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권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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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게 된 것은 순전히 '표지' 때문이었다. 표지가 무척 인상적이었고 강렬하도록 예뻤다. 바람 부는 들판에 초록 원피스 입은 여인이 뒷짐 지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단아하고 매력적이던지 '저기요!'하고 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용에 대한 정보도 전혀 몰랐다. 그냥 'feel'이 통했달까. 분명 책의 내용도 내 마음에 쏙 들거야...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내 감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절실히 깨달았다.  

이 책은 파울로 코엘료가 연금술사 직후에 집필해서 1990년에 출간한 소설이라고 한다. 연금술사가 무려 1988년도 작품인데, 읽을 때는 전혀 오래됐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은 사실 꽤 초기작이라는 것은 알고 읽어서인지 보다 촌스럽고 거칠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쩌면 사전정보에 의한 선입견일 수도 있다.   

브리다는 그가 순례 길에 올랐을 때 만났던 실존 여성을 모델로 쓴 작품이라고 한다. 세상의 비의를 배우고 싶다는 이유로 숲속의 현자를 찾아가서 배움을 청하는 젊은 여자의 이야기이다. 좀 더 정확히는 '마법사'를 찾아갔고, 그녀는 22살의 대학생으로 낮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밤에 학교를 다녔다. 남자 친구가 있고, 비의를 깨우치는 과정에서 본인이 '마녀'라는 것을 깨우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태양 전승과 달 전승이 나오고, 그녀의 소울 메이트를 알아보기까지 혼란을 겪었고, 의식을 치르면서 성장해 간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그러니까 참... 주제와 소재에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좀처럼 소화하기 힘든 내용이랄까. 특유의 '잠언'으로 매끄럽고 그럴싸한 문장들은 줄줄이 나온다. 그러니까 도무지 이해도 안 가고 마음에도 안 차지만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있다.(게다가 제법 빠르게 읽힌다!) 

그렇지만 읽는 내내 답답했다. 뭔가 현실적인 이야기, 그리고 살아있는 이야기로는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꽤 좋아하던 작가였는데 이제는 좀처럼 소통하기 힘든 어떤 벽을 느꼈달까.  

사실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었는데, 파울로 코엘료는 매번 작품에서 어떤 '영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아의 신화를 찾는 것도 그렇거니와 우주의 이야기, 내면의 목소리, 신과의 대화 등등.... 뭔가 현실적이고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기보다 자꾸 내면을 탐구하고 신화와 전설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 같다. 내가 읽었던 작품으로는 연금술사/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악마와 미스 프랭/11분/다섯번째 산/흐르는 강물처럼/승자는 혼자다..까지였던 것 같다. 이 중 가장 좋았던 것은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였고, 에세이는 내 취향이 아니었고(개인적으로 에세이 장르를 안 좋아한다.) 승자는 혼자다는 꽤 싱거웠다. 그래도 대체로 믿고 읽는 작가진이었는데 이번에는 읽기가 좀 힘들었다. 사람들이 나는 파울로 코엘료 별로야... 라고 말할 때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어쩌면 내가 느낀 이 기분과 만나는 것일까?  

어쩌면 이 책에서 나오는 켈트족이나 드루이드교, 성 패트릭의 기독교 전승 등이 그 문화권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더 거리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히 이 책보다 나중에 나온 책들보다는 궁합이 확연히 떨어진다.  

몇몇 재밌는 부분이 있었다. 브리다의 남자친구가 전생을 기억하는 브리다의 얘기를 못 믿겠으면서도 믿는 것을 예로 들어줄 때의 이야기다. 131쪽인데 '전자 발사' 기계가 두 개의 구멍에 전자를 발사하면 전자가 분리되지 않은 채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통과한다는 이야기를 한다.(브리다의 남자 친구 로렌트는 과학도.) 이 실험은 내가 바로 하루 전에 애니메이션으로 본 내용이다. 파울로 코엘료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뭔가 우주가 끌어당기는 느낌이랄까.  

현자로 나오는 마법사들보다 브리다의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말이 내게는 더 지혜롭게 느껴졌다.  

"얘야, 이 세상에 완전히 잘못된 건 없단다." 아버지는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멈춰서 있는 시계조차 하루에 두 번은 시간이 맞잖니." – 137쪽


훌륭한 아버지시다.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읽지 못했는데, 그 역시 표지가 예뻐서 관심은 갔더랬다. 그런데 거기도 등장하는 '마녀'가 나를 긴장시킨다. 브리다의 마녀 같은 느낌이면 좋아하긴 힘들 것 같다. 워낙 마법사나 마녀는 SF소설이나 영화 속의 느낌으로만 받아들이는 빈약한 상상력의 독자도 문제가 있지만, 억지로 궁합을 맞춰가며 읽기엔, 읽어야 할 책도, 읽고 싶은 책도 지나치게 많으니까.

그래도 사두고 못 읽은 '순례자'는 언제가 읽어야지. 그래도 아주 애정이 사라지진 않아서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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