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에서 당신을 훔쳐보는 첩보 위성 |
[제 928 호/2009-0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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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남녀의 애틋한 만남을 그린 설화 ‘견우와 직녀’는 일본에도 전해지고 있다. 일본이름으로 오리히메(직녀)와 히코보시(견우)라고 불리는 주인공들이 1년 중 은하수를 건너 7월 7일 단 하루만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10여 년 전, 일본은 이 이야기를 토대로 우주쇼를 벌였다. 두 주인공의 이름을 딴 일본의 인공위성 2대를 뉴질랜드 상공 550km에 띄워 현대판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실현한 것이다. 초속 8km의 빠른 속도로 날아가던 히코보시는 고성능 카메라와 센서로 오리히메를 찾았고, 둘은 1998년 7월 7일 오전 7시에 도킹에 성공해 하나가 됐다.
미국에도 비슷한 우주쇼가 펼쳐진 적이 있다. 지난 2006년 3월,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3대의 고성능 마이크로 위성을 우주 극궤도에 쏘아 올렸다. 위성 한 대의 무게는 TV보다도 작은 불과 25kg. 3개의 마이크로 위성은 우주궤도에서 마치 사이좋은 3형제처럼 일렬로 배치돼 나란히 비행했다. 지상 300km에서 펼쳐진 사상 최초의 인공위성 일렬 비행은 어두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우주쇼로 기록됐다.
이런 이야기를 듣자면 인공위성은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현실 속의 인공위성은 정 반대이다. 무서운 감시의 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추격자에 쫓기는 장면이 나온다. 추격자는 사람이 아닌 고성능 인공위성이다. 국가안보국은 우주에서 촬영한 도망자의 실시간 영상을 지상에서 전송받는 방식으로 입체 추격전이 벌인 것이다.
과연 이런 일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지상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위성이 사람이나 차량의 이동 정보를 포착해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세상에는 통신, 기상관측, 우주탐사, 과학 실험용 등 다양한 기능의 위성이 있지만 백미는 관측위성, 조금 더 나아가면 정찰위성이다. 정찰위성의 최강자는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미국의 KH-11, KH-12 시리즈의 위성군이다. 두 시리즈 모두 광학관측용, 즉 디지털카메라처럼 빛을 이용해 지상물체를 촬영하는 시스템으로 KH-11은 주간 정찰용이고 KH-12는 적외선탐지기능을 갖춘 주야간 정찰용이다. KH가 Key Hole(열쇠구멍)의 약자이니 얼마나 정밀한지는 짐작이 간다.
KH-11에 실린 광학카메라의 해상도는 대략 10cm급(10cm를 하나의 픽셀, 즉 점으로 인식한다는 뜻)으로, 지상의 자동차 번호판까지 식별이 가능하고 걸어가는 남녀의 성별까지 구분할 수 있다. 한마디로 웬만한 지상 목표물은 KH 위성의 ‘눈’을 피해갈 수 없다.
1999년 발사된 아리랑 1호가 해상도 6.6m, 2006년 러시아에서 발사한 관측위성 아리랑 2호의 해상도가 1m인 점을 감안할 때 그 위력은 실로 짐작이 간다. 게다가 KH 위성은 더 선명한 화면이 필요할 경우 고도를 낮춰 지상에 근접한 뒤 정밀한 탐색을 하고 다시 궤도로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이 1999년 쏘아올린 아리랑 1호. 이 위성은 현재 수명이 종료돼
더 이상 영상자료를 보내오지 않고 있다. 영상제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그러나 정찰 위성의 최강자인 KH 시리즈도 약점은 있다. 바로 악기상, 즉 구름이 많거나 눈, 비가 올 때는 촬영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 때를 대비해 등장한 게 레이더와 레이저를 이용해 관측하는 위성이다. 이 위성들은 전파를 발사한 뒤 반사파를 분석해 목표물의 정보를 얻는 것으로 미국의 해상도 1m급 ‘라크로스’ 위성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당시 KH-11과 12 위성에 라크로스 4~5기를 투입해 이라크 상공에서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시아의 정찰위성 선두주자는 일본이지만 일본의 정찰위성을 탄생시킨 건 북한이었다. 지난 1998년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자 기다렸다는 듯 일본정부는 정찰위성 발사 결정을 내렸다. 일본은 지난 2003년 해상도 1m급의 광학위성을 시작으로 한반도 정보수집위성을 H2A로켓에 실어 우주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후 해상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레이더 위성까지 개발해 발사했다. 현재 광학위성 2개와 레이더 위성 2기가 IGS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의 하늘을 감시하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국과 일본 외에 프랑스의 헬리오스(HELLIOS), 이스라엘의 오페크(OPEQ) 등의 정찰위성이 있고 러시아와 중국 등도 당연히 우주첩보전에 나섰을 것이다. KH 위성을 능가하는 ‘빅브라더’ 위성이 우주궤도 어딘가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정찰위성은 각 나라가 존재에 관한 언급 자체를 꺼리고 있고, 자국 로켓에 실어 자국 우주센터에서만 발사하기 때문에 정확한 실체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한국은 어떨까? 시작은 늦었지만 우리도 꽤 수준 높은 관측위성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이스라엘과 공동으로 해상도 1m 짜리 아리랑 2호를 개발해 운용하고 있어 미국과 러시아, 일본, 이스라엘,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6번째 관측위성 강국이 됐다.
<아리랑 2호가 촬영한 독도 영상. 영상제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내년 중에는 전천후 촬영이 가능한 SAR(Synthetic Aperture Radar) 레이더 위성인 아리랑 5호가, 2011년에는 해상도 70cm급의 아리랑 3호가 발사될 예정이다. 특히 아리랑 5호는 해상도면에서 일본수준을 능가하는 세계수준의 레이더 위성이다.
이미 발사된 광학위성인 아리랑 2호에 이어 레이더 위성인 5호가 우주에 올라가 짝을 이루면 낮과 밤, 눈 비오는 날씨에 상관없이 전천후로 전 세계 어디든 볼 수 있다. 또 아리랑 3호가 개발되면 역시 레이더 위성인 아리랑 6호가 뒤따라 발사될 예정이다.
최근 북한의 로켓발사가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다. 북한은 광명성 2호 위성을 올리기 위한 은하 2호 발사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미사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사일이든 발사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대포동 미사일로 추정되는 물체가 함경도 화대군 무수단리로 이동하고 있다는 미국 발 외신이 처음 전해져 세계가 떠들석 했었다. 북한의 한 시골도로에서 이뤄지는 물체의 이송과 산속에서 벌어지는 미사일 동향을 미국은 훤히 알고 있었다. 정찰용 비행기로는 수집이 불가능한 정보라는 걸 감안하면 첩보위성의 작품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감시당하는 나라는 과연 북한뿐일까? 미국, 그리고 강대국의 다른 나라 엿보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얼마 전 한 해외 포털사이트가 인공위성을 이용해 지구 전체를 상세히 볼 수 있는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해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 이런 관측위성을 피핑톰(Peeping Tom)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몰래 숨어 쳐다보는 이’를 뜻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사람이 아닌, 우주를 떠다니는 인공위성을 부르는 말로 바뀌고 있다.
인공위성은 일기예보, 통신, 지리정보시스템(GPS) 등 정보를 제공해 인간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는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하루 24시간을 지켜보는 피핑톰이 머리위에 떠 있다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외국보다 뛰어난 피핑톰을 만들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조금 더 평화적으로 사용될 수는 없을까 수는 없을까? 사생활 침해 없이도 각종 정보가 풍족한 세상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글 : 강진원 TJB 과학담당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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