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 꽃으로
권태성 글.그림 / 두리미디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어디서 소개글을 읽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제목을 보니 의미심장한 것이 찌리릿 가슴을 울려버렸다.  

출근길 급하게 집어들고 나온 책인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는 이 책에 실린 여러 이야기 중 하나였다. 아, 책 전체가 그 이야기는 아니구나...  

모두 다섯 개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큰 의미로 살펴보자면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강아지 이야기, 첫사랑 이야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가족과 자신의 이야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는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나머지 이야기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과 관계 사이의 이야기였다.  

외로움을 달래주던 좋은 친구였으나 점차 소원해지면서 버려진 강아지 이야기는 참 짠했다. 백내장으로 눈이 멀어가는 가운데 자신을 버린 옛 주인을 원망하지 않고, 우연히 마주쳐 흔적으로만 느끼면서도 그 아이의 행복 기운에 오히려 안도하는 이 따뜻한 마음이라니...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겠지만, 외로울 때 잔뜩 의지해 놓고, 마음을 주게 만들어놓고는, 나중에 필요 없어졌다고, 혹은 귀찮아졌다고, 부담스러워졌다고 다시 내버리는 사람이 분명 있다. 나쁘다...ㅠㅠ 

사랑 이야기는 평이했다. 소소하고 담담하니 예쁘고 공감이 가긴 했지만 유독 눈에 들어온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다음 이야기부터는 급물살을 타버렸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접할 때마다 아플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 -김학순 

고 김학순 할머니의 저 피맺힌 절규를 읽으면서 어찌 마음이 울리지 않을까.
오늘은 지난 광복절에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했던 윤동주 죽음의 미스터리 편을 보았다.   

소문으로 무성했던 '생체실험'의 현실적 증거와 증언들을 내보이며 당시를 조명하는데 갑갑하고 먹먹했다. 분명 실험 데이터를 가져갔을 규슈 대학은 모르쇠로 일관했건만, 일본 내에서 욘사마도 아닌 '윤사마'를 외치며 윤동주를 기리는 사람들이 그의 시비를 건립하기 위해 서명 운동을 벌이고, 그의 시에 반해서 한국어를 익혀 우리말로 시를 낭독할 때 주는 여운과 감동은 꽤나 진했다. 지금도 나눔의 집을 방문하며 조국의 과거를 반성하며 함께 울어주는 일본인들도 있지만, 그런 개인 차원의 사죄말고, 국가 차원의 정식 사과를, 과연 우리는 어느 때고 받아낼 수 있을까. 할머니들의 자연 수명은 오래 기대할 수가 없는데... 

'아리랑'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어떤 순간에도 이 곡조가 나오면 콧날이 시큰해진다. 이역만리에서 아무 보호도 없이 성적 노리개로 던져진 소녀들이 이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그들 중 누구라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독자도 이미 이렇게 울어버렸는데... 짧은 단편이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이 작품은 일본 내에서도 이 부분이 실려서 책으로 출판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마주치고 더 많은 울림이 전달되기를... 

엄마의 죽음과 아빠에 대한 원망과, 가족의 고독 편도 절절히 이해가 되었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힘들게 학비를 벌며 마친 학업, 단단하고 까칠했던 아버지 손에 담긴 수많은 한숨까지도... 낯선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내 자신도 마주쳤던 진짜 이야기들...  

문스 패밀리도 그랬다. 사랑 이야기는 그저 그랬는데, 가족 이야기가 절절히 이해되고 크게 공감을 주었던... 이 작품도 그랬다. 사랑 편보다도 가족 이야기가 더 깊은 여운을 주었다.   



더불어, 내가 참 좋아하는 뮤지션의 노래가 두 곡 소개되었다. 작가는 각각의 작품마다 B.G.M을 소개했는데 '내 어머니'와 '가족'은 딱 적절한 선택. 실제로 내 어머니는 이승환 자신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발표한 곡이어서 더 진심이 전해진다. 10년 전 빅쇼에 출연했을 때 이 노래를 라이브로 불렀는데 한 번도 눈을 뜨지 않고 불렀더랬다. 눈을 뜨면 눈물이 나올까 봐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그의 노래에선 늘 많은 위로와 영감을 받았는데... 새삼스럽게 고마웠다. 음악의 힘, 글의 힘, 그림의 힘... 모두 진심이 담겼을 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 놓는다. 아름다운 일이다.  

마지막 장은 '자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의 꿈과 좌절과 도전에 대한 이야기. 구성상으로도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마무리다. 이런 종류의 책이 드문 게 아니라 오히려 흔한 편이지만, 모두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한다. 때로 진부하다 해도, 흔하다 해도 이야기의 진실된 힘이 독자를 녹아들게 한다. 이 책이 그랬다. 별 넷으로 시작되어서 별 다섯으로 마무리한 독서. 좋은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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