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 가지 규칙을 준수한다. 먼저, 우리가 먹을 것은 우리가 노동을 해서 번다(노약자와 장애인들을 위한 것을 제외하고는 정부나 시청, 도청으로부터 어떠한 지원금도 받지 않는다.) 다음으로, 우리는 모든 걸 나눠가진다. 공동체에 크게 기여하는 가장 튼실한 사람도 생산성 없는 노인보다 더 많은 걸 갖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멸시받고 소외된 주변인들인 우리는 베푸는 사람이 되는 사치를 누리기 위해 생활하는 데 충분한 정도 이상의 노동을 한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궁핍을 뛰어넘고 베푸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우리도 마음을 담아 나누고 구원을 베풀 수 있는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부족한 것이라곤 없는 여러분이 그런 일을 못할 게 뭐 있습니까!"이것이 엠마우스 운동이다.-30-31쪽
"신부님께서 제게 돈이든 집이든 일이든 그저 베푸셨더라면 아마도 저는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 겁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살아갈 방편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그후 그는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 절망한 자에서 구원자가 된 것이다. 엠마우스는 그렇게 생겨났다. -35쪽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신자세요, 교회에 다니십니까? 우파세요 좌파세요? 투쟁가이십니까 협력자이십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그런 질문은 절대로 하는 법이 없다. 처음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저 이렇게 물을 뿐이다. "배고프세요? 졸리십니까? 샤워를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미사에 가건 아니면 다른 모임에 가건 그것은 전적으로 각자의 자유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 가운데 아주 적은 수만이 신앙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복음서에서 끄집어낸 '이야기들'을 들려주면 좋아한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은 예수께서 건강한 자들과 관례를 잘 따르는 자들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 길 잃은 자들, 죄인들, 의심하는 자들을 위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44쪽
희망을 소망과 혼동하지 말자. 우리는 온갖 종류의 수천 가지 소망을 가질 수 있지만 희망은 단 하나뿐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제 시간에 오기를 바라고,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라며, 르완다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소망한다. 이것들은 개개인의 소망들이다. 희망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삶의 의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만약 삶이 아무런 목적지도 없고, 그저 곧 썩어 없어질 보잘것없는 육신을 땅 속으로 인도할 뿐이라면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53쪽
고통받는 자들에게 충고를 하려 들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들에게 멋진 설교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다만 애정어리고 걱정어린 몸짓으로 그 고통에 함께함으로써 우리가 곁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그런 조심성, 그런 신중함을 갖도록 하자.-71쪽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는 걸까요?" 그러면 나는 그저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지요."-74쪽
인간은 밤바다를 항해하는 한 척의 배와 같다. 복음과 교회는 바닷가에 있는 등대와 같다. 그것의 위치는 완벽할 정도로 정확하게 지정되어 있다. 그것은 계시와 교리의 엄정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멋들어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라도 등대가 꺼져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면 배는 암초에 좌초하고 말 것이다. -158쪽
반드시 이민자들이 한 행위가 아닌, 불행에서 비롯된 범죄로 인해 살기 힘들어진 구역에 사는 일부 플아스인들의 분노를 나는 이해한다. 그러나 못 가진 자들을 위해 프랑스 내에서는 물론이요 프랑스 국경 밖에서도 벌여야 할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연대의 노력만이 그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다. 불법을 저지른 처지에 놓여 있는 이민자들 전부를 국경으로 인도함으로써 그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건 환상이다. 세계화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보다 광범위한 차원의 부의 재분배를 생각하는 문화권을 새롭게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190쪽
고통받는 누군가에게 '당신은 참으로 운이 좋군요. 당신이 겪는 고통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라고 말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는 두 가지 태도만이 바르다고 마음속 깊이 확신한다. 침묵하고, 함께 있어주는 것이 그것이다.-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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