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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13 - 만두처럼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6년 7월
평점 :
나는 식객을 1권부터 17권까지, 그리고 21권을 갖고 있다. 내가 산 책이 더 많긴 하지만 중고샵에서 구매한 책들도 더러 있다. 나란힌 책꽂이에 꽂힌 책등을 보면 차이가 하나 있다. 예전에 나온 판형은 책등 아랫 부분에 색깔 띠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다시 인쇄가 들어가면서 디자인이 변경된 듯하다. 색깔이 들어간 책이 더 예쁘다는 게 내 생각. 그런 면에서 새색이 안 들어간 표지가 네 권 있는 내 책들은 옥의 티 같지만, 그것도 개성으로 생각하면 나쁠 것도 없다. 윳놀이에도 빽도가 필요한 것처럼.(응?)
내 책 식객 13권은 옛날 버전 책(책등에 색띠가 없는)이다. 생각탓인지는 몰라도 안의 책장이 좀 변색된 듯하다. 그렇다고 재미가 변색된 것은 아니니까 실망할 필요도 없다. 앞쪽에는 항상 본편 이야기 전에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실어주곤 하셨는데 취재원 이야기를 하셨다. 자료와 소재 등을 어찌 구하실까 궁금했는데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셨다. 제일 첫번째 방법은 말 그대로 '자료'를 이용하는 방법이라신다. 매월 25가지의 잡지를 꼼꼼히 살피고 틈틈이 음식 관련 책을 보신다고 한다. 거기에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정보를 수집하기. 음식에 관한 잡지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몇 년 지났으니 지금은 더 늘어났을지도 모르고 더 줄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6시 정도의 시간대에는 각 지역의 특화 음식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는데, 작가가 그런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눈을 번뜩일 생각을 하니 재밌다.
두번째 취재 방법은 사람을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전 세계인도 6명만 거치면 모두 이웃 사촌이라는데, 좁은 대한민국에서 그 정도의 연륜과 인맥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렵지 않은 방법일 듯하다. 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니 식객 집필을 위한 작가의 열정과 노력이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끔 또 인연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세번째 취재 방법은 제보를 이용하는 것. 이메일이나 게시판을 통해서 제보가 들어오면 그것을 활용하는 것인데, 제야에는 숨은 실력자가 얼마든지 있으니 이 또한 무시 못할 자료 수집의 방법일 것이다.
다음, 기관을 방문하는 방법은 그닥 신통치 않고 아주 급할 때만 사용한다고 한다. 워낙 촬영에 익숙해져 있는 취재원들의 틀에 박힌 대답을 지양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마지막 방법은 거리에서 캐취하는 것인데 자신의 동물적인 감각을 믿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거지만, 의외로 제법 신통할 때가 있다고 하니 이제 음식에 관해서라면 어느 정도 도가 터버린 작가가 아닐까 싶다.
이번 편의 첫번째 에피소드는 '소 내장에 대하여'다. 나로서는 내장 고기를 전혀 먹지 않지만, 설사 즐겨 먹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제작공정을 지켜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작업 과정에서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견뎌내고 제대로된 재료를 받을 줄 아는 전문가가 진짜 음식 장인이 된다는 것은 의심 못할 진실일 것이다. 쉬운 것만 찾는 한식 요리사 과정의 아이들에게 성찬이 보여준 가르침은 그래서 '진짜'다.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차장수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일지라도 배울 것이 있다면 겸손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 아이들은 이 참에 배웠을 것이다.
궁중 떡볶이 편은 많이 답답했다. 이 나라에 널리고 널린 기러기 아빠들. 그나마 환율이 무너지면서 많이들 공부 포기했다고 하지만, 그네들의 외로운 기러기 신세가 안타깝다기보다는, 그렇게 외국에 내보내서 출세를 시켜야 한다고 믿게 만드는 이 나라의 교육 시스템이 환장할 노릇이라는 거다. 그나저나 궁중에서 먼저 시작된 떡볶이 요리의 유래를 들여다보는 것은 재밌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고추장 떡볶이가 더 맛나다.
겨울 피라미 편은 열망이 현실화 되는 것 같은 착각을 환타지 기법으로 묘사했는데, 그에 대한 공방이 게시판에서 좀 있었나 보다. 나도 읽으면서 냉동 피라미가 수족관에서 살아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뒷 페이지를 읽으면서 상상이었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이 정도의 묘사는 작가로서 도전할 수위라고 여겨지지만 워낙 인기작이다 보니 독자들의 설왕설래가 많은 듯하다.
식혜 편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다. 난 2000년 10월부터 개인 홈페이지에 소설을 연재했는데 2005년 10월에 연재가 중단되고 3년째 깜깜 무소식이다. 그것도 연재 거의 막바지에. 소설을 진행시키다가 무리를 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게 수습이 되지 않고 있다. 내가 생각한 결말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할 고리를 못 찾고 3년이나 흘러버렸다. 그 사이 내가 썼던 내용도 잊어가고 독자들도 잊어가고, 그냥 '방치'를 시켜버린 것이다. 작품을 그대로 멈출 생각은 없지만 쉽사리 다음 진도가 안 나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작품 속 전문 소설가와 비교하기는 민망한 일이지만 나로서는 그때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열정'과 '아이디어'가 내겐 필요한데, 그게 이번 겨울에는 과연 가능할런지...;;;;
그나저나 '식혜'와 '식해'에 대한 에피소드도 내게 있다. 대학 때 경북 지역으로 고적 답사를 나갔는데, 답사 팀이 그 지역의 명물인 '식해'를 '식혜'로 알고 우리 과 전원에게 식후 대접되도록 '딜'을 했던 것이다. 나름 성과라고 여겼겠지만, 우린 모두 생선맛이 배어 있는 그 음료를 먹지 못하고 일어서야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식혜'와는 너무도 큰 차이! 웃기지만 당시로서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였다. 음식점 측에서는 또 얼마나 황당했을까. 우리 입맛이 촌스러웠다고 인정은 해도, 지금 역시 먹고 싶지 않은 마음은 똑같다나 뭐라나.
마지막 에피소드는 '만두'인데, 아마도 연말에 연재했었나 보다. 성찬과 진수의 관계가 한 단계가 업그레이드 되는 위기를 동창회가 제공해 주었다. 양복과 구두로 재무장 시켰지만, 차장수인 게 드러난 순간 자리를 뛰쳐나간 진수. 그걸 진수가 허영에 들뜬 속물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그런 진수를 이해 못하거나 실망하는 성찬을 보여주지 않는 작가의 배려가 프로답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고민은 현실적인 것이었고, 거기엔 진심 이상의 지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두 사람은 위기 끝에 서로의 사랑을 더 진하게 확인했으니 우야튼 해피엔딩! 만두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쌍화점이 아니 떠오를 수가 없다. 이 영화 얼른 보러 가야지!
그나저나 이제 나도 만두를 좀 먹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