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임석재 지음 / 대원사 / 1999년 10월
품절


왜 그랬을까. 나무가 없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나무 찾고 다니기가 귀찮아서 그랬을까. 둘 다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휜 나무를 기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휜 나무도 곧은 나무와 조금도 다름없이 기둥으로써의 구조 역할을 거뜬히 해낼 수 있다. 휜 나무는 보기에 불안해 보이거나 흉해 보인다는 생각은 인위적 질서 중심의 서양식 가치관이 들어온 이후에 생긴 판단 기준일 것이다. (...) 한국의 전통 건축에는 뒤틀리고 휜 나무가 그대로 기둥과 대들보로 쓰인 예들이 많이 있다. 곧은 놈은 곧은 대로, 또 휜 놈은 휜 대로 편견이나 차별 없이 다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기막힌 평등사상을 이러한 한국 기둥은 얘기해주고 있다.

-41쪽

목구조는 수많은 부재들끼리 서로 의존하는 절묘한 균형력을 기초로 세워지기 때문에 한번 잘 짜여지기만 하면 돌덩이보다도 더 단단한 구조적 안정성을 갖는다. 이 위로 육중한 지붕이 묵직하게 눌러주면 목구조는 완강한 결속력을 지니며 수천 년을 버틸 수 있게 된다. 한국 전통 건축에서 장엄한 지붕이 무겁게 느껴지기 보다 차분한 안정감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지붕이 단순한 짐이 아니라 이처럼 아래쪽의 구조체를 도와 일체가 되기 때문이다. 목구조는 화재나 전쟁 등 인재(人災)에 약한 단점이 있긴 하지만 반면에 부재들 사이의 상호 균형력을 갖기 때문에 지진에는 가장 유리한 구조 방식이기도 하다.

-55쪽

홍살문은 왕릉의 영역이 시작됨을 알린다는 점에서 사찰의 일주문에 해당된다. 홍살문의 높이는 일주문이나 솟을대문보다 높으나 단주 두 개만으로 이루어지는 매우 단순한 구성을 보여 준다. 이때 두 개의 단주 사이 꼭대기 부분에 열두 개의 살대가 더해지며 그 중앙에는 태극 마크가 붙여진다. 살대는 법도의 곧고 바름을 상징했는데 이것은 곧 나라와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또한 열두 개의 막대기는 열두 간지(干支)를 상징하기도 했다. 살대의 중앙에는 천지의 운행 원리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태극 마크가 붙여짐으로써 인간사 열두 간지의 순회를 다스리는 천하 일인 왕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서원에서처럼 왕과 나라의 권위를 상징하지 않을 경우 살대는 열두 개가 아닌 열 개가 쓰이기도 한다. 서원의 정문 앞에 홍살문을 세웠듯이 살대는 종종 솟을대문이나 서원의 내문 등에 쓰이기도 하였다.

-127쪽

서양 건축은 한국 전통 건축만큼 남향을 중시하지 않았다. 자연의 혜택을 누리기보다는 인간의 의지와 기술로 이것을 해결하겠다는 현실적 자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양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건축은 어차피 땅 위에 인간만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렇다면 굳이 자연의 조건에 얽매일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다. 그보다 인간의 존재 의지를 표현해줄 다른 요소를 더 중시했다. 낭만주의가 유행하기 전까지 서양 건축에서 자연은 그 속에 안기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손으로 개조해야 되는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서양 건축에서 햇빛을 일부러 피했을 리는 없다. 다만 그들이 아무 곳에서나 일광욕을 즐기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햇빛을 취하는 방식이 직설적이라는 데 차이가 있는 것이다.

-140쪽

당간지주는 돌이나 철로 만들었기 때문에 고찰들이 난리통에 불에 타 사라진 와중에도 지금까지 남아 백제나 신라 때의 유구한 불교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고찰의 전각들이 임진왜란 이후에 중건한 경우가 대부분인 가운데 당간지주는 확실히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유구임에 틀림없다.

-185쪽

궁궐의 돌길은 살아있는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 이러한 직선의 이미지는 종묘에 오면 다소 변화가 나타난다. 종묘는 선대왕들의 위폐를 모시고 이곳에서 왕들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기 때문에 삶의 영역과 죽음의 영역 사이의 중간 단계에 해당된다. 종묘사직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하여 일직선의 곧은 돌길이 놓였지만 살아있는 왕이 정사를 펼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품석은 생략되었으며 길 자체도 세 겹이 아닌 외겹으로 이루어졌다. 돌 색깔이 유난히 어두운 이유는 제사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종묘의 돌길은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적 여정을 상징한다.

-191쪽

왕릉의 돌길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망자(亡者)의 여정이기 때문에 인간적 교만을 상징하는 직선보다는 자연의 일부로 귀속되는 곡선으로 처리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능 자체가 둥근 반원의 곡선 형태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곡선 길이 더 잘 어울린다. 이처럼 왕릉의 돌길은 곡선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왕이 살아왔던 삶의 여정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나간 삶의 여정은 곧 망자의 여정과 동의어로 해석될 수 있다.

-194쪽

서양 전통 건축에서 모서리는 메워지고 봉합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정의되었다. 그래야 기하학적 완결성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서양 전통 건축에서는 모서리가 딱 맞지 않으면 입이 벌어져 바람이 새듯 불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곧 이상적인 공간은 두 개의 벽체와 천장이 만나는 모서리가 직각으로 반듯하게 맞아떨어져 물샐틈없이 정밀하게 짜여지는 경우이다. (...) 이 밖에도 모서리가 잘 봉합된 서양 전통 건축의 공간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여기는 서양의 생활 방식에 잘 맞는 긍정적인 측면을 갖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공간의 느낌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서양 전통 건축의 이러한 모서리 처리는 공간을 불투명하고 폐쇄적으로 만들면서 한국 전통 건축과 큰 차이점을 갖게 된다. (...) 특히 서양 전통 건축의 경우 돌이 주재료라는 점은 건물의 불투명성과 폐쇄성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249쪽

이에 반해 한국 전통 건축의 사각형 공간은 모서리가 조금씩 열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모서리가 열려 있는 사각형 공간은 엉성하고 짜임새가 덜할 지는 몰라도 공간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만들어준다. 투명하고 개방적인 공간은 편안한 느낌으로 발전하며 이 모든 느낌들은 그대로 한국 전통 건축의 사각형 공간이 갖는 특징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리고 나무와 창호지가 주재료라는 점은 이러한 투명성을 배가시켜 준다.

-252쪽

한국 전통 건축의 사각형 마당은 네 면이 건물로 둘러싸이면서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인간의 감각 기능이 주변 환경을 편안하게 인식하는 한계를 잘 지키는 범위 내에서 마당의 크기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거기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건물과 건물이 만나는 모서리가 적당히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틈새인 것이다. 한국 전통 건축의 사각형 마당 공간은 이처럼 틈새를 천시하거나 잊지 않고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는 섬세한 매력이 있다.

-253쪽

모서리가 열린 투명한 사각형 공간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 전통 건축의 단점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어 왔다. 사람은 누구나 방해받지 않고 혼자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은데 한국 전통 건축에서는 분명히 사람이 남들에게 너무 많이 노출된다. 특히 서양식 생활 방식에 익숙해진 최근에 이러한 시각은 이제 우리의 일반적 생각이 되어버렸다. 특히 한옥에서 한번이라도 자본 사람은 밖에서 나는 조그만 벌레소리와 바람소리마저도 너무 크게 들리는 통에 신경이 민감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현상들은 현대인들에게 전통 건축을 점점 더 낯설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한국 전통 건축의 투명한 공간은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을 높여주는 기능을 갖는다.

-256쪽

뒤집어 이야기하면 한옥의 불편한 점으로 지적된 이런 사항들이 바로 내․외부 공간 사이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다는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에 해당되는 내용들이다. 모든 방 사이의 거리가 짧고 이동이 간단한 서구식 주택에 비해 같은 집안인데도 부엌에서 안방까지 가기 위해서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 하며 산 넘고 강 건너듯 먼 거리를 움직여야 하는 한옥의 공간 구성은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자체가 하나의 독특한 건축적 특징일 수 있다. 겨울에 춥다는 말은 그만큼 외기와 내통이 잘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프라이버시 보호가 안 된다는 말은 거꾸로 한옥에서는 그만큼 간접 의사소통이 잘 된다는 것을 의마히가도 한다.
-308쪽

나무로 지어지면 내구성이 떨어진다지만 가회동, 옥인동, 돈암동 등 서울 시내 여러 곳에는 아직도 수십 년 된 한옥이 아무 문제없이 거뜬히 서 있다. 멀쩡한 집이 무너지는 경우는 오히려 콘크리트로 지은 집이며 아파트 재건축에서 볼 수 있듯 한국에서 콘크리트의 물리적, 사회적 수명은 20년을 채 넘기기 힘드니 나무보다 나을 것이 없다. 최근에 캐나다 통나무집이 마치 낭만적 전원을 즐길 만한 여유가 있는 상류층의 상징인 것처럼 과대 포장되어 유행하면서도 같은 나무집인 우리 한옥은 여전히 불편하고 재래적인 것으로 보려는 편견은 변하지 않고 있다.
-308쪽

한옥은 나무와 창호지로 지어지기 때문에 방안에 있더라도 다른 사람의 존재를 희미하게나마 간접 의사소통 방식에 의해 느낄 수 있다. (...) 이에 반해 프라이버시 보호도가 높은 폐쇄적인 방 속에 혼자 있다 보면 다른 사람의 존재는 한동안 관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방 속에 혼자 있던 기분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져서 사람을 마주치는 일 자체가 싫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투명한 공간을 갖는 한옥을 버리고 폐쇄적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면서 가족 사이에 대화가 줄어들고 이웃 사이에 멀어지게 된 이유이다.

-319쪽

서양의 전통 건축에서 건물의 내부는 전적으로 사적 공간이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벽은 불투명하고 둔탁하게 폐쇄되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적으로 개인사였기 때문에 외부에 노출되면 안 되었다. 20세기 현대 건축은 한마디로 콘크리트와 철골이라는 새로운 기계 산업 건설 방식을 이용하여 전통 건축을 대체할 수 있는 투명하고 개방적인 공간을 창조하려던 작업이었다. 이러한 20세기 서양 현대 건축이 완성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동북아시아의 투명 공간이었다.

-321쪽

서양 현대 건축가들도 부러워하며 모방했던 한국 전통 건축의 대표적 특징이 정작 한국의 일반인들로부터는 버림받았다. 전문 건축가들이 한국 전통 건축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은 내용이 건물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불편을 초래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의 생활 방식과 사고 방식이 서구식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한옥이 지닌 장점은 장점으로서 작용하지 않는 반면 단점은 크게 부각되어 한옥이 사라지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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