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끔찍한 연쇄살인범이 검거되었다. 이때 결정적인 증거는 용의자의 점퍼 소매에 묻어 있던 극미량의 혈흔이었다고 한다. 경찰이 이 혈흔을 DNA 분석한 결과 실종되었던 피해자의 혈흔과 일치했던 것이다. 당시 용의자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증거가 나오자 순순히 자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완벽한 범죄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사건이었다.
얼마 전에는 중국 왕실에서 일어난 독살 사건이 100년 만에 밝혀져서 화제가 되었다. 청나라 말에 변법자강 운동으로 개혁을 꿈꿨던 황제 광서제의 사인이 비소로 인한 독살로 규명되었고, 누가 황제를 독살했는지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인민일보 자매지 경화시보는 광서제의 유해에서 g당 2,404㎍의 비소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전했다. 정상인이 0.59㎍ 정도의 비소 수치를 나타내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양의 비소가 검출된 셈이다.
광서제의 사인은 왜 10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밝혀진 걸까. 그건 아마도 비소가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비소는 궁중에서 독살에 주로 사용되었던 비상(砒霜)의 주성분으로 한 번의 복용으로 갑자기 사망하는 일은 거의 없고 여러 번 복용을 거듭할수록 체내에 축적되어 죽게 된다. 광서제 역시 특별한 사인 없이 조금씩 체내에 축적되는 비소로 인해 서서히 죽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소를 정력제라고 생각하고 복용했으며, 중국 화남 지방에서는 풍습에 따라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어릴 때부터 비소를 조금씩 먹였다. 비소에는 멜라닌 색소의 생성을 억제하고 혈액순환을 방해하는 성질이 있어서 오래 복용하면 얼굴이 창백해진다. 미용을 위해 비소를 택했던 것이다. 게다가 비소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먹다가 중지하면 금단현상이 나타나 한번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이 비소중독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죽은 사람들도 많다.
비소가 오랫동안 독극물로 많이 사용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게 죽어간다는 점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비소는 쉽게 구할 수 있다. 철광석 채석장에서 계관석이라는 광석 표면에 자연발생하는 비소는 이미 8세기 중동의 연금술사가 채취 방법을 발견한 이후 로마시대부터 독극물로 사용되고 있었다. 게다가 비소는 냄새가 없고 맛이 거의 없는 하얀 가루라서 설탕이나 밀가루에 섞기가 쉽다.
이러한 이유로 비소는 독살에 많이 사용되어 살인사건이 의문사로 남는 경우가 많았으나, 1836년 영국의 제임스 마쉬가 개발한 마쉬 검출법으로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다. 이 검출방법은 먼저 비소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물질을 가는 관이 연결된 병에 넣고 황산과 아연을 넣은 다음 가는 관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밀봉한 후 가열한다. 그러면 가는 관을 따라서 비소가 거울 같은 물질로 보이는 특유의 현상이 나타나고, 관 끝을 빠져나온 가스도 불에 타면서 도자기로 만든 판 위에 비소가 거울처럼 보이는 현상을 만들어낸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극미량의 비소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 검출방법의 발견으로 1836년 영국 왕립예술학교로부터 상을 받았다.
하지만 비소는 쥐약이나 파리끈끈이, 벽지용 인쇄잉크 등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소를 이용한 살인은 끊이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비소를 팔지 못하도록 했고, 뒤이어 영국에서는 쥐약 및 기타 비소가 든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의 이름을 명부에 기록하도록 규정했다. 그리고 비소의 흰 가루가 설탕이나 밀가루 등과 혼동되지 않도록 시커먼 그을음과 섞어서 사용하도록 했다.
비소에 대한 검출방법이 용이해지고 국가에서 규제도 심해지자, 독살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다른 독극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스트리크닌은 먹자마자 증상이 즉시 나타나는 극약으로 이 물질을 사용한 독살자는 굉장히 악랄하다고 평가된다. 스트리크닌은 피해자에게 심한 고통을 주는데 중추 신경을 건드려 근육 경련과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얼굴에는 피가 몰려서 검붉게 변하고, 입이 비웃는 듯한 표정처럼 바깥쪽으로 올라간다. 누워 있을 경우 머리와 발뒤꿈치만 바닥에 닿아 있는, 이른바 의학용어에서 활 모양이라고 하는 상태로 몸이 휘어진다.
이와 다르게 아코닛이나 니코틴, 모르핀, 히오신 등의 알칼로이드 독극물은 증상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동공을 확대시키기 위해 안과의 치료에서 사용되는 히오신은 히오스라는 식물에서 채취하는 약품으로 신경중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멀미약이나 불안 완화제로 미량이 사용된다. 그러나 많은 약을 사용하면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자백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독살은 보통 궁중에서 권력 다툼을 할 때 또는 부부관계에서 치정에 얽힌 복수를 할 때 많이 사용되지만, 단지 다른 사람의 관심을 얻기 위해 살인을 한 범죄자들도 있다. 미국 텍사스 샌안토니오의 소아과 간호사 제닌 존스는 석시닐콜린이라는 약물을 사용하여 갓난아기 30명 이상을 독살했다. 그녀는 이 독극물을 아기들에게 주사하고 죽기 직전의 상태로 만들어 놓은 다음 다시 살려내는 것에 쾌락을 느꼈다고 한다. 석시닐콜린은 근육이완제 및 마취제로 사용되는 약물로 과다하게 사용할 경우 근육을 이완하고 마취시켜 호흡 곤란을 일으킨다. 1984년 그녀는 살인죄에 대한 선고를 받았다. 그녀가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문하우젠 증후군이라는 허위성 장애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문하우젠 증후군은 타인의 주의를 끌려고 아이를 아프게 하는 정신질환을 뜻한다.
살인의 이유가 세상에 대한 불만 때문이건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복수 때문이건 간에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인간이 서로 존중하고 보호할 때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이 더욱더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글 : 이상화 과학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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