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품절


발 빠른 화연이의 사과. 화연이의 말이 거짓으로 밝혀져도 상처는 내가 받았습니다. 거짓 소문은 살을 보태가면서 빠르게 퍼졌습니다. 하지만 정정된 진실은 더디게 퍼지다가 어느 순간 스르륵 사라져버렸습니다. 아직도 아빠가 자살했다고 믿는 아이가 있을 정도입니다.-21쪽

이렇게 아주 사소한 일로 선생님이 정신줄을 놓고 마는 일을 두고, 아이들은 초짜 선생님의 통과의례, 즉 신고식이라고 했다. 신고식을 거치면 비로소 대한민국의 정식 선생님이 되어, 앞으로 계속 때리는 선생님이 되든 무관심으로 초지일관하는 선생님이 되든 한다는 것이다.-66쪽

엄마가 준 컵을 꼭 쥐었습니다. 차가웠습니다.
"천지야, 속에 담고 살지 마. 너는 항상 그랬어. 고맙습니다, 라는 말은 잘해도 싫어요, 소리는 못 했어. 만약에 지금 싫은데도 계속하고 있는 일 있으면, 당장 멈춰. 너 아주 귀한 애야, 알았지?"
이제 그만 멈추려고요. 눈물이 자꾸 굵어졌습니다.
"에이, 나도 갑자기 라면이 슬퍼지네. 라면이 너무 슬퍼."
미안해요, 엄마.-110쪽

"그런 사람하고 왜 결혼했어?"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지. 근데 결혼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더라. 누가 누굴 지켜. 그거 웃긴 거야."
"그래도 끝까지 지켜보지 그랬어?"
"지쳤지 나도. 사람 안 변하더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원래'라는 말이야. 걔가 원래 그런다. 원래 그러는 거 모르고 결혼했냐? 환장할 뻔했다. 뭘 해도, 원래라는 말 앞에서 다 무너지는 거야. 처자식 굶고 있는데, 원래가 어딨냐? 나도 진짜 원래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원이 없겠더라."-147쪽

"어찌된 게 요즘 애들은 단체전은 없고 개인전만 있는 거 같아요. 그렇게 혼자 다 하려니 알아야 할 게 얼마나 많겠어요."
"부모님들이 시상대에 여럿이 올라가는 것보다, 자녀 혼자 올라가는 모습을 더 원하는 게 아닐까요?"
"하하하. 생각해보니 나도 그러네요. 우리 딸들이 제일이라는 말, 입에 달고 살았거든요. 나도 다 너희들을 위해서란다, 라고 하면서 아주 우아하게 폭력을 행사했죠. 너 꼭 쟤 이겨야 돼, 결국 그거였거든요."-160쪽

"그럼 잘 챙겨. 나처럼 잃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네 동생, 내 동생 아니고, 네 아빠, 내 아빠 아냐. 근데 넌, 여전히 내 친구야. 화연이 편지만 가져갈게. 그리고 미라야, 분명히 말하지만 천지는 멍청한 게 아니라 착한 거야. 착한 애는 가만히 놔두면 되는데, 꼭 가지고 놀려는 것들이 생겨서 문제지. 자기 맘에 들면 착한 거고, 안 들면 멍청한 건가? 나, 간다."-195쪽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나는 사과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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