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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행진 - 야누시 코르차크 ㅣ 양철북 인물 이야기 1
강무홍 지음, 최혜영 그림 / 양철북 / 2008년 6월
평점 :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사준 전집은 세칸짜리 책장이 부록으로 딸려왔는데 마지막 칸에는 전부 위인전이 꽂혀 있었다. 1층과 2층 책장의 책은 거의 다 읽었는데 3층 책들은 유독 내게 흥미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궁금하거나 많이 익숙한 이름들만 골라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내게 '위인전'은 꽤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책이라는 인상이 강한 편이다. 아이를 키울 때 독서훈련에도 단계가 필요하다고 친구가 말해준 것도 기억이 난다. 처음엔 '창작동화'를 읽히고 다음에 '명작동화'와 '전래동화'를 읽히고 마지막에 '위인전'을 읽힌다고 했다. 아무래도 위인전은 교훈을 담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아이가 너무 어릴 때 읽어주면 아이의 판단력에 너무 무리수를 둘 수 있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지적으로 보인다. 무턱대고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야!라고 공식처럼 주입시킬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했으며 그것이 왜 중요하며 가치있는지를 아이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단계가 필요한 것이다.
양철북 인물이야기 첫번째로 선정된 '야누슈 코르착'은 우리나라에선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20세기 초중반에 어린이들을 위해 헌신했던 그는 원래 의사 출신이었다. 그런데 아픈 사람보다 가난한 사람들, 그 중에서도 가난한 어린이들, 또 그 중에서도 유태인 어린이들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 그는 '교육'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에 그가 다가갔을 때 아이들은 경계했고 믿음을 주지 않았다. 언제든 자신들을 버리고 가버릴 사람이라는 의혹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들고 나가는 일에 익숙해져 있던 아이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그들의 그 불안함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서 야누슈 코르착은 무던히 애를 썼다. 그는 어린이의 '인권'에 관심을 보였고, 당연히 지켜져야 할 권리임을 천명하였다. 그의 고아원은 어린이 '공화국'이 되었으며, 그 공화국 안에서 아이들은 동등하고 평등한 사람으로서 성장했다.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아이들이 직접 재판관이 되었고, 서로가 합의한 규칙을 지킴으로써 그들의 공화국 내의 질서를 유지시켰다. 아이들을 존중해주고 사랑으로써 길러낸 야누슈 코르착의 뜻과 노력이 아이들의 마음 속에 뿌리를 내려간 것이다. 그렇게 그의 고아원은 '인간의 존엄함'을 가르치는 가장 아름다운 학교로, 또 중지가 되어 갔다.
그러나 끔찍하게도, 그들의 평화를 깨뜨리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바로 1939년에 있었던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다. 폴란드 안의 모든 유대인들이 게토 안으로 갇히고 내일을 보장 받을 수 없는 위험한 세계에 빠져버린 것이다. 할아버지가 된 냐우슈 코르착은 이 와중에도 아이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무던히 애를 쓴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구걸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거리에서 마주치게 되는 새로운 고아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품안으로 거둔다. 아이들은 그들의 따뜻한 할아버지를 천사라고 불렀고, 야누슈 코르착은 그 아이들을 또 천사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들의 이 위태로운 평화가 오래 갈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은 이송 명령을 받고 열차로 이동을 하는데,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잡지 않는다. 혼자 떠나면 살 수 있었는데, 비참한 죽음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는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삶의 마지막 열차에 타버린 것이다.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옷들을 차려 입은 아이들과 함께 행진하면서 그는 아이들이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여름휴가'를 가는 길이라고 말해버린다. 마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했던 그 착한 거짓말처럼. 이때 그들이 걸었던 그 길, 그들이 함께 했던 그 모습들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각인되었을까. 이 책의 제목을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천사들의 행진'. 그랬다. 그들의 모습은 천사들의 그것처럼 아름다웠고 숭고했고 따스했었다. 비록 모두가 살아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어갔지만 그 자취는 아직도 살아남아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생생히 기억되고 있다. 또 그의 정신은 국제연합의 어린이 권리협약에도 반영된다.
이 책은 많은 페이지를 자랑하지 않지만 굵고도 진하게 야누슈 코르착의 생애를, 당시의 비참했던 사회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림을 담당한 최혜영 작가는 '전사'라는 기법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마치 판화를 찍은 듯한 느낌의 질감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빛 바랜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며 어둑한 아이들의 표정에서 그네들이 보냈던 힘든 시간을 읽을 수가 있다.
얼마 전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서 '히틀러'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다소 놀랐던 기억이 난다. 대개의 아이들이 자세히는 몰라도 들은 풍월로 이름 석자는 알고 있었는데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인 그 아이가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아이가 자랄 때 그와 관련된 어떤 책자 한권이라도 읽어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니 그런 어린이들을 위해서 양철북에서 나온 이와 같은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어릴 때에는 위인전 읽기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좋은 만남을 많이 갖지 못했지만, 요즈음의 똑똑하고 눈치 빠른 아이들에게는 좀 더 편안한 접근과 다양한 질문을 통해서 아이들 스스로 생각의 여지를 줄 수 있는 독서를 권장하고 싶다. 그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초등 고학년이 되면 안네의 일기를 읽고, 고등학생이 되면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소화하게 될 것이다.
혹 다른 시리즈가 더 있나 싶어서 검색을 해보았는데 아직은 이 책이 전부다. 1번 출간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믿을 수 있는 출판사 양철북이 선택한 다음 인물은 누구일까 살짝 기대가 된다. 관심을 갖고 다음 출간을 기다려야겠다.