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소개한 사례에서 우리는 난봉꾼들이 얼마나 처녀를 좋아 했는지 알 수 있는 동시에 사람에 따라서는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기 때문에, 얼굴이 예쁜 아가씨는 마음만 먹으면 갑자기 호화로운 생활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웬만한 여자가 신을 수 없는 "작은 신"은 처녀를 암시하는 것으로서 정복욕이 강한 남성이 즐겨 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당되는 말로 봐야 옳다.
-67쪽
18세기의 사회는 온통 ‘훔쳐보기’의 대상이었다. 경찰은 거물급 인사들의 사생활을 추적하고 엿본 뒤 보고서를 만들어 치안총감과 왕실에 전달했다. 어디 그 뿐인가? 도서 감찰관도 수많은 끄나풀을 풀어 작가들을 감시했다. 치안총감 사르틴느가 했다는 말-길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셋 중 하나는 자기 부하라는 말-은 그 사회에서 ‘훔쳐보기’가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음란 서적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훔쳐보기’를 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훔쳐보기’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가르친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과적으로 반문화의 철학이었다. 또한 독자 가운데 이같은 철학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일차적으로 피임의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 반문화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반역사적인 것으로서, 말하자면 자연의 철학이요 유물론이다. 신분을 중시하는 전통 사회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철학이 ‘쾌락주의’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182쪽
오늘날 민주화된 사회에 태어나 성인이 된 사람일면 누구나 참정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18세기에 살았던 사람 가운데 자기가 정치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당시 사람은 점점 같은 분위기와 사상을 공유할 수 있었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개인에게 정치적인 집단정신 자세를 갖게 만들어준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문인이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 이래 정확한 지식보다 못한 것으로 천대받던 ‘의견’에 새로운 뜻을 담아 ‘여론’을 만드는 데 이바지 했다. 음란 서적에서 성직 세계의 위선을 고발하고, 왕이나 왕비의 성 생활을 고발하여 왕실의 정통성을 뒤흔드는 한편, 사랑에는 신분의 귀천이 따로 없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마땅하다. 이러한 뜻에서 음란서적을 그 시대의 방식대로 ‘철학 책’이라고 부르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185쪽
우리가 다루는 18세기의 경찰 보고서에는 첩을 둔 남자는 거의 어김없이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모두 알다시피, 금강석은 경도 10의 보석이기 때문에 금강석끼리 마찰을 해야만 가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17세기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당시까지 인도에서만 금강석이 산출되었지만 18세기 초 브라질의 금강석이 발굴되었기 때문에 유럽의 부자들은 금강석에 대한 취미를 더욱 충족시킬 수 있었다.
-187쪽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2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구체제’가 무조건 거부해야 할 대상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프랑스 혁명을 ‘구체제의 산물’이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데 합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앙시엥 레짐’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것을 혁명기의 실세가 무조건 거부하기 위해 모순 투성이로만 강조했던 체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할 모든 체제처럼 조화와 모순, 역동성과 타성을 함께 지닌 체제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체제에도 모순과 타성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혁명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앙시엥 레짐’을 살펴보아야 한다.
-194쪽
특히 전통 사회에서 아주 천천히 일어나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변화와 때로는 급격히 일어나는 경제 위기나 정치 위기가 서로 작용하는 방식, 또는 그같은 위기를 맞이한 사람들이 거기에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서 혁명이 되거나, 개혁이 되거나,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었다고 생각하는 편보다 역사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195쪽
기본적으로 농업 국가였던 프랑스의 ‘앙시엥 레짐’은 경제적으로 많은 특권과 제약을 인정하는 제도였다. 국내 곳곳에 관세 장벽이 설치되어 있었고 수많은 직업인 단체와 조합이 특권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상품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시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1774년 튀르고는 중농주의의 이론을 적용해서 곡물의 자유로운 거래를 실시하고 조합을 폐지했다. 그런데 이같은 노력이 성공하려면 기후 조건도 맞아야 했다. 1775년의 작황이 나빴기 때문에 곡물값이 폭등했고 서민은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을 진압했지만 튀르고의 조치를 원상으로 돌려야 했다. 그리고 프랑스 경제는 아메리카 독립전쟁을 도와주면서 더욱 나빠졌다. 혁명가들은 재정 파탄에 이른 왕국을 떠맡았다. 그들은 자신이 자유 시장 경제를 도입한다고 생각했다.
-196쪽
‘앙시엥 레짐’은 또한 가톨릭교의 지배를 받던 문화이기도 했다. 가톨릭교는 부부 관계까지 규정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태어나는 시기는 부부간의 은밀한 행위가 어떻게 부활절이나 공현절같은 축일과 관계 있는지 보여준다. ......볼테르같은 문인은 가톨릭교를 ‘광신’이라고 비난하고, ‘포르노그래피’ 작가는 성직자의 위선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한편 유물론적 견해를 퍼뜨려 신부, 수녀, 왕, 왕비, 대신, 평민은 모두 같은 물질로 되어 있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사상을 은근히 퍼뜨렸다. 이같은 사상은 문맹자가 줄고, ‘수기 신문’, ‘추문’, 일간지 같은 읽을거리가 늘어났기 때문에 더욱 쉽게 널리 퍼질 수 있었다.
-197쪽
재정 파탄에 직면한 왕은 전국 신분 회의 소집에 동의했다. 1614년 이후 한 번도 소집되지 않던 전국 신분회에 관한 자료를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제출하라는 정부의 명령은 곧 언론의 자유를 뜻했다. 또한 전국 신분 회의 선거법이 1789년 1월에 나온 뒤 사람들은 자유로이 모임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라는 두 가지 통로를 통해서 혁명의 과정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고 가속화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197쪽
우리는 18세기 프랑스의 문화에서 새로운 관계가 태어나고 확산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살롱’에서 핏줄을 중시하는 궁중의 문화와 재능을 중시하는 ‘문학공화국’의 문화가 만나 새로운 관계를 이루었듯이, ‘치마 밑의 세계에서는 ’재투성이‘가 하루 아침에 때를 벗고 귀족과 만나는 ’사랑의 공화국‘이 생기고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도박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도박장에서 귀족과 평민은 신분이라는 구조를 뛰어넘어 평등한 관계로 만났다. 이처럼 사회적 현실 속에서 ’구제도의 모순‘이라고 생각하던 타성도 존재했지만 역동성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의 방식대로 기득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을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만이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깨닫게 된다.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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