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산 선운사
한태희 그림, 이상희 글, 초방 기획 / 한림출판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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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할아버지 한 분이 고개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기름진 들에다 산과 바다까지 있으니, 넉넉한 마을이로군."

그렇지만 집집마다 문을 꼭꼭 걸어닫은 채 대답이 없어 밥 한 끼 공양받기도 힘들었다.
얻은 것은 겨우 감자 한 알.
산과 들과 바다에서 땀 흘려 거둔 양식을 해적들이 쳐들어와 모조리 빼앗아 가는 까닭에 마을 인심이 각박해져 있었다.
마을을 일으키는 사업을 구상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바닷가로 갔다.
개펄 진흙으로 둑을 쌓아 바닷물을 가둔 다음, 가마솥에 바닷물을 퍼넣고 장작불러 끓여 소금을 거두게 만들었다.
해적들이 바닷물과 햇볕은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
귀한 소금을 내다 팔면 굶주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에서 황금 배가 등장하더니 흰옷을 입은 소년이 금빛 불상을 할아버지께 선물로 드리고 사라졌다.
역시 보통 할아버지가 아니다.

따뜻한 봄과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오곡이 익어가는 가을이 되자 여지 없이 해적이 쳐들어왔다. 전라도 바닷가라면 왜구라고 해도 익숙했을 텐데 굳이 '해적'이라고 쓰는 마음이 엿보인다.^^
역시 평범하지 않은 할아버지!
칼을 뽑아들고 덤비는 해적을 벽에 걸린 그림속 호랑이로 제압하신다.
이놈들!

사정을 들어보니 해적들도 딱하다. 어릴 때 해적떼에 잡혀가 배운 것이 도적질 뿐인 그들에게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도와 소금을 굽고 절도 짓게 만들었다.
영차, 영차, 열심히 일하는 해적들.
힘 하나는 장사였을 테니 딱 제격이다!
부처님 모실 대웅전 공사도 한창 진행중.
못나다고 내버리지 않고 휜 대로, 생긴 모양 대로 나무를 짜맞춰 누각도 지었다.
새 봄빛 속에 우뚝 선 대웅전.
울긋불긋 고운 단청 올리고, 부리부리 눈을 가진 용 머리 들보도 꾸미고, 문간에는 우락부락 사천왕상을, 산과 바다와 마을에 하늘 소리 들려줄 범종도 들여왔다.

그렇게 도솔산 선운사가 지어졌다.
절 마당에 사람들이 가득하고 합장하는 스님들 모습이 정겹다.
뜰에는 승무 추는 시님들 몸짓이 나비처럼 가볍고, 마을 사람들 얼굴에 웃음이 번져 간다.

그렇게 마을에 평화와 번영과 사랑을 심어준 할아버지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평범한 할아버지가 아닌 이 할아버지를 찾는다는 건 어리석은 일.
그저 마음에 새기고 고마워하며, 더 열심히 사는 게 최선!
도솔산 선운사에 가면 이 할아버지 그림을 볼 수 있을까?
가보고 싶다. 도솔산, 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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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8-1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이거 중고샵에서 건진지는 반년도 다 됐는데 리뷰는 안 썼어요.
나는 이상하게 소장하고 있는 책 리뷰는 소홀하다는...
도서관에서 빌려와야 반납일에 맞춰 쓰는 게으름의 극치예요.ㅋㅋ

마노아 2010-08-15 17:15   좋아요 0 | URL
중고샵에서 원하는 책을 발견했을 때는 지금 안 사면 큰일나는 듯 덤비곤 하는데, 막상 내 책이 되고 나면 읽기까지도 한참 걸려요. 그런 책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마감이 필요한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