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거장전 - 렘브란트를 만나다
(주)기홍앤컴퍼니 엮음 / 컬처북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도록 속에 들어있는 전시회 티켓의 날짜가 12월 31일인 까닭에 부랴부랴 읽게 되었다.  

小도록도 있었지만 티켓도 그렇거니와 아무래도 큰 도판으로 보고 싶었는데, 역시 내 선택이 더 나았던 듯 싶다.  

전시장에서 본 소도록은 너무 작고 표지가 얇아서 사람 손을 타니 말리고 후줄근해지는 게 영 마뜩치 않았다.  

표지는 두 개던데, 내가 갖고 있는 도록은 알라딘 이미지에 나와 있는 이 그림이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서양 미술 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는 러시아 국립 푸시킨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림들을 가져온 것이다. 작년 이 맘때 러시아 미술 거장전을 참 즐겁게 보고 왔는데, 이번에도 그때와 같은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그땐 이주헌씨의 '눈과 피의 러시아 미술'을 미리 읽고 갔음에도 겹치는 그림이 별로 없어서 좋게 말하면 신선했고, 나쁘게 말하면 좀 막막했다. 이번엔 전시작을 미리 도록으로 한 번 확인을 했고 안내 글과 소개를 짚고 갔기 때문에 좀 더 깊이 각인되고 좀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감동을 맛볼 수 있었다.   

국립 푸시킨 미술관의 역사와 소장 경로 등은 좀 지루했지만, 그림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눈과 마음이 함께 황홀해진다.



小 피터르 브뤼헐의 사계 테마 중 겨울 스케이트 타기와 봄 정원 가꾸기다.  

이 도록의 센스 만점은, 이럴 경우 전시장에 걸리지 못한 '여름'과 '가을'의 작게나마 보여준다는 것이다. 왼쪽 모서리의 그림이 바로 여름과 가을이다.  모두 함께 연작으로 볼 수 있다면 더 만족스럽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소개시켜준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만족스럽다.  현장에서는 도슨트로 여름 가을 그림도 있다고 '안내'는 해줄지 모르겠지만 눈으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미리 도록을 보고 관람하는 것이 더 멋진 일이라고 나는 자꾸만 강조해 본다! 

그리고 그림이 작다고  느껴져 감질 날수도 있기 때문에 가끔 부분 확대 씬을 시원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재밌게도, 때로 어떤 그림은 크기가 너무 작아 도판이 더 크게 나올 때도 있다. 그럴 땐 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어째 인쇄물이 더 근사해보일까... 하고. ^^ 

작년 전시회에서는 칸딘스키의 이름을 앞세웠지만, 사실 칸딘스키의 그림은 네 점에 불과했다. '유화'만 생각한다면 이번 전시회에서 램브란트의 작품은 달랑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램브란트의 이름을 앞세워도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것은 바로 '에칭' 덕분이다.  

'에칭'이란 동판 위에 질산에 부식되지 않는 초 같은 것을 바르고 그 표면에 바늘로 그림을 새긴 다음에 질산으로 부식하여 만드는 판화를 말한다. 판화 같지 않은 느낌을 주는데 대량 인쇄가 어렵다는 게 아쉬운 대목이다. 램브란트의 작품에는 몇번째 찍은 인쇄물인지가 표시되어 있는데 가장 많이 찍은 게 6번이었다. 그리고 단 한 번 찍은 작품도 꽤 됐다. 재료비가 적게 들기 때문에 선호하는 작업 방식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램브란트가 상업적인 목적 만으로 에칭을 대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큰 도록은 에칭 그림을 전부 한 장씩 분리해서 두꺼운 종이에 인쇄를 했다. 반면 소 도록은 그걸 생략하고 설명 글만 실었으니, 설명 글 옆의 안내 그림은 아주 쬐끄마해서 도록을 미리 보는 즐거움은 많이 줄 듯하다. 실제로 에칭 그림은 6cm크기의 아주 작은 그림도 있기 때문에 도록이 훨씬 시원시원하게 보일 때도 많았다.  



왼쪽의 램브란트 자화상이 아주 작은 그림인데 도록은 큼직하다. 오른쪽 그림은 램브란트의 어머니다.  

이렇게 보면 연필이나 목탄으로 그린 것 같은 느낌인데 이게 판화라니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명암차'가 어찌나 잘 묘사되었는지 그 역시 신기했다. 이러니 그를 빛과 명암의 화가라고 부를 수밖에!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이 작품은 예수라는 인물의 고난을 압도적인 분위기로 묘사해 주었는데, 재밌게도 램브란트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  

빨간 동그라미 속의 인물을 위 자화상과 비교해 보시라. 마치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면 부러 왼손에 오른손을 그려놓은 것 같은 귀여운 트릭이 생각난다.  



유명한 돌아온 탕자 그림이다. 소개 글이 인상적이었다. '소리'가 들리는 그림이라는 것. 

탕자기 짚고 돌아왔다가 떨어뜨린 지팡이, 막 문을 나서는 빨래를 든 하인, 그리고 창을 여는 사람. 울며 참회하는 아들, 그 아들을 붙잡아주는 아버지까지. 그림 속에는 무수한 소리들이 살아 울리고 있는 중이다. 전시장에서 볼 때도 그들이 내는 시끄럽지 않은 소음들에 귀 기울였다.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 정말 근사하다! 



근데 이사한 점! 유독 팔이 너무 짧게 그려져 있다. 램브란트의 자화상도 그렇고 다른 사람을 그린 그림도 그렇다.  

그런데 팔만 짧은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키'도 엄청 짧다. 현재 네덜란드인이나 유럽인들의 평균 키를 생각한다면 왜 이렇게 작게 그려진 건지 의아할 정도. 약 350년 전 사람들이니 작을 수도 있는 거겠지만, 그때 당시엔 그들도 이렇게 '정겨운' 키를 자랑했다는 게 재밌게 느껴진다. 설마 램브란트만 일부러 이렇게 작게 그린 건 아니겠지? 



에칭 그림을 먼저 감상하고 나면, 해당 그림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함께 실었다면 그림 감상에 조금 방해가 됐을 듯하다. 가독성은 떨어지지만 그림이 더 중요한 거니까 이런 스타일의 편집은 환영이다.  



세바스티아노 마초니의 '삼미신'이다. 각각 정숙, 청순, 사랑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이들의 포즈가 꽤 인상적이었다.  

한 명은 반드시 등을 보이고 있는 형태를 보여준 이 그림은 루벤스나 부셰의 '삼미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친절한 도록의 왼쪽 구석에서 보여주는 바로 이 그림 말이다. 

세종문화회관에선 루벤스 전이 열리고 있는데 이 그림이 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몹시 궁금한 삼미신이다.  

미처 사진을 찍진 못했지만 최근 키티님의 서재에서 보았던 무리요의 이름이 익숙해, 딱 한 점 와 있던 그의 그림을 오래도록 전시장에서 바라보았다. 소녀인 듯 순진한 웃음을 짓고 있지만 어찌 보면 창녀의 교태스런 웃음같기도 했던 그 신비로운 그림이 오래오래 잔상에 남는다.  

이번 전시회에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그림은 부셰의 '헤라클레스와 옴팔레'였다. '귀족들의 은밀한 사생활'에서 반가웠던 이름이었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1,000피스 퍼즐로 어찌나 갖고 싶던지..ㅜ.ㅜ 

한 해의 마무리를 멋진 책과 멋진 그림으로 장식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비록 리뷰는 해를 넘겨 쓰게 되었지만.;;; 

퐁피두전 도록도 주문했는데 어여 도착하기를...! 

보너스로 지식채널에서 방송했던 램브란트의 모델을 링크 걸어본다. 좀 더 짠한 감동이 전해질 것이다.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NFPlayer.swf?vid=C337C92E57D53D51A8F6D6D300F32DEE5025&outKey=V129c468b5ad068b97d200e798e7b382bb0e8927d6aa30ddcc4ce0e798e7b382bb0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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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3 0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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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3 0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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