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84 2009-10-19

 
 



 
2009 노벨 생리의학상, 텔로미어
 
1918년 노인 같은 외모를 가진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벤자민 버튼. 벤자민의 괴상한 외모에 놀란 아버지는 그를 낳다가 아내마저 목숨을 잃자 ‘노인 아이’를 도시의 한 양로원 앞에 버립니다.

열두 해가 지난 어느 날, 60대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벤자민은 할머니를 찾으러 양로원에 온 6살 꼬마 데이지를 만납니다. 수차례 만나고 헤어진 뒤 벤자민과 데이지는 함께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벤자민은 날로 어려지고 데이지는 늙어만 갑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가 돼 죽음을 맞는다는 상상력으로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늙는 것일까요. 답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 ‘텔로미어’에 있습니다.

사람의 체세포는 46개 염색체(상염색체 44개+성염색체 2개)로 이뤄져 있습니다. 부모에게서 각각 23개씩 받죠. 염색체는 유전정보 DNA를 담고 있고, DNA는 다시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이라는 네 염기로 구성됩니다.

문제는 이들 네 가지 염기만 있을 경우 염색체가 온전하게 복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ATGCGGTAG라는 DNA가 염색체에 담겨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DNA 복제효소가 각 염기를 지나며 A→G 방향으로 복제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복제는 끝에 있는 G염기 앞에 있는 A염기까지만 진행됩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염기가 없어 효소가 G염기를 지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G염기를 복제하려면 해당 염기 뒤에 또 다른 염기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염색체의 가장 마지막에 있으면서 온전한 복제를 도와주는 부분이 ‘텔로미어(telomere)’입니다. 텔로미어는 ‘끝’을 뜻하는 그리스어 ‘telos’와 ‘부위’를 가리키는 ‘meros’의 합성어로 DNA 양 끝에 붙어있는 반복 염기서열(TTAGGG)을 말합니다.

다시 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DNA는 AATGCGGTAG에 텔로미어가 붙어 AATGCGGTAG-TTAGGG-TTAGGG-TTAGGG-TTAGGG로 이뤄졌습니다. 덕분에 필요한 마지막 염기까지 온전히 복제할 수 있습니다.

세포분열(DNA 복제)이 한 번, 두 번 반복될수록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집니다. 텔로미어라 해도 마지막 염기가 복제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언론에서 ‘세포가 분열할수록 텔로미어가 짧아진다’고 말하는 의미입니다. 물론 세포의 생존이나 활동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사람 체세포에 있는 텔로미어의 길이는 보통 5~10kb(1kb는 DNA 염기 1000개 길이)이고, 세포분열을 할 때마다 50~200bp(1bp는 1염기 길이)만큼 짧아집니다.



<사진에 보이는 노란색 부분이 텔로미어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끝부분에 위치하며 염색체의
완전한 복제를 돕는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질수록 세포 차원에서 더 늙게 된다는 뜻이다.
사진제공. 동아일보>

텔로미어가 짧아지다가 그 길이가 노화점(사람의 경우, 1~2kb) 이하로 떨어지면 세포는 복제를 멈추게 됩니다. 노화 상태에 빠지는 거죠. 결국 세포는 죽습니다. 요약하면, ‘세포분열→텔로미어 길이 짧아짐→노화점보다 짧아지면 세포분열 멈춤→세포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정상적인 노화 과정입니다. 데이지가 늙는 것도 텔로미어라는 ‘노화 시계’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암세포의 85%는 세포분열을 격렬하게 해도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암세포는 죽지 않고 계속 증식할 수 있습니다. 텔로미어 관점에서만 본다면, 노화와 암은 반대의 선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전의 양면’인 셈입니다.

이는 암세포에만 있는 ‘텔로머라제’라는 효소 때문입니다. 텔로머라제는 텔로미어 길이를 노화점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끝에 계속 염기를 붙여주거든요. 과학계에서는 암세포의 텔로머라제 활성을 떨어뜨리면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암세포의 죽음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암은 보통 3가지 방법으로 치료합니다. 외과수술로 암 덩어리를 잘라내던가 항암제로 암세포를 죽이거나 방사선으로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몸 안에 있는 암세포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도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항암제로 사용하는 물질은 주로 몸 안에서 왕성하게 세포분열을 하는 세포를 죽이도록 디자인돼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암세포를 많이 죽이는 것뿐이지 다른 세포들도 그 영향을 받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머리카락을 만드는 모근세포는 세포분열이 왕성하거든요.

하지만 암세포의 텔로머라제 효소를 줄여 암세포를 자연사시키면 부작용을 훨씬 줄일 수 있습니다. 텔로머라제는 암세포에만 있기 때문에 이런 효과는 암세포에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세포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거죠.

암세포 정복이란 동전을 뒤집으면 장수(長壽)의 꿈이 반짝하고 빛납니다. 체세포에 텔로머라제가 작동하도록 하면 체세포의 텔로머라제 길이가 노화점 아래로 짧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수천 년 전, 영생(永生)을 누리고자 했던 진시황의 불로초가 텔로머라제에 있는 셈입니다.

글 :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과학전문기자

출처 


왜 얼룩말은 띠무늬고 표범은 점무늬일까
동물이 서로 다른 무늬를 갖도록 진화하는 데에 수학적인 원리가 담겨 있다. 동물의 무늬는 멜라닌 색소의 농도에 따라 정해지는데, 멜라닌 색소는 피부 위에서 짙어졌다 옅어졌다 하는 등 일정한 주기에 따라 농도가 달라진다. 이를 그래프로 표현하면 어떤 동물의 무늬가 왜 그렇게 생겼는지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동물의 피부 멜라닌 농도를 그래프로 그릴 경우 x축(가로)과 y축(세로)의 멜라닌 색소 주기가 모두 짧으면 멜라닌 색소의 농도가 높아지는 구간이 짧고 자주 나타나고 어느 한 축의 주기가 길면 그 쪽 방향으로 길쭉한 띠무늬가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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