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밀 [제 798 호/2008-08-15]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꿈꾸는 명기(明器)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18세기에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마스터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와 그 일가가 만든 바이올린을 뜻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6~700여 대가 남아 있다고 하는데, 보존 상태가 좋은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은 몇십 억 원이 넘는 고가에 팔리기도 한다.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스트라디바리우스 한 대가 354만 달러에 거래되었다.

17~18세기에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외에도 과르네리, 아마티, 과다니니 등 유명한 바이올린이 많이 제작된 시기다. 이중 특히 과르네리와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명품악기의 대명사로 손꼽힌다. 남성적이고 볼륨있는 소리를 내기로 유명한 과르네리의 경우, 가장 뛰어난 품질의 악기는 ‘예수’라는 뜻인 ‘델 제수’가 붙어서 ‘과르네리 델 제수’라고 불린다. 반면, 스트라디바리는 과르네리에 비해 여성적이고 섬세한 소리를 낸다고 한다. 아이작 스턴, 이자크 펄만, 정경화 등이 과르네리를 애용하는 데 비해 메뉴인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정수를 보여준 연주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명품 바이올린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왜 현대의 첨단기술로 만든 바이올린이 300년 전 수제 바이올린의 음색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악기 제작자는 물론이고 과학자들로도 끊임없이 도전해 온 의문이다. 때문에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신비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결과들도 적지 않게 나왔다.

예를 들면, 미국 테네시 대학의 학자들은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제작된 당시의 기후가 이 명기를 탄생시킨 열쇠라고 주장했다. 즉, 유난히 추웠던 18세기 당시의 날씨 때문에 악기 제작에 쓰인 나무의 나이테가 촘촘하고 나뭇결의 밀도가 높아졌고, 이 덕분에 소리의 스펙트럼이 균일하고 음정 변화가 거의 없는 명기가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텍사스 A&M 대학교의 생화학자인 조셉 네지바리 교수의 주장도 흥미진진하다. 스트라디바리와 그 제자들은 북이탈리아의 숲 속에 널리 서식하는 벌레로부터 바이올린을 보호하기 위해 바이올린 위에 일종의 화학물질인 도료를 발랐다. 네지바리 교수는 이때 사용된 도료들이 잡음을 제거하는 효과를 주어 스트라디바리우스 특유의 음색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네지바리 교수는 2006년 ‘네이처’지에 이 같은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의 연구팀은 3대의 명품 악기(1717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1731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 1741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 바이올린)와 1840년산 그랑 베르나델 바이올린, 1769년산 헨리 제이 비올라에서 나무 샘플을 채취하였다. 비교를 위해 최근에 악기 제작용으로 사용되는 보스니아와 중부 유럽의 단풍나무에서도 샘플을 채취하였다. 연구팀은 이 샘플들을 고체 핵자기 공명장치(13C Solid-state NMR)와 푸리어 변환 적외선 분광장치(FTIR)로 정밀하게 분석해 보았다.

이 비교 연구를 통해 네지바리 연구팀은 악기를 가공할 당시의 화학처리, 즉 산화와 가수분해에 사용되었던 화학물질들이 나무의 성질에 변화를 주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그전에도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사용된 도료가 비밀의 열쇠라는 주장은 여러 번 제기되었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도료의 성질을 연구하고,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한 연구는 네지바리 교수팀이 처음이다.

재미있게도, 화학계는 네지바리 교수의 연구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악기제조업자들은 이를 별로 믿지 않는 눈치다. 즉, 스트라디바리우스만이 낼 수 있는 ‘천상의 음색’은 한두 가지 이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악기제작자들은 ‘네이처’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대해 “이 정도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모든 비밀이 밝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트라디바리는 진정한 천재였다. 과학이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줄 수도 있지만, 과학과 예술이 항상 같은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네지바리 교수가 과학자인 동시에 직접 바이올린 제작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의 연구에 대해 ‘무언가 사업적 동기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정말로 네지바리는 자신의 회사에서 제작한 바이올린이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에 버금가는 음색을 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그가 운영하는 바이올린 회사의 홈페이지(http://www.nagyvaryviolins.com/)에는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보도한 ABC 뉴스, 크리스티안 사이언스 모니터, 디스커버 지, 디스커버리 채널, 사이언티픽 어메리칸의 보도 내용이 링크되어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2003년에 독일의 한 다큐멘터리 제작사가 600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고 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네지바리의 회사에서 제작한 두 대의 악기로 실시한 이 블라인드 테스트의 결과, 600명의 청중 중에서 오직 57명만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제대로 맞추었다고 전해진다. 이 정도면 두 악기의 성능이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것이 네지바리의 주장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70, 80대에 그의 최고작품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제 겨우 69세에 불과하다.”면서 화학연구를 통해 바이올린의 음색을 개선하는 일에 계속 정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무튼 화학 연구를 통해 음악의 재창조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 역시 과학자로서는 보람된 연구가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 화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과 악기 연주에 기여하는 과학이다. 또, 러시아 민족주의 작곡가 ‘5인조’ 중 한 사람이었던 보로딘은 원래 화학자였고, 일요일에 시간이 날 때마다 작곡을 했었다고 한다. 화학은 그 어떤 과학보다 음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 : 이식 박사(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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