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장면에 탕수육.”
“파스타 먹자, 오늘만은!”
“그냥 집에서 라면이나 먹자.”
주말 메뉴를 두고 또 식구들 간에 말씨름 시작이다. 외식이라면 무조건 자장면이라는 아들 동우와 TV드라마에서 나오는 근사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고 싶은 딸 선우에 만사 다 귀찮다며 소파에 붙어 있는 남편까지 식성도 가지각색이다. 간만에 온 식구가 같이 외식을 하자며 들뜬 기분도 이대로는 망치기 십상.
“지난번 외식 때도 중국집에 갔었잖아. 오늘은 내가 먹고 싶은 파스타로 하자.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파스타 먹고 싶은 거 얼마나 참았다고.”
“칫, 누나는 TV에서 나오는 건 뭐든지 먹고 싶대. 자장면이 최고라고.”
“하암~ 얘들아, 밀가루로 만드는 국수가 다 거기서 거기지. 괜히 나가서 먹으면 비싸기만 하다고. 집에서 짜파게티, 스파게티, 해물탕면 입맛대로 끓여먹자.”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에라, 오늘은 칼국수나 해 먹자. 부엌으로 가서 밀가루 반죽을 시작한다. 엄마 화난 건 알았는지 딸이 등 뒤에 와서 살살 애교를 부린다.
“셰엡 셰엡~.”
“내 주방에 여자는 나 하나면 충분하다.”
“후후. 엄마는 역시 센스 있어. 엄마, 뭐 만들어요?”
“오늘 외식은 포기. 칼국수 만든다. 아빠 말처럼 밀가루는 다 밀가루니까.”
“칼국수도 좋지.”라며 TV 앞에 철썩 붙어버린 줄 알았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 도우러 온다. 밀가루 반죽이라면 일가견이 있다.
“자, 아빠가 셰프 부럽지 않은 국수의 마법을 보여주마. 이렇게 밀가루에 물을 넣고 개면 수분을 흡수한 단백질이 부풀면서 결합해 덩이가 지게 된단다. 밀가루에는 탄수화물이 70% 단백질이 10% 가량 들어 있는데 그 단백질 중 80% 정도가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야.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은 각각 끈기와 탄력이라는 특성이 있고 각 7:3 정도의 비율로 존재하지. 이 두 성분은 반죽을 치대는 과정에서 결합해 글루텐을 만들어내. 자 봐라. 이렇게 잡아당기는 대로 쭉 늘어나고 끊어지지 않지? 글리아딘의 길게 늘어나는 성질, 글루테닌의 힘이 합쳐져 탱탱하고 쫄깃한 글루텐이 완성되는 거란다.”
아빠는 머릿속으로 글루텐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하고 있었다. 동글동글한 아미노산이 염주알처럼 늘어선 글리아딘과 용수철처럼 길쭉한 글루테닌이 서로 엉켜붙는 장면을 말이다. 한편 반죽을 하는 아빠를 보며 아들 동우은 연신 감탄사를 뱉는다.
“우와, 아빠 벌써 다 된 것 같아요. 이제 얼른 밀어요.”
“흠 흠, 그래 이 정도면 이제 밀어도 되겠다.”
쓱쓱 방망이로 밀 때마다 죽죽 반죽이 퍼지며 펼쳐졌다.
“아빠 그런데, 이렇게 손으로도 스파게티 국수를 만들 수 있나요?”
아하, 여전히 선우는 파스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이지. 만들 수 있고말고. 손으로 만든 생 파스타는 우리집 칼국수처럼 신선하고 단맛이 더 난단다. 하지만 장기간 보존하긴 힘들지. 그래서 우리가 시중에서 구입하는 스파게티 국수는 기계로 면을 건조시켜 보관하기 쉽게 만든 것이야.”
“누나는 스파게티만 좋아한다니까. 아빠, 그런데 스파게티는 엄청 오래 삶아야 하잖아요. 그런데도 먹어보면 면은 딱딱하고. 난 그래서 싫더라.”
아들 놈은 스파게티가 영 싫은 모양이다.
“이탈리아의 파스타가 오늘날처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건 건조기술 덕분이란다. 파스타 제조는 건조공정이 특히 어려워. 너무 빨리 건조시키면 국수 표면에 금이 생겨버리지. 이탈리아에서는 뜨거운 태양 아래 파스타를 말리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해. 하지만 그러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 기계 건조를 할 경우에도 40도 정도의 저온에서 48시간 이상이 걸렸는데 최근에는 80도의 고온에서 건조하게 돼 건조시간이 10시간까지 줄었다고 하더구나.
건조한 면의 경우 1년 유통이 가능한 면의 수분함량이 14~15%인데 반해 파스타의 수분 함량은 12~13%야. 고작 2%의 차이지만 이 덕분에 장기 보존이 가능한 거지. 그 대신 삶는 시간은 일반 건조 면의 2~3배가 걸리게 돼 버렸단다. 덕분에 동우가 싫어하는 오래 삶아야 하는 면이 된 거지. 분명히 스파게티를 좋아해도 동우처럼 삶는 시간이 긴 걸 싫어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삶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제조사들이 노력을 하고 있단다.”
<파스타 면발(좌)과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우)의 모습. 사진제공 동아일보>
“동우가 아직 어려서 그래. 너 나중에 데이트 할 때도 그렇게 자장면만 먹는다고 하면 인기 없을 걸.”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파스타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스파게티는 사실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아랍인들이 시칠리아 섬을 정복했을 때 가져온 이트리야라는 국수가 스파게티의 시초로 여겨진다. 스파게티하면 당연히 같이 연상되는 토마토소스 조리법 역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 토마토가 본격적으로 수입된 것은 183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이탈리아 고유의 밀인 듀럼밀은 거칠고 딱딱하며 점성이 강해 빵을 만들기에는 적당치 않았지만 면으로 만들면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맛이 난다. 익히면 겉은 부드럽고 매끄러우면서 안은 단단하고 거친 느낌이 남아 있는 스파게티 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면의 가운데 심의 거친 질감이 남아 있는 상태를 ‘알텐테’라고 하며 최고로 친다.
파스타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 칼국수가 끓으며 내는 맛있는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엄마! 정말 맛있어요. 뭐니 뭐니 해도 우리집 칼국수가 제일이네요. 면발은 쫄깃하고 국물 맛도 끝내줘요.”
“그 쫄깃한 면발이 바로 글루텐의 마법이지. 이 감칠맛 때문에 글루텐은 간장이나 조미료의 원료로도 쓰인단다. 점성이 있어서 케찹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식품의 첨가물로도 쓰이고, 또 강아지 사료나 물고기 먹이를 만들 때도 없어서는 안 될 성분이란다.”
“이 맛있는 걸 강아지도 물고기도 아는 건가요? 하하하.”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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