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의 서늘한 인터뷰 [제 965 호/2009-08-07]


요즘 제8의 전성기를 누린다는 개그맨 박명수. 그에 못지않게 바쁜 분이 있다. 1887년 태어나 벌써 100살이 넘었지만 소설, 영화, 게임, 드라마 모든 분야에서 왕성히 활동 중인 그 분. 커다란 송곳니로 목덜미를 콱 물어 피를 쪽쪽 빨아 마시는 그 분의 이름은 뱀파이어다.

조각 같은 얼굴에 민감한 감수성까지 갖췄으니 ‘꽃보다 남자’도 울고 갈 정도. 최근 영화 ‘트와일라잇’에 나온 뱀파이어에 수많은 여성 관객이 탄성을 자아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게다.

이런 바람을 타고 미국에서는 한 소녀가 뱀파이어 남학생을 좋아하면서 겪는 ‘뱀파이어 입맞춤’이, 일본에선 마음씨 착한 뱀파이어의 사랑이야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의 피를 마시지 않으려는 고뇌도 엿보여 연민의 정이 느껴질 정도다.

과학향기가 뱀파이어와 직접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뱀파이어는 로맨틱한 겉모습과 달리 먹고 사는 게 힘들다고 털어놨다. 귀족인 뱀파이어가 먹고 사는 문제로 힘들다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최근 뱀파이어 세계에선 더 이상 사람을 물어 뱀파이어로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는데, 왜 그런 거죠? 무슨 과학적인 연구가 있다면서요?

인간과학자의 연구덕분이지. 인간이 우리를 그렇게 걱정해 줄줄 몰랐어. 미국 센트럴플로리다학교 코스타스 에프티미우 교수가 2006년인가? 영화적 상상 대 물리학적 실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거든.

그 내용에 보면 우리가 사람의 피를 먹을 수록 공멸을 일으킬 것이라고 나오더군. 우리도 논문을 보고나서 알았다니까. 그래서 뱀파이어들 사이에서 동물 피를 마시려는 움직임이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도 나오는 것 같아.

이유는 간단해. 수학공식으로 추정해 볼 수 있지. 자 봐봐, 2009년 1월 1일에 최초의 뱀파이어가 있었다고 가정해봅시다. 현재 인구가 68억 명이니 한 달에 한번 사람의 피를 빨아 마실 경우, 2월 1일에는 뱀파이어가 2명이고 인구수는 67억9999만9999명이 되잖아.

뱀파이어 수는 3월 1일 4명, 4월 1일 8명, 5월 1일에는 16명으로 늘어나게 되지.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 32개월이 지난 2011년 8월에는 뱀파이어 수가 42억9496만7296명으로 남아있는 사람 수를 넘게 돼. 한 달이 더 지나면 사람은 모두 뱀파이어가 되고 동물 피를 마시지 않는 이상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는 거야.

물론 모든 뱀파이어가 사람 피만 마시고 사람 수가 매년 증가하지 않는다고 가정했지만 그래도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3년 안에 심각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

Q. 아, 정말 심각하네요. 사람 피를 마시지 않으려는 노력에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뱀파이어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아요. 뱀파이어는 포르피리아 유전병에 걸린 환자를 잘 못 알아봐 생겨났다고 주장하던데요.

그런 주장이 있지. 포르피리아 유전병은 혈액 속에 있는 헤모글로빈이 철분과 붙는 것을 돕는 단백질 포르피린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않는 병이야.

철분은 세포에 산소를 전하고 이산화탄소를 없애주는 역할을 해. 그런데 헤모글로빈에 철분이 없으면 세포에 산소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잖아. 큰 문제가 생기는 거지.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 받아야만 살 수 있어. 또 이 환자는 잇몸이 주저앉아 환자의 이가 정상보다 크게 보이기도 하고. 이런 모습을 보고 뱀파이어 전설이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

Q. 광견병도 뱀파이어 전설에 일조했다던데요?

맞아. 이것도 인간과학자의 연구때문에 생긴 오해야. 1998년 스페인 후안 고메스 알론소 박사는 “흡혈귀의 특징은 광견병 환자의 증상과 유사하다”고 미 신경학회지 ‘뉴롤로지’에 발표했어.

그걸 읽어보니 포르피리아 유전병과 마찬가지로 오해의 소지가 있긴 있더군. 뱀파이어가 주로 남성인 점은 광견병에 걸릴 가능성이 여성보다 남성이 7배 높은 것과 일치하고, 광견병 환자는 불면증을 앓는데 이게 밤에 돌아다니는 뱀파이어 습성과 같다는 거지.

알론소 박사의 주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지난 수십 년 간 여러 영화, 드라마, 소설 등에서 뱀파이어를 봐왔으면서도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조금 섭섭하긴 하네.



<최근 개봉됐던 영화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한 장면. 동아일보 자료사진>


Q. 영화에서 보면 목을 물어 피를 빨아먹잖아요. 이게 가능한가요? 피를 빨아먹으려면 송곳니에 피를 빨아들이는 관이 있어야 하는데.

가슴 아픈 질문이네. 사실 송곳니는 거추장스러워.

우리는 목에 있는 정맥을 물어 피를 빨아먹어. 하지만 송곳니는 정맥을 무는 데 효과적이지만 막상 물고 나면 송곳니가 구멍을 막아 흘러나오는 피의 양이 매우 적지.

송곳니를 빼면 출혈이 곧 멈춰버리니 이것도 문제야. 혈액 속에는 있는 혈소판과 혈장이 이런 작용을 해. 물린 자리에 혈소판이 모이고 혈장에 있는 섬유소가 혈소판을 단단히 고정시키거든. 그러고 보니 모기는 피를 빨 때 혈액이 멎는 것을 막기 위해 항응고제를 주입한다고 들었어. 모기가 문 부위가 가려운 것도 이 때문이고.

어쨌든 우리 뱀파이어의 침샘에는 이런 작용을 하는 물질이 분비되지 않기 때문에 흡혈은 정말 어려운 부분이야. 영화 ‘박쥐’에서 나오는 뱀파이어는 수혈팩을 빨아먹잖아. 세상 참 좋아진 거야.

어이쿠, 조금 있으면 새벽이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이봐, 이제 가봐야겠어. 밤에 활동하는 우리는 낮에 휴식을 취해야 하거든. 잘 가라고. 사람들이 우리 뱀파이어에 대한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네. 껄껄껄.


글 : 변태섭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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