? 와, 이제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속속들이 돌아다니며 감시할 수 있는 세상이 온 거네요? 그럼 똑똑한 거잖아. 근데 이름이 왜 모질라지? 2%가 모자란 건가?”

“태연아, 넌 어쩜 아빠의 불행을 그렇게 장난처럼 받아들일 수가 있는 거니! 정말 실망이다. 앞으로 그 모자란 놈을 너한테도 붙여놓고 24시간 감시체제에 들어갈 테다. 알겠냐? 이 의리 없는 딸 같으니라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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